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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이즈)

0117 2016. 9. 25. 02:20

앙상블 스타즈 리츠이즈 전력 60분

주제: 선물



살다보면, 개같은 순간이 온다. 세나 이즈미는 그런 순간이 바로 오늘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혀 끝에 맴도는 욕을 느리게 갈무리하며 인상을 찡그린 세나는 양 손을 깍지끼고 흔들의자에 앉았다. 좋아서 마련한 의자가 안락하니 세나를 맞아주었다.

일이 풀리지 않아. 하나도. 이렇게까지 자신이 멍청할 줄은 생각도 못했지. 한숨을 토해내며 눈을 천천히 떴다. 한번 커다랗게 굴려보았다. 약간 물기를 머금은 눈이 조심조심 위에서부터 아래로, 다시 아래서부터 위로 굴렀다.


"..."


러시아의 겨울은 혹독하다. 한세기 정도 살면서 세나 이즈미의 러시아에 대한 기억은 잔혹하고, 혹독해서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것 뿐이다. 마법사로서의 인생, 인간을 포기한 생은 종종 러시아의 겨울같았다. 지금은 그다지 춥지 않은 일본에서 지내고 있다. 따뜻한 편이다. 도쿄의 겨울은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겨울이 아니다. 9월 20일. 가을이 노다니고 있었다. 아침은 생각보다 찬기가 있다. 어제는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잤다가 감기에 걸릴 뻔했다.


"Я голоден.(배고파.)"


시선을 들어 달력을 보았다. 그리곤 몸을 일으켰다. 오늘 일진이 더럽게 사납지만, 텐쇼인에게 쫓기던 것 만큼 사납지는 않겠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은, 보드카가 고픈 날이다. 삐걱이는 몸을 이끌어 부엌으로 갔다.

냉동실을 뒤지니 역시나 보드카 한 병이 있었다. Аллилуйя(할렐루야). 세나의 종교는 무교에 가까운 불교지만 오늘은 T.G였다. 가볍게 한 잔 하면 속도 따뜻해지고 기분이 좀 나아질 것이다. 딱 병을 따서 한잔 따르고 입에 대려는 순간 현관문의 도어락이 삑삑이는 소리를 냈다. 올 사람은 별로 없다. 레오나, 쿠마군이나, 나루군이나, 카사군 정도.


"이즈미짱~ 아침 사왔어~"

"Доброе утро.(좋은 아침)"

"아침부터 술이야?! 그것도 보드카라니! 이즈미짱, 아침부터 과음하면 못써!"


떽! 대번에 잔과 술까지 뺏겼다. 세나의 인상도 대번에 안좋아졌다. 나루카미는 대신이라면서 봉지를 내밀었다. M자가 떡하니 있는 것이. 아침부터 맥모닝이군. 싫어하지는 않는다. 가볍게 먹기는 좋으니까.


"커피는 내가 타줄께."


간만에 핸드드립으로. 나루카미는 웃었다. Спас... 고마워. 이즈미는 조심스럽게 그 웃음에 화답해 주었다.

세나 이즈미의 몸은 교체된지 이제 나흘이 되었다. 무력한 것들을 견디지 못하는 마법사들에게는 최악의 시간이라 불리는 스페어 교체후유증. 마법사들은 자신과 같은 육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곤 현재의 몸이 훼손당하면 그 육체로 갈아타는 것이다. 그 갈아타게 되는 육제를 '스페어' 라고 부르며, 육체와 동화되는데는 능력마다의 차이지만 짧게는 닷새, 오래는 보름정도 걸린다. 교체하고 나서는 움직이는 것이 버겁거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것을 보고 '스페어 교체후유증'이라고 말하고 '제일 싫은 시간'이라고 읽는다.


"움직이는 건 어때?"

"그냥저냥. 좀 삐걱대는 것 빼곤 괜찮아."

"깨어난지 4일밖에 안되었으니까."


아, 그렇게 되면. 이즈미짱은 무리려나. 나루카미의 웃음섞인 말에 세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뭐가 무리야?


"오늘, 9월 20일은 리츠짱의 생일인걸. 생일파티 하려고 하거든."

"..."


한 세기정도를 살면서 단 한번도 축하해 준 적 없는 것 같은데. 쿠마군 생일. 세나는 눈을 굴렸다. 역시 오늘은 일진이 사나워. 더러워. 사람살려. 아니, 마법사 살려.

100년도 넘도록 알아왔으면서 생일을 모른다는게 말이 되니?! 말은 되겠지! 안 될 이유는 없으니까! 세나의 안색이 흙빛이었다. 맥모닝 먹다 돌이라도 씹은건가 싶을 정도로. 나루카미는 커피 한잔을 세나에게 주며 옆 의자에 앉았다.


"왜?"

"..."

"왜 그러는데 이즈미짱?"

"어... 아냐."


맛있네. 내일은 핫케이크로 먹고 싶어. 세나의 조그마한 주문에 아라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리츠짱. 뭘 선물해주는 게 좋으려나. 저번엔 코트였거든. 휴고보스. 리츠짱이 마음에 들어해서 어렵게 사온 보람이 있었어."


이즈미짱은 뭘 해줄거야? 라기에 세나는 아무말 없이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뭘 해주는게 문제가 아니라 쿠마군의 생일이 오늘이란 게 충격적이야. 아무리 나나 쿠마군이 무심해도 그렇지.


"이즈미짱?"

"어?"

"뭐 해줄거냐니까."

"... 글쎄."


내가 쿠마군 취향을 잘 모르네. 한세기를 알아왔어도. 솔직히 친하다면 엄청 친하고, 서먹하다면 엄청 서먹한 사이다. 속궁합 하나는 끝내주지만, 사적으로도 둘이 잘 돌아다니지만.

지금 세나 이즈미는 사쿠마 리츠를 볼 자신이 없었다.


-


"어쩌지..."


몸을 움직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코마에서 깨어난 환자가 재활훈련이 필요한 것과 비슷한 것이다. 세나는 다리에 힘을 줘 걸어보았다. 열걸음도 안 되어서 다리에 힘이 풀려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이럴땐 왕님, 츠키나가 레오가 그렇게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다. 츠키나가는 스페어를 교체하자마자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움직일 수 있다. 역시, 마법사의 왕.


"진짜 어쩌지..."

 

무작정 나가기엔 무리다. 초조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 휴대폰이 울렸다. 부엌 식탁. 정말 짜증나 죽겠네. 어떤 놈이야. 힘을 줘 몸을 일으키고는 벽을 짚고 조심히 걸었다. 휴대폰 벨소리는 계속 울렸다.


"Алло.(여보세요)"

「러시아어로 말하는 버릇좀 고쳐, 셋짱.」

"... 잘 시간 아냐?"

「잠이 안와서. 조금 있다가 잠깐 들를 건데.」

"아... 응."

「비밀번호를 잊어버렸어.」

"... 1102."


조금 있다가 봐. 뚝 끊긴 통화에 세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되는게 없네. 세나는 한숨을 쉬며 부엌바닥에 앉았다. 아니다. 옷이라고 입고 있자. 지금 입은 옷은 헐렁한 셔츠에 트레이닝 바지였다. 쿠마군이 가고나면 카사군이라도 불러야지. 꾸물꾸물 옷장 앞까지 용케 간 건 좋은데.


"뭘 입지."


날씨가 선선하니 괜찮을 듯 하다. 가볍게 셔츠와 진을 입었다. 나루카미가 이거저거 많이 가져다 놓은 덕에 옷은 확실히 살 일이 없다. 시계를 차고 왼쪽 손에 반지를 끼...


"-지는 말자."


그냥 시계만 찼다. 약간 손이 허전하지만 좀 익숙해지면 편할 것이다. 도어락 열리는 소리에 현관쪽을 보니 리츠가 신발을 벗고 있었다. 한쪽 귀에만 꽂혀있던 이어폰을 빼며 세나를 본 리츠는 어깨를 으쓱하며 들어왔다.


"스-짱이랑 왕님이 이거저거 전해달라고 해서 들렀어."


식탁 위로 쇼핑백만 네개나 올려놓은 리츠는 기지개를 켜며 거실로 걸어갔다. 세나는 아무 말도 안하고 리츠를 보기만 했다. 소파에 늘어지듯이 누운 리츠는 세나를 보며 슬쩍 웃었다.


"좀 자고갈래."


그래도 돼지?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츠는 눈을 감았다. 금새 새근새근 자는 소리가 들린다. 세나는 발소리를 내지 않고 조심히 리츠의 옆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았다.


"..."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특유의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지금 세나 이즈미는 못한다.


"С днем рождения.(생일 축하해)"


조그맣게 중얼거려보았다.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어쩌지. 마음 한켠이 사각이는 것 같았다. 사주는 건 쉽다. 가난뱅이도 아니고. 돈도 있으니까. 문제는 뭘 사줘야 할지, 무슨 말을 하며 생일을 축하한다고 할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난관이었다. 이럴 바엔 텐쇼인에게 백번천번 쫓기는 것이 낫겠다 싶기도 하다. 아니다, 취소한다. 다시는 쫓기고 싶지 않다. 


"..."


시계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계속 리츠를 보던 세나는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카사군에게 연락해서 잠깐 나가고 싶다 해야겠다. 휴대폰을 어디에 뒀더라. 비틀거리며 옷장쪽으로 걸어가려던 차였다.


"앗."


몸에 힘이 풀리면서 그대로 고꾸라져버렸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철퍽- 하는 소리였는데. 아픈것도 아픈것이지만 이젠 짜증이 나 죽을 것 같았다. 세나는 있는 욕을 신나게 러시아어로 늘어놓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호잇-"

"?!"


뒤에서 세나의 옆구리를 잡고는 번쩍 일으켜 세우자 세나의 눈이 커졌다. 앗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세나를 일으켜 세운 리츠는 아프지는 않냐고 물었다.


"마법사는 이래서 불편해."

"이럴때 짜증나."

"그래. 신나게 욕한 거 들었어."


셋짱,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입이 걸구나. 그 말에 세나의 눈이 세모꼴이 되었다. 리츠는 그러거나 말거나 세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어디 가려고?"


먼저 입을 연 건 리츠였다.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다줘? 그 물음에는 눈만 굴렸다. 혀도 입 안에서 굴려보았다. 리츠는 주머니에서 절그럭대는 차키를 들어보였다.


"데려다줄께."

"..."


세나의 눈이 약간 흔들리는 게 보였다. 리츠는 시선을 슬쩍 밑으로 내렸다. 걷는 것은 무리다. 절대로. 몸을 갈아끼운지 나흘이면 원래 거동도 못해야 정상이다. 자신은 마법사가 아니지만 주변이 마법사 천지가 되면 어느 정도 그들을 알게 된다.

리츠는 세나가 신발을 신은걸 본 뒤 팔을 내어 주려다 그냥 안아들었다. 이럴 때가 제일 싫다는 세나의 조그마한 소리를 들으며 밖으로 나와 조수석에 앉혔다. 어딜 가고 싶냐고 묻기에 세나는 어딜 가지- 생각하다


"унив... 백화점."


이라고 답했다. 시동이 걸리고, 자동차가 움직이자 세나의 고개는 왼쪽으로 돌았다. 창밖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리츠도 입을 다물고 운전에 집중했다. 백화점까지 거리가 있어 약간 시간이 걸리는 지라 결국 라디오를 켰지만.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핸들을 가볍게 왼쪽으로 돌려 엑셀을 조금 더 밟았다. 노래 몇 곡. 그것 외엔 공기가 완전히 얼어붙은 듯이 조용했다. 리츠는 흘끗 세나를 보았다. 알고 있는 노래인지 입을 벙끗벙끗하며 따라부르는 것이 모이를 먹는 병아리 같았다.(물론 그런 말을 입에 올리면 혼난다.)


"도착."


셋짱, 걸어갈 수 있어? 라는 말에 세나는 물론- 이라고 답했지만, 리츠는 알고있다. 절대, 못 걸어. 셋짱, 아마 입구에서 엎어진다에 본인이 집필중인 책 다음권을 건다. 리츠는 조그맣게 픽 웃고는 조수석 문을 열어 세나를 안듯이 일으켜 세웠다. 비틀- 하는 시점에서 글렀다. 리츠는 그냥 세나를 데리고 백화점 안으로 들어섰다. 어딜 가는건지 물었지만 세나는 답해주지 않았다. 뭐, 사고 싶은게 있는 건 좋은데, 좀 말이라도 하면 데려다 주기라도 할 텐데. 세나는 어딜 갈 지 확실히 알고 있는건지 엘리베이터에 타 3층 버튼을 눌렀다.

내려서 곧장 걸어 간 곳은 흔히들 명품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시계나 만년필로 특히 유명한 곳이다. 본인도 저곳의 시계를 이용하니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예의바른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자 세나는 쇼케이스 바로 앞의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리츠는 뒤편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카탈로그를 대충 보았다. 뭘 사려고 명품까지.

그런 리츠를 뒤로한 채 이거저거 보며 만년필을 보던 세나는 손을 뻗어 하나를 가리키며 주문을 마쳤다.


"포장해드릴까요?"

"네."


아, 혹시 바로 각인 되나요? 물론입니다. 그럼 해주시겠어요? 여기에 쓰실 문구를 적어주세요. 그녀가 내민 종이에 사각사각 글씨를 적어 내밀자 그녀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미묘해졌다. 세나는 상관 않았다. 각인문구가 그렇게 까탈스럽지는 않은 것 같은데- Луна(달)이라고 해달라는게 뭐.


"여깄습니다."

"감사합니다."


빠르게 결제를 끝마치고는 리츠를 향해 걸어오는 것이, 리츠의 시선에 불안하다. 아가가 갓 걸음마를 익혔을 때 같이 비틀거리며 오자 리츠는 몸을 일으켜 세나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힘을 줘 서있게끔 했다.


"집으로 갈 거야?"

"응. 볼일 끝났어."


엘리베이터에 타려고 기다리는 시간은 꽤 길었다. 오늘 사람이 많네. 혀를 차며 휴대폰을 봐 시간을 확인한 리츠는 세나에 손에 들린 선물상자를 흘끔 보았다. 누굴 주려고 저렇게 곱게 포장했대. 리츠는 피곤하다는 듯이 하품을 하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걸 보았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 거의 낑기다시피 탔다. 혹여나 다칠새라 세나를 끌어안다시피 한 리츠는 좁다고 투덜대는 소리를 들으며 키틀키들 웃었다.


"근데 셋짱."

"?"

"그거 선물 누구 거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주차장으로 걸음을 맞춰 걸으며 리츠가 묻자 세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같이 멈추게 된 리츠는 고개를 갸웃하며 세나를 보았다.


"... 네거야."


리츠에게 내밀자 리츠는 한 대 얻어맞은 듯이 멍청히 세나와 세나의 손을 바라보았다.


"..."

"..."

"... 화해하자고?"

"생일이어서."


꿈 한번 러시아 땅덩어리만 하구나. 화해는 개뿔. 넌 나랑 이번 건에 대해선, 화해 절대로 못해. 세나는 단호히 자르며 리츠에게 선물을 넘겨주었다.


"한세기 넘도록 너를 알면서 생일을 이제 알았다는게 부끄럽지만. 챙겨줄 건 챙겨줘야지."

"하..."

"생일 축하해."


생일파티는 무리니까. 그건 봐 줘. 세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리츠를 보았다. 조금은- 걸을 수 있어진 기분이었다.




-

얘넨 날 잡고 괴롭히는 것 같아...(밤샘)

둘이 서먹한건 이유가 있는데... 그거까지 쓰면 제가 죽을 것 같아서요... 언젠가 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