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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와 그대

0117 2016. 5. 15. 00:28

이사라.”

.”

그런 표정 짓지 마라.”

선배야말로요.”

여기서 제일 죽을상으로 있는 게 너야 임마.”


등을 툭 치며 너무 그런 표정 짓는 거 아니라고 하던 선배는 휴대폰의 진동에 액정을 확인하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브리핑실로 모이라고 문자왔다. 얼른 가자고.”

이사라는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비어있는 휴대폰. 차라리 리츠가 뭐라고 한마디라도 보내줬으면 좋겠다. 잔소리든 뭐든 간에.

1층의 브리핑실은 벌써 인산인해였다. 형사부 전체가 모인다. 팀당 7명 정도. 그리고 형사부의 팀은 총 5.


주목-!”


웅성이던 소리들이 잦아든다. 팀장들은 전부 앞자리에 앉아있었다. 하나같이 안 좋은 표정. 이사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좋은 표정은 없다. 반갑지 않다. 오랜만에 나타난 불청객. 차라리 모르는 사이에 죽어버리지. 입으로 저주들이 나돌고 있다.

이사라는 조용히 아케호시와 유우키, 히다카가 있는 자리로 가 슬쩍 옆에 앉았다.


이사라군.”

마코토, 고생했어.”


표정이 나쁘네. 유우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이사라는 빈 화면을 가득이 메운 스크린을 보며 귀를 쫑긋였다.


지금부터 도쿄 동부 트럭 연쇄살인마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적막이 가득한 곳에 낭낭한 남자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이사라는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펜으로 가져온 노트에 조용히 필기를 했다.

동부 트럭 연쇄살인마. 2년 전부터 5개월에서 7개월 사이로 도쿄에서활동하는 살인마. 성별은 남자. 지문 확인 불가. 감식 과정에서 어떠한 유전자 감식이 가능한 것들이 발견되지 않음. 찍힌 CCTV가 단 두건 뿐이었음. 키 대략 176cm. 몸무게 대략 69kg. 살인의 방식은 복합적. 첫 피해자는 교살. 다음 피해자는 심장을 정확하게 칼로 찔렸음. 다음은……. 다음은…….

이사라는 미간 사이를 엄지로 문질렀다.

질린다.

누군가의 생명을 취하는 것이 너무 쉬운 자다. 삶을 경시하고, 자신의 쾌락에 미친놈이다. 이사라는 흘끗 히다카를 보았다. 표정이 계속 굳어가고 있었다.

2년 전, 딱 자신이 처음으로 경시청에 발을 디뎠을 때. 그때 처음으로 본 시체가 동부 트럭 연쇄살인마의 피해자였다. 첫 피해자. 피아노 줄이 잔뜩 목에 감겨 죽어있었다.

그날 이사라는 히다카와 함께였고, 둘 다 아주 쓰러질 정도로 게워내었다. 쇼크였고, 그냥 미드에서나 본 것은 장난이었다는 걸 알았다.

화면과 현실의 차이는 너무 엄청나다는 것을, 그날 깨달았다. 그저 가벼이 보던 것과 천지차이다. 종이 한 장이 아니라 종이를 하늘까지 쌓아도 무리다.


이상입니다.”


언제 끝났지. 이사라는 사람들의 소리들을 들으며 몸을 일으켰다. 다들. 표정이. 너무. 나쁘다.


이사라.”

, 호쿠토.”

잠깐 이야기 가능해?”

아아-”


이사라는 흘끗 4팀의 선배들을 바라보았다. 안가? 라는 눈으로 바라보기에 이사라는 검지로 히다카를 가리켰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제스쳐를 취한 선배는 먼저 팀원들을 데리고 나갔다. 히다카는 아케호시, 유우키, 그리고 이사라를 데리고 약간 걸었다.


이사라, 처음 본 날 기억해?”

으으- …….”


이사라는 인상을 찡그렸다. 절대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첫 사건이니까. 히다카는 엄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다 한숨을 쉬었다.


뭔가 다른 거 없어?”

?”

실은 아까, 사건 사진들을 다 봤거든.”


아케호시가 휴대폰으로 갤러리에 들어가 사진을 스크롤 하다 한 사진에 멈췄다. 우선 이렇게 찍는거 안되는 걸 알지만……. 그리고는 사진 하나를 확대했다.


이거.”

…….”


첫 사건. 피해자는 목에 피아노 줄이 감겨 교살 당했다. 그리고 노출되어있던 복부에는 트럭이 그려져 있었다. 피로. 그 피는 동물의 피였다고 한다. 그 이후 연쇄살인마는 모든 피해자들의 복부에 동물의 피로 트럭을 그렸다.


그리고 이번 사건 피해자가 이래.”


유우키가 본인의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사라는 고개를 가까이 들이밀었다. 뭐지. 이거-


이상해.”

그치?”


첫 사건 이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어떻게 그렸는지를 알아내었다. 처음에는 바퀴 먼저. 그 다음은 차체. 다음은 창문이라고 그랬다. 이거-


아예 틀려…….”


마치, 모방한 것 같아. 이렇게 그리는 거 처음 봐. 이사라는 자신의 손바닥에 트럭을 그려보았다.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순서가. 완전히 틀리다. 먼저 그린 게 차체, 그리고 바퀴도 이상해. 창문도 없어. 뭐야.


심경의 변화인가?”

개소리. 심경의 변화여도 순서를 바꿀 만큼 멍청이는 아냐.”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그랬을지도 모르잖아.”

수사? 그 녀석이 수사에 관심이 있었을까.”


관심이 있었다면, 애진즉 꼬리가 잡혔지. 녀석은 본능적이지만 철저해. 자신을 숨기기 위해 벽을 치고 있어. 자신의 사인을 바꿀 만큼 대범하지는 않아.

히다카와 이사라의 목소리가 이리저리 엉켰다. 아케호시와 유우키는 사진을 몇 번 봐도 어렵다는 듯이 굴었지만, 둘은 아니다. 첫 사건이었고 히다카는 이리저리 도쿄 동부 트럭 연쇄살인마와 겹쳤다. 분명 잡고 싶을 것이다.


카피캣(모방범죄자)일지도 모른다 이거지?”

. 우선 감식이랑 프로파일 결과 보고 알리자고.”


이사라는 입을 다물었다. 만일 아니게 되면 아니어서 감사해야 하는가. 아니면 또 다른 연쇄살인마의 발생에 고통 받아야 하는가.

무엇이던 간에 반갑지 않은 난제.


호쿠토.”

?”

, 잠깐 담배 좀 필께.”


이사라는 결국 못 견디겠는지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안 가져왔-


여기.”


아케호시가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내밀었다. 땡큐. 이사라는 고개를 숙여 불을 붙이고는 담배 연기를 느리게 뿜었다.


-리 너무 많이 피워.”

좀 봐줘.”

알고는 있지만…….”


너무 많이 피워, . 아케호시는 한숨을 쉬었다. 이사라의 흡연양이 늘어나고 있음이 아예 대놓고 눈에 보인다. 금연초는 어때, 라고 했다가 그때 당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이사라의 표정이 대놓고 좋지 않았음은 전원 기억하고 있다.


그런 걸 피울 바엔 차라리 술을 마시지.’


이사라는 한 개비를 다 핀 뒤 씁쓸하게 웃었다.


이번 사건 끝나면, 금연할게.”

약속해.”


유우키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아케호시도 내밀었다. 히다카도. 이사라는 후우-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세 명에게 한 번씩 새끼손가락을 내어 고리를 걸었다. 꼭꼭 약속. 엄지로 도장도 꾸욱.


사건 끝나기 전에 담배 다 피워야겠네.”


픽 웃은 이사라는 유우키에게서 휴대폰을 받아 다시 한 번 오늘의 사건 현장 사진을 보았다. 자세하게 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사인이 다르다는 것 외엔 크게 다른 게 없는데.


마코토, 혹시 현장 사진 또 있어?”

? 2팀에 다 있어. 확인할래?”

그래야 할 것 같은데.”


그냥 지금까지 사건 사진을 다 보고 싶어. 이사라는 아랫입술은 안 아프게 이로 물며 중얼거렸다. 뭔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이런걸 보고 데자뷰(기시감)라고 해야 하나. 뭔가. 자신이 아는 무언가가. 이번 사건에 없는 것 같았다.


*

 

시끄러운 음악이 들렸다. 헤비메탈인지 락인지 알 수가 없다. 시뻘건 조명 밑의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꿈틀꿈틀. 벌레 같은 기분에 발을 들어 콰직콰직 밟고는 비볐다. 비명에 들리지만 음악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한다.

사진 몇 장이 정면에 보인다. 빨간색 X자가 얼굴을 가득 메운 사진들이 있었다. 아닌 사진들도 있었다.

유독 시선이 간다. 그 사진의 남자는 꽃다발을 안고 세상을 다 가진 듯이 웃고 있었다. 경찰 정복을 입고 활짝 웃는 그 사진이.

누군가의 시선에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손을 뻗어 사진을 어루만져 보았다.

엄지손가락을 스친, 사진 속의 가슴에 달려있던 이름표.


이사라 마오(衣更 真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