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st/外

테쿠로) 용의 신부, 그대

0117 2016. 6. 12. 23:50

별이 내린다.

붉은색의 별이, 내리고 있었다. 나구모는 아무런 말도 없이 시선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일본이 아닌 곳의 하늘은 늘 다르다. 그리고 처음 이곳에 온 날, 그들의 통솔자는 이렇게 말했었다.


[처음 보는 세상이 펼쳐질 거야. 환영해.]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작전은 작전대로 펼쳐졌다. 저녁에는 작전을 펼치지 못한다. 아예 움직이는 것도 버거워진다. 알지 못하는 곳에 와서,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맛보고. 호기심 반과 두려움 반 속에 이제 그들의 작전은 거의 끝에 다가와 있었다.


-”


다른 세계는 저녁이 되면 시작된다. 경계를 지우고 어두운 하늘에 불길이 솟는다. 그리고 별들이- 붉은 별들이 빠르게 쏟아진다.


테토라? 안 자고 뭐해?"

, 미도리군. 보십쇼.”


오늘의 하늘이, 유독 붉슴다. 테토라는 막사의 기둥에 기대어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자다 나온 타카미네는 눈을 비비며 나구모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향했다.


우와아…….”


하늘이-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붉은 하늘. 이곳은 어두워지지 않는다. 저녁의 그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저 하늘의 열기와 눈부심이 1차적 원인이다. 그림자들마저 숨는 공간. 이곳은 그들에게 너무 이상한 세상이었다.


미도리군.”

?”

내일이면- 이 세상도 저희와 이별임다.”

……. 그러네.”


도쿄로 돌아가면- 게임센터에 가서 유루후와 캐릭터들을 뽑을 거야. UFO기기의 마스터급 손길을 보여주는 타카미네는 한숨을 쉬며 나구모를 바라보았다.


테토라는. 뭘 할 거야?”

…….”


글쎄요. 아직,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슴다. 조금 더 일을 할까. 아니면 다른 직업을 찾아볼까 싶어요. 나구모는 웃으면서 별을 하나하나 세었다. 붉은 별의 축제가 열렸다.

이곳은 아름다운 세상은 아니다. 죽음과 삶의 경계선 어딘가 이고, 삶을 영위하는 자들은 극소수다. 자신들은 불청객에 가깝다.


?”

?”


타카미네의 목소리에 나구모는 다시 하늘로 호박색의 시선을 향했다. 커다란 별이- 떨어지고 있었다. 불길에 치솟는 별이. 아주 빠르게.


여긴 유성이 많아.”

그러게 말임다.”

얼른. 집으로 가고 싶어.”


눈이 피곤하니까. 일본으로 돌아가면, 푹 잘 거야. 이틀정도 자고난 뒤에 게임센터- 타카미네는 결론적으로 게임센터에 가겠다는 마음을 다지고 또 다졌다.


두 분……. 안 피곤하시오?”


잠에서 자다 깬 캅캅한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오자 둘은 시선을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돌렸다. 익숙한 목소리다. 잠에서 깰 때 약간 긁는 듯한 목소리가 누군지 확실히 알게 해 준다.


, 시노부.”

두 분 소리에 깼소. 하아아아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는 센고쿠는 눈을 느릿느릿 뜨며 나구모를 바라보았다. 잠도 없으시오? 내일 귀국하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잠은 청하는 것이 좋소. 센고쿠는 팔을 붕붕 돌리며 막사 밖으로 나왔다.


오늘 하늘은-”

엄청나지?”

마지막이라고 더 붉은 기분이오.”


센고쿠는 주머니에서 수통을 꺼내어 나구모에게 건네었다. 안에 아마도 양주가 들어있을 것이다. 저 녀석, 은근 술 세다니까.


Don’t forget this time.


나구모는 물끄러미 수통에 새겨진 음각의 문장을 엄지로 쓸었다. 약간 패이고 찌그러졌어도 센고쿠의 품에서 오래 버텼다.


물임까?”


한 번 물어보았다. 물론 대답은 하나였다.


조니워커.”


비싼 술 좋아하네. 나구모는 한 모금 들이마시고는 인상을 슬쩍 찡그렸다. 역시 잘 넘어가는 건 아는데, 별로야. 수통을 잠가 타카미네에게 건네었다. 타카미네는 손으로 몇 번 문지르다 그냥 센고쿠에게 돌려주었다.


내일 몇 시 귀국비행기오?”

……. 16시였지?”

아마 맞을검다.”

후우-”


늦어. 오전까지 작전을 완수하면 되는 거겠지. 나구모는 별을 한 번 더 세어 보았다. 별을 세어봤자 그 별이 떨어지면 소용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계속 세었다.


시노부군, 미도리군.”

?”

이 하늘이 오늘로 끝이잖슴까.”

그렇지.”

그렇소만.”

사진 한 장 어떰까?”


감상에 젖은 말이었으려나- 나구모가 멋쩍게 웃자 센고쿠는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었다. 그래도 셋 중 센고쿠가 제일 최신형이었다.


모이시오.”


뒤의 붉은 저녁을 등지고 셋은 엉거주춤하게 모였다. 제일 작은 센고쿠가 정 가운데. 그리고 위로 타카미네, 그리고 옆쪽에 나구모.


하나~ ~”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와아악! 잠깐 저 눈 감은 것 같슴다! 뭔가 이상해……. 셋은 몇 번의 실패 끝에 제대로 된 사진 한 장을 건졌다.


붉은 별이 내리는 붉은 하늘이라니.”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하겠지.”

…….”


그러네. 이제 이곳에서의 작전은 끝이다. 다시 올 일은 없을 것이다. 용병생활 중 가장 높은 보수를 불렀던 지라 왔을 뿐, 이 생활도 곧 막바지니까.


처음 보는 세상에 온 걸 환영한다고 했었지.”

. 그땐 막연히 이럴 줄은 몰랐소.”


첫날 저 하늘을 봤을 때는 셋 다 얼어서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를 먼저 생각했었다. 생각해보라. 오전부터 해지기 전까지 작전을 수행하고 나면 밤이 되어 잘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을 뒤엎는 붉은 저녁이란. 컬처쇼크에 가까웠다.


진짜 안녕임다.”


바이바이. 이별이오, 이곳의 세상. 이제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검다. 셋은 웃었다.

나구모 테토라. 타카미네 미도리. 센고쿠 시노부.

붉은 사막의 달작전이 끝났다.

 


*

 


역시 사막은 선탠이죠.”


유후! 다리를 꼬며 선베드에 누운 남자는 양 손에 깍지를 끼고 선글라스를 쓴 채 사막의 밤을 만끽하고 있었다.

오늘은 말보로 라이트의 밤이야. 그는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꺼내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기름의 맛. 타르와 니코틴의 맛.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행복한 표정으로 선글라스를 살짝 내려 숨을 크게 부는 키류를 보았다.


휴가를 달라고 한건 좋은데.”


왜 하필 공과 함께 왔을까. 원래 휴가는 그리스로 가려고 했는데. 하스미님에게 휴가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선뜻 가라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했다. 내 상사가 그리 순순히 유능한 나를 휴가 보내줄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남자, 타카츠카사 료(鷹司 亮) 피식피식 웃으면서 키류를 보았다. 인간이 아닌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 인간이 아님을 어필해도 되나 싶을 정도다.

키류 쿠로. 인간이 아닌 자. 홍월의 삼두(三頭)는 인간이 아니다. 아는 자들은 극소수. 그 극소수 안의 타카츠카사는 입이 무겁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이다. 그랬기에 그는 홍월 안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용에 가까운 자, …….”


후우- 연기를 뱉어내며 웃은 그는 굳이 그런 사색에 잠길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는지 눈을 감고 선글라스를 제대로 꼈다.

그리스고 여기고 뭐 어때. 선탠이 하고 싶었으니까. 키류 쿠로는 종종 오랜 잠에서 깨어나면 이곳에 왔다고 한다. 그가 태어난 곳. 그가 가진 능력을 처음으로 행한 곳이 여기라고 들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네가 가장 조용하기 때문이지.’


우롱차를 우리며 웃던 하스미가 생각났다. 그는 홍월 저의 가장 높은 곳에서 차를 마시며 타카츠카사에게 말했었다.


가는 거면 키류와 함께 다녀오도록 해.’

휴가는 그리스로 가고 싶었다니까요.’

그리스보다 좋은 경치를 약속하지.’


정말이야. 타카츠카사는 발을 한 번 굴렀다. 확실히 좋은 경치다. 산토리니보다 좋은 경치. 저녁이 붉은 곳. 하얀 별들이 붉게 부서지며 쏜살같이 내리꽂는 이곳은 너무나 아름답다.

담배 한 개비가 완전히 타들어간다. 키류가 느릿느릿 일어서고 있었다. 청색의 천 위로 붉은 피안화가 켜켜이 수놓아져 키류가 움직일 때마다 흔들린다. 옷이 다 탔네……. 상체 쪽의 반은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얼마나 있는 겁니까?”

?”

여기 말입니다.”

바로 갈 건데.”

…….”


내 휴가가 0.5일 정도인 것 같은 기분은 뭐지. 하스미님이 날 속인건가. 타카츠카사는 인상을 살짝 구겼다. 그리고는 말보로 라이트를 키류에게 내밀었다.


하나?”

아니.”


금연이나 해볼까 해. 키류의 말에 타카츠카사는 속으로 신나게 웃었다. 작심삼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저 소리를 한두 번 들어봤나.


여긴 언제 또 오십니까?”

아아- 한동안은 오지 않을 거야.”


이곳에서의 볼일은 끝났거든. 불의 기운을 받았으니 충분해. 키류는 선베드 끝에 앉았다. 등의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아 타카츠카사는 움찔움찔하며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저 등의 용은, 신부를 찾기 전까지는 키류의 몸에서 움직인다고 들었던 것 같다.

신부를 맞이할 때, 즉 간택이 되면 신부에게 가서 정착한다고 한다. 용술사(龍術師) 키류 쿠로의 간택은 아직 이루어진 적도 없다.


그렇게 덥지 않네요.”

여긴 사막이어도 저녁에는 춥지 않아.”

사막의 저녁은 입 돌아간다는데.”

우선, 내가 옆에 있는 것이 춥지 않은 원인이겠지.”


그리고 이곳의 특성상 저녁이 붉다보니 추위보다는 따뜻함이 더 많지. 이곳을 이용하는 자들도 편안하게끔 말이야. 키류는 먼 곳을 보았다. 뭔가 보이는 것처럼. 타카츠카사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키류를 바라보며 한탄하였다.


휴가는 그리스로 가고 싶었어요.”

그래.”

하스미님께 그리스행 비행기 티켓 좀 끊어달라고 하면 안 되나요?”

……. 물어보지.”


어예-! 타카츠카사는 속으로 만세를 삼창하였다. 물론, 되지는 않을 것이다. 유능한 하스미 케이토의 비서라는 이유로. 하지만 물어보는 게 어딘가. 자신이 말하면 3초도 안되어서 썩둑 잘리는데.


아름다운 밤이에요.”

그래. 인간들은 이곳을 처음 보는 세상이라고 그러더군.”

처음 보는 세상 맞아요.”


지구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상상하지 못해서. 신기방기하죠.


이런 세상이 또 있나요?”

글쎄.”


있지 않을까. 이런 세상이. 인간이 아닌 자들이 공존하는 세상인데, 또 있겠지. 키류는 픽 웃었다. 등의 용이 움직여 어깨 위로 올라왔다. 히익- 타카츠카사는 인상을 살짝 구겼지만 키류에게 이런 건 그냥 숨쉬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래도 전 그리스가 좋아요.”

그래그래.”


불길의 하늘 아래 손님들이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키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며 손바닥을 마주하여 소리를 내었다.


돌아가자.”


정말로, 돌아갈 시간이다.


-

시작.

타카츠카사 료는 지선님께서 제 세계관에 얹어주신 캐릭터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