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쿠로) 용의 신부, 그대
삑삑거리며 시끄러운 알람소리가 울린다. 아 빌어먹을. 벌써 7시야. 분명 11시에 잤는데. 8시간이나 자놓고는 왜 이렇게 고단한 거냐고. 몸을 버둥거렸다.
최근에 몸을 쓴 일이 별로 없……. 없기는 개뿔이. 심심하면 몸을 쓰는데. 도쿄는 생각보다 사건이 잦다. 자신 같은 특수 팀이 나서는 경우가 별로 없을 것 같지만, 그럴 리가. 정말 많이 움직인다. 최근, 더 많아졌다.
“흐아아아암-”
나구모는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콧대를 엄지와 검지로 꾹 눌렀다. 으으- 잠이 안 깨는 기분인데. 어제 뭘 했다고 이렇게 피곤한가. 나도 늙었어. 아마 저 소리를 팀원들 앞에서 했다가는 졸지에 같이 늙은이가 된다고 이단 옆차기를 맞을 것이다. 나구모는 한숨을 쉬고는 목을 오른쪽으로 두 번, 왼쪽으로 두 번 꺾어보았다. 우드득 드드득 소리가 귀에 울리면서 뼈와 뼈가 맞춰지는 게 느껴졌다.
“아- 출근하기 싫다.”
왜 나는 출근이지요. 왜 저는 공무원이지요. 백수이고 싶습니다. 돈도 꽤 벌었는데 왜 저는 일하고 있는 거죠. 그러면서도 나구모는 착실히 셔츠를 벗으며 욕실로 들어갔다.
출근은 9시까지. 아침은 가볍게 토스트면 되겠지. 토스트 5장. 평상시대로.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따땃한 물을 맞으며 한숨을 쉰 나구모는 샤워를 끝내고 나와 옷을 입으며 TV를 켰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은 가볍게 수제 요거-]
[376 프로덕션의 인기 멤버 타카-]
[오늘도 핫피 핫피하게 토ㅌ-]
[속보입니다. 신주쿠에서 다시 한 번 묻지마 살인 미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채널을 몇 번 돌리다 멈췄다. 꽤 벌어지는 일이다. 나구모는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리모컨을 소파에 던지고는 냉장고쪽으로 걸어가 식빵을 꺼내었다.
“퇴근하면서 마트 돌아야겠네…….”
냉장고 안에 남은 재료들이 별로 없었다. 오늘 큰 일만 없으면 퇴근하고 마트를 돌면서 이리저리 털어야겠다.
[최근 늘고 있는 묻지마 살인사건에 시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토스터기에 식빵을 넣고는 프라이팬을 꺼내 계란을 톡톡 까 넣고는 젓가락으로 휘적였다. 평화로운 집과는 달리 뉴스의 이야기는 평화롭지 못하다. 나구모는 이런 것이 꽤 익숙하다는 듯 빠르게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었다.
아침의 사건사고 뉴스를 들으면서 식사를 하는 것이 일상인 나구모는 플레이팅을 마치고는 잘 구워진 식빵 5개, 스크램블 에그, 칼집을 내서 튀겨낸 소시지. 버터와 버터나이프.
입을 크게 벌려 식빵을 베어 물었다. 바사삭- 하게 입 안 가득이 들어찬 식빵을 씹으며 우유를 마시고는 시계를 보았다.
“…….”
시간이, 안 가는 것 같은 기분인걸. 휴대폰으로 시간을 보면 맞는데. 오늘따라 기분이 좀 이상하다. 이럴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런 날은 꼭,
“사건 하나 터져서 야근하지.”
하느님 신이시여. 나구모는 인상을 찡그렸다. 20대부터 어지간한 곳에서 구르다 보면 어느 날은 어떠하고 어느 날은 또 지랄 같을 때가 있다.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다 겪어봤다. 촉이 자신을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 이 감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삑삑삑삑삑-
찰칵- 띠리링-
현관의 오토락을 누르는 소리. 그리고는 잠금이 풀어지는 소리. 현관문이 열렸다. 나구모는 그러거나 말거나 식빵을 우물대며 버터나이프를 들었다. 누군지는 아는데, 혹시 모르니까.
“테토라. 오늘, 힉!”
타카미네는 발소리도 안 내고 조용히 들어오다 자신의 눈앞을 그대로 스쳐가는 버터나이프를 보며 식겁하였다. 이런. 던지지 말 걸 그랬다. 멋대로 팔이 나갔다고 하면 혼나겠지.
“아, 미도리군. 미안.”
“미안- 이라니! 하아, 최악. 이럴 줄 알았으면 시노부에게 먼저 가라고 했을 텐데.”
“무슨 소리오?”
뒤늦게 들어온 센고쿠는 비닐봉지를 들고 오며 고개를 갸웃하였다. 타카미네는 울상이 되어 센고쿠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었소?”
“테토라가 내게 나이프를 던졌어.”
“버터나이프임다.”
“나이프는 나이프지.”
“안 죽잖슴까.”
“죽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테토라공이 던지면 죽소.”
센고쿠가 가볍게 츳코미를 걸며 식탁 위에 비닐봉지를 놓았다. 그리고는 나구모의 식빵 하나를 반으로 나눠 입에 물었다. 나머지 반은 타카미네의 입으로 들어갔다.
“둘 다 굶었슴까?”
“시리얼 먹었소.”
“아침밥 먹었어.”
“전 이게 아침임다.”
“한 장 안 먹는다고 해서 안 죽어.”
타카미네는 오물오물 씹고는 나구모의 컵에 담겨 있던 우유를 그대로 원샷하였다. 윽! 인상을 팍삭 찡그린 나구모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타카미네를 보다 센고쿠가 가져온 비닐봉지를 보았다.
“뭐야?”
“이맘때 즈음에 비잖소. 가볍게 먹을 것들.”
“땡큐-”
비닐봉지에는 사흘치 정도의 식사 거리들이 들어 있었다. 나구모는 주섬주섬 꺼내어 냉장고에 차곡차곡 놓았다. 주말에 쇼핑하면 되겠다.
“슬슬 나갈 시간인 것 같은데.”
타카미네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센고쿠는 현관문 쪽에 있는 차키를 검지에 걸고는 웃었다. 오늘 운전은 졸자요.
“옷, 얼른 입고 오시오.”
“응.”
나구모는 빠르게 남방을 걸치고는 밖으로 나왔다. 오늘 운전은 베스트 드라이버, 센고쿠 시노부. 조수석에 앉은 나구모는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았다.
“내일 오프가 테토라공이지 않소?”
“아- 나 저번에 한 번 빼서 내일은 나가야해.”
경시청 특수팀 소속의 SWAT는 주중에 한 번씩은 쉰다. 주말은 당연히. 대신 일이 터지면 조건 없이 나와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예의 일화로 셋이서 주말이라고 신나게 오키나와로 놀러갔다가 인질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얄짤없이 비행기 타고 도쿄로 온 적이 있다. 그 때를 보고 ‘최악의 오키나와’라고 대장이 낄낄대며 놀렸었다.
“주말에 일 없으면 뭐할까?”
“우선 나는 쇼핑. 마트 돌면서 먹을 거 사야해.”
“좀 큰 데로 가는 게 나을지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주말의 일정을 궁리하였다. 쇼핑 끝나고 나서는 셋이서 영화라도 한 편 볼까. 오래 안 친구들답게 영화나 게임 취향이 비슷하다.
지이잉- 지이잉-
“응?”
“미도리공. 제 가방에서 휴대폰.”
“아아. 내가 받는다?”
“네.”
타카미네는 뭐지? 하는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보았다. 대장공. SWAT 팀장, 모리사와 치아키다. 타카미네는 바로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대었다.
“네, 리더.”
[음? 타카미네? 지금 셋이서 출근중이구나.]
“네. 시노부 바꿔드릴게요.”
[아냐아냐. 그냥 네가 들어도 되는 거야.]
“무슨 일인가요?”
[긴급. 올 수 있는 최대 속도로.]
“……. 네.”
타카미네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백미러로 그런 타카미네를 보던 나구모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센고쿠도 마찬가지.
“무슨 일이오?”
“엑셀 밟아.”
“?”
“긴급이래.”
긴급. 모리사와가 잘 안 쓰는 말. 그리고, 쓰면 진짜 긴급이라는 말. 센고쿠는 엷게 한숨을 쉬었다. 타카미네는 안전벨트를 꽉 쥐었다.
“두 분. 꽉 잡으시오.”
전속력으로 밟을 겁니다. 빨간 불에서 파란 불이 켜지기가 무섭게 센고쿠의 왼발이 액셀레이터를 힘차게 밟았다.
분명 아침 출근길인데. 러시아워로 고통 받을 시간인데. 나구모는 오른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모리사와가 말한 긴급의 원흉을 (알지도 못하건만)격하게 원망하였다.
*
“불.”
“끊는다며.”
작심삼일이야. 하루에 한번은 끊겠다는 소리와 함께 입에 장죽을 물지. 하스미는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성냥을 꺼내었다. 가볍게 그어 불을 붙이고는 장죽 끝에 가져다 대자 연기가 천천히 피어오른다. 키류는 노곤하다는 표정으로 입에 물고는 깊게 빨았다.
“그거 다 피면 좀 나서.”
“무슨 일 있어, 나리?”
“응.”
하스미는 읽던 서류들을 내려놓았다. 꽤 오래 안 잔 얼굴로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바쁜 건 알고 있다. 하지만 한두 번 바쁜 게 아니라 그냥 평상시가 바빠서 거기서 거기 같을 뿐.
“내가 꽤 짜증내던 놈 기억나?”
“……. 한두 번 짜증을 부려… 익!”
키류의 말에 하스미가 들고 있던 다기 잔의 녹차가 그대로 장죽에 부어졌다. 크악! 불이 그대로 꺼져버렸다. 아아- 빌어먹을.
“최근에. 내 별저에 들어왔던 놈.”
“아아- 그.”
이제야 기억이 났다. 하스미는 사람들 들이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지라 별저에 사람이 드나드는 경우가 적다. 가장 최근은- 홍월의 구역을 탐내는 놈이었다.
“왜?”
“그 자가 지금 경시청과 거래를 하려고 해.”
“그런데.”
“입을 열기 전에 처리를 해야지.”
“열어도 크게 상관은 없을 듯 한데.”
출두는 딴 놈들이 하지, 나리가 하는 거 아니잖아? 그 말을 뱉고 정확히 10초 뒤 키류는 한숨을 쉬었다. 하스미가 한 말이 기억이 난 것이다. 그래. 그 놈은 별저에 들어왔었지. 그건, 이곳 어딘가에서 한번은 자신들을 봤다는 소리가 된다. 입을 열면 안 되는 자, 인 것이다.
“텐쇼인 그룹을 변호하는 내 로펌이 그런 놈들이랑 동류가 되면 곤란해.”
나도. 너도. 칸자키도. 그리고 홍월도. 하스미는 한숨을 쉬었다.
“깨어났으면 움직여.”
하스미는 잔에 남은 녹차를 마시며 말했다. 홍월의 삼두(三頭). 이들 중 하스미 케이토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 그나마 움직일 자는 둘 뿐인데. 그 둘 중 키류 쿠로를 먼저 내보낸다.
“먼저 가서 처리해.”
눈을 감고 있던 하스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미묘하게, 오른쪽의 동공이 세로로 찢어져 있었다. ‘탈피’가 얼마 안 남았군. 키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교란하고, 칸자키를 움직이게 하지.”
“그건 마음대로 해.”
지도는 네 것이야. 움직이는 것도 네가 해야지. 하스미는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방을 빠져나갔다.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대청에, 구름에서 벗어난 햇볕이 조금씩 드리운다. 하스미의 그림자가, 괴상할 정도로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쯧-”
키류는 혀를 한번 세게 차고는 장죽을 내려놓았다. 원래라면 하스미가 나서도 되는 이야기다. 하스미의 능력이라면 자신들이 움직이지 않고도 충분히 놈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저 그림자를 보면 입이 쉬이 열리지 않음은 분명하다.
달이 차고 기울 듯, 하스미의 능력도 쓸 때와 쓰기 버거울 때가 있다. ‘탈피’가 끝나지 않는 상태의 하스미는 지금 이렇게 움직이고 일을 하는 것도 힘겨울 것이다. 하스미의 ‘고용주’도 그것을 알고 있고.
능력을 무한에 가깝게 긁어 쓰는 자신과 칸자키와는 사뭇 다르다. 생각해보니 하스미는 자신이랑 같은 계열도 아니다.
“키류공. 하스미님은요?”
“아, 료.”
타카츠카사는 결재 서류들을 품에 가득이 안고 발을 디뎠다. 하스미가 가장 신뢰하는 인간.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간.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키류와 시선을 마주하였다.
“나리가 몸 상태가 나빠.”
“급한 건 아닌데.”
많이 나쁘신 건가요? 그의 표정이 나빠진다. 하스미가 열과 성을 다해서 부려먹는 쪽임에도 걱정하는 걸 보면, 저 녀석도 어지간히-
“텐쇼인 기업 쪽에서 요구 개선 사항이 많이 들어와서. 우선 로드 걸고 있겠습니다.”
“그쪽은 내가 아는 게 아니니까. 이번 주만 시간 끌어줘.”
“또 하스미님을 팔아야겠네요.”
“아프다고 하면 이해해 주겠지.”
“이해는 개떡. 거기 겁나 철벽이에요!”
저 병원 실려 간 날 혈압이 겁나 높았는데, 그놈들이 제 혈압 다 올렸다니까! 타카츠카사는 발을 한번 콩 굴렀다.
“아예 텐쇼인 직통으로 넣어서 나리 아프다고 해.”
“미쳤어요? 제가 왜 회장에게 그런 전화를 넣어요!”
텐쇼인 회장은 웃으면서 사람 죽이는데 그렇게 재주가 좋다고 들었는데요! 전 오래 살고 싶습니다. 제가 홍월 고참인데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는다! 저희 집 가훈이에요. 타카츠카사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근데- 어디 가세요?”
“아아. 나리 심부름.”
그 말에 타카츠카사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키류를 말없이 보다 조용히 입술을 움직였다.
“조심하세요. 평상시와 다르신 거, 눈에 보입니다.”
“…….”
그 말에 키류의 숨이 잠깐- 아주 잠깐. 멈췄다. 타카츠카사는 서류를 들고 이곳을 벗어나는 듯이 발을 움직여 걸어갔다.
인간인데, 역(逆)이 보이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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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려... 졸려....ㅠㅠㅠㅠㅠㅠㅠㅠㅠ
둘이 만나려면 너무 멀어서 급 슬퍼졌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