에이레오)
처음 눈을 뜬 순간, 절망이 엄습해왔다. 다시 죽을 수 있다면 악마와 계약을 할 정도로. 츠키나가 레오는 손가락을 까딱여 보았다. 자신은 분명 죽었다. 텐쇼인의 앞에서 총을 입에 물고 머리통을 날려버리지 않았던가.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자신은 죽었다.
스페어를 만들지 않았건만. 왜 자신이 이곳에 있는건지. 츠키나가는 핏발선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돌렸다. 우드득- 뼈가 맞춰지는 소리가 귀를 쟁쟁 맴돈다.
"..."
마법사들은, 육체들이 많다. 옷을 입는 듯이, 같은 육체들을 각각 어딘가에 몰래몰래 보관하는 것이다. 자신이 죽어 육체를 잃을 경우, 또 다른 육체를 통해서 깨어나기 위해. 그런걸 보고 스페어- 라고 한다.
츠키나가 레오는 혼자 스페어를 만든 기억이 없었다. 죽음은 죽음이다. 몸이 오랜 시간을 거쳐 재생해 깨어나기 전까지 그 순간의 잠을 즐기는 것이 츠키나가였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강제로 일어난 것이다. 자고 있던 자신의 영혼에 각성제를 주사하여 깨운 것이다.
"좋은 아침이야, 츠키나가군."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보드럽게 아스라질 것 같은 금발, 창백한 얼굴에도 만면의 웃음을 띄운 채 다리를 꼬고 앉아 차를 마시는 저 남자가. 저 원흉이.
끔찍하게 싫었다.
한때는 사랑에 정신 못차리고, 지금은 계속 박살나고 부숴지기를 반복하며- 사라지고 있었다. 아득한 우주의 저편으로.
"새 스페어는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들길 바랐으면, 지금 깨우지 말았어야지."
"내가 조금 성급했나?"
알잖아. 가져야 하는 것은 확실히 가져야 하는 내 성격. 텐쇼인은 후후 웃으면서 차를 한모금 마셨다. 츠키나가는 몸을 일으켰다. 아무 생각도 하고싶지 않았다. 지금 당장 총이라도 있으면 저놈의 머리 정 중앙에 바람구멍을 내고 싶은데. 츠키나가의 발걸음이 차박차박 소리를 내며 텐쇼인에게 가까이 왔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 스페어를 움직이는 것은 이식과도 같기에 바로바로 움직이는 것이 무리일텐데도, 츠키나가는 잘만 걸었다.
"..."
"차 한..."
잔- 이라는 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츠키나가는 텐쇼인의 자리에 있던 찻잔을 들어, 안에 든 홍차를 텐쇼인의 가슴에 끼얹었다. 약간 식은 따땃한 홍차가, 흰색 셔츠를 더럽혔다. 감색의 얼룩이- 텐쇼인의 가슴에 달라붙었다.
츠키나가는 하- 웃고는 그대로 팔에 힘을 줘 찻잔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쨍그랑-! 시끄러운 파열음. 대리석 바닥으로 던져진 찻잔은 형체를 잃어버리고 조각조각 분해되었다.
"죽어버려."
"-"
"평생 사랑받지 말고 죽어."
츠키나가는 눈물울 뚝뚝 떨구며 텐쇼인을 노려보았다. 저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을, 믿을 수가 없다. 거짓말로 점철되어 자신을 찌르고 상처입히는 저 매서운 혓바닥.
시선을 돌리며 몸을 틀은 츠키나가는 비틀비틀 움직이며 문을 향해 걸었다. 어떻게 아까는 그렇게 척척 걸은 건지. 몸뚱이가 자신의 명령 체계를 어그러뜨리는 것 같았다.
나루가 죽었다. 리츠도 죽었다. 세나도. 죽었다.
[정신차려, 츠키나가 레오. 넌 내 왕이다. 내가 섬기는 왕은, 그런 눈으로 날 보지 않아.]
죽었으면서. 내가 살아있는데, 넌 죽었으면서. 츠키나가는 차오르는 분노에 눈물을 멈추지 않으며 문고리를 왼손으로 잡아 힘을 줘 돌렸다. 달칵- 여기서 몸에 힘을 주면 문이 열린다. 츠키나가는 힘을 줬다. 끼이익- 문이 열린다.
"아니다."
츠키나가는 문을 연 채 멈춰섰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텐쇼인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여전히 따스한 눈으로, 사랑을 가득 담은 눈으로 바라보는 저 녹색의 눈이. 너무 잔혹했다. 그래서 츠키나가도 혀 끝에 잔혹함을 담았다.
"살아."
평생, 사랑받지 말고 살아가. 난 죽어버릴 테니까.
저주 한마디를- 텐쇼인의 심장 깊숙이 새기며, 츠키나가는 문을 소리나게 쾅- 하고 닫아버렸다.
모든 것이 닫혔다.
-
황제와 마법사 9화 중간의 이야기.
츠키나가 레오가 다시 살아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