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st/外

에이레오)

0117 2016. 10. 1. 11:46


"가든웨딩이 좋아."


지나가는 말처럼 텐쇼인은 츠키나가를 보며 말했다. 금방이라고 눈꼬리를 타고 최상급의 갓 짜낸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눈으로 츠키나가를 보는 시선에 츠키나가는 인상을 왕창 구기며 작곡에 집중하였다.

넓은 대리석 바닥을 어지럽히듯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악보들의 뛰놀음에도 텐쇼인은 아랑곳 않고 잘 우려낸 감색의 홍차향을 만끽하며 츠키나가를 보았다. 초콜릿 향의 가향차. 로얄코펜하겐 사의 초콜릿베리는 텐쇼인의 마음에 썩 들었다.


"츠키나가군."

"아아아아아- 말 걸지마. 인스피레이션이 사라지려고 한다고!"


황제랑 대화할 땐 머릿속의 모든 것이 지워지는 기분이야! 세상의 보물들을 유실시킬 순 없어! 조용히 있어줘! 츠키나가는 무아에 이르른 표정으로 악보를 바라보며 손을 놀렸다. 펜이 쉼 없이 종잇장을 누비고 또 누빈다. 텐쇼인은 다리를 꼬며 츠키나가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동글동글한 뒤통수. 손을 내어 쓰다듬었다간 가르르- 소리를 내며 찌릿 노려볼 것이다.


"열정적이네."


조곤하게 중얼거리는 텐쇼인의 목소리는 츠키나가에게 들리지 않았다.

만약 들렸으면 어떠하려나. 츠키나가는 이 때를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인스피레이션이 차라리 사라지더라도 그 때 텐쇼인을 상대했었어야 했다.





에이레오) Bride Magician (Feat. 아이님)





텐쇼인이 가지고 있는 땅덩어리는 세계 전역으로 꽤 되는 축에 속한다. 그 중 가장 뷰가 좋은 곳을 골라 저택을 짓고, 커다란 정원을 만들었다. 전망이 탁 트인 곳은 텐쇼인이 티타임을 즐기기에는 적합한 곳이다.

오늘은, 이곳이 티타임이 아니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영원히 소유하는 곳으로 바뀌게 된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텐쇼인은 짙에 미소를 지었다. 곱게 접히는 눈의 시선은 화려한 꽃들에게 향했다. 겹겹이 꽃잎들을 품고있는 작약들은 텐쇼인이 좋아하는 꽃이다. 종종 츠키나가에게 선물을 했지만, 꽃은 딱히 취향이 아니라고 자르면서도 보는 것은 나쁘지 않았던지 츠키나가는 꽃을 들고 텐쇼인의 품에 안겨있기도 했었다.


"준비가 거의 다 되었습니다."

"그래."


구름이 약간 꼈음에도 쨍하게 좋은 날씨다. 광합성 하기 좋은 날.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흰색의 버진 로드가 깔리는 것을 본 텐쇼인은 막바지로 치닫는 예식에 발길을 돌려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응접실이 분주하다. 발걸음 소리들이 이리저리 섞인다.

텐쇼인은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디뎠다. 신부에게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면서도 짧다. 수많은 방 중 하나의 문을 열고 조심히 안으로 들어갔다.


"텐쇼인님."

"이쪽은 준비가 끝났습니다."


준비가 끝났다, 라. 식장에 들어서서 네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고 결혼서약의 확증이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절대. 텐쇼인은 침대 위에 누워 자고 있는 자신의 신부를 바라보았다.

드레스가 잘 어울리네. 이럴 줄 알았으면 카탈로그를 더 봐서라도 많이 체크해둘걸. 그럼에도 저 자고 있는, 츠키나가 레오는 자신의 마음에 가득이 들어찼다. 아름답다. 잠자는 공주는 왕자의 키스로 깨어나지. 자신이 그 왕자이기를 고대하며. 쉬폰소재의 웨딩드레스는 거추장스러워 보일 정도로 풍성하다. 츠키나가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드레스를 소화해내는 게 용할 정도지만 그 용함은 츠키나가보다는 텐쇼인이 만든 것에 조금 더 가까우니까.


"츠키나가군."


텐쇼인의 부름에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주 깊게 잠이 든 것이다. 오늘의 예식은 츠키나가의 동의를 얻은 건 아니니까. 츠키나가가 깨어있을 땐 때려죽여도 동의를 얻지 못할 것임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츠키나가가 혹여나 동의의 'ㄷ'자라도 꺼내려 하면 츠키나가의 옆구리를 꼬집어서라도 그 소리를 쏙 들어가게 할 세나 이즈미, 사쿠마 리츠, 나루카미 아라시 그리고 스오우 츠카사까지.

날치기 웨딩이기도 하지만. 후후 웃은 텐쇼인은 츠키나가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누드핑크의 립을 조금씩 펴바른 입술은, 꽤 먹고 싶은 허밍버드 컵케이크를 닮았다.


"텐쇼인님. 식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래."


몸을 좀 써볼까? 텐쇼인은 가볍게 츠키나가를 들어안았다. 드레스자락이 구겨질새라 약간 조심스럽긴 했지만 뭐 어떤가. 10분이면 예식이 끝난다. 축사도, 축가도 그런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객도 없다. 오직, 둘뿐이다. 사랑의 서약을 확인하는 자 한명 뿐. 그리고 자신의 품에 있는 반지까지.

시선 끝에 위치한 푸른색의 웨딩슈즈가 꽤 마음에 들었다. 신부들의 워너비라고 매거진에서 보았다. 무심결에 츠키나가의 발 사이즈를 말하며 주문까지 해버렸다. 그런 무심결을 보답해주기라도 하는 듯 발에 쏙 들어가 꼭 맞는 웨딩쥬스에 2초간 짧게 감사를 보내며 정원으로 나와 버진로드의 앞에 섰다.


자신이 소유한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결혼행진곡이 들리자 텐쇼인은 마음이 놓이는 건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내쉬고는 천천히- 천천히- 츠키나가가 깨지 않길 바라며 버진 로드 위를 걸었다. 달콤하기 짝이 없다.


"..."

"짧게 끝내죠."


악단의 연주는 텐쇼인이 버진로드을 걸어 주례자 앞에 선 순간 멈췄다. 텐쇼인의 말에 주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신랑은, 신부를 맞아..."

"평생 사랑할 겁니다. 죽음까지도."


섬뜩한 단어다. 츠키나가 레오는 마법사의 왕이자, 강제로라도 영생을 누리게 된 자이다. 본디 양위를 거치면 죽을 수 있다. 하지만, 양위라는 것을 황제인 텐쇼인이 없애버렸다. 내가 영원히 안 죽고 살 텐데, 네가 왜 죽어. 이기적임의 끝에 서 있었다.

그 죽음도. 츠키나가의 수많은 시체도 사랑할 자가 있다면, 그건 텐쇼인 에이치 뿐이다.


"신부는 신랑을 맞아 기쁠때나 슬플때나 평생을 함께 하시겠습니까?"

"아-"


텐쇼인은 웃었다. 품에 안겨 자고 있는 신부는 'Yes'를 말할 수가 없지. 텐쇼인은 웃으면서 고개를 숙여 츠키나가의 귀에 속삭였다.


"'예'라고 해야지, 츠키나가군."

"으음.... 예...."


잠꼬대처럼 나온 말에 텐쇼인은 웃으면서 주례를 바라보았다. 주례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조그맣게 끄덕였다.


"그러면, 신랑 신부는 반지를 교환하시고."

"굳이 내 반지는 필요 없겠지."


텐쇼인은 웃으면서 한쪽 무릎을 꿇어 오른팔로 츠키나가를 받치고 왼손으로 반지를 꺼내 츠키나가의 왼쪽 네번째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이건, 영원히 빠지지 않을- 네가 주는 너의 목줄.

그리고 자신의 반지는 츠키나가의 오른쪽 엄지에 끼워주었다.

이건, 내가 너에게 선물하는 내 목줄.


"자. 이정도면 되었..."

"음..."


츠키나가가 바르작 거리며 인상을 쓰고는 눈을 천천히 떴다. 고양이같은 날카로운 눈꼬리엔 아직 졸음이 걸려있었지만 츠키나가는 하품을 하며 몸을 약간 움츠리다 텐쇼인과 시선을 마주치고는 눈이 댕그래졌다.


"뭐, 뭐... 뭐..."


당황스러운 듯이 텐쇼인을 보다 시선을 내렸다. 뭔가- 아주- 풍성한...


"주례."

"비로소 신랑과 신부가 하나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하나...? 신랑...? 신부...? 츠키나가는 이제 깨어서 아무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주례와 텐쇼인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굴렸다. 도르륵.


"하아아?!"


약간 늦게 깨달았다. 츠키나가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텐쇼인을 보았다. 이게 뭐야?! 츠키나가의 괴악한 고성에도 텐쇼인을 아랑곳 않고 웃으며 츠키나가의 손에 자신의 손을 마주 깍지끼며 부드러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우린 공식적인 부부인 거야."

"허어어?!"


왠 개소리를. 츠키나가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일어서며 텐쇼인의 손을 뿌리쳤다. 휘청- 처음 신어보는 힐이어서 그런지 균형을 잡지 못해 비틀거렸다. 텐쇼인은 느릿하게 일어나 츠키나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츠키나가군이 반지를 빼지 않는 이상, 영원히 내거야."

"무, 무슨...!"


반지라고?! 츠키나가는 시선을 내렸다. 왼쪽 네번째, 오른쪽 첫번째. 같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츠키나가는 기가 막혀 발을 구르며 반지를 잡아 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빠질리가 만무하다. 네번째 손가락에 있는 은제 링에는 자그마한 블루다이아가 콤콤하게 박혀있었다. 어디 도망치는 마법도 쓰지 못하게 하시겠다- 는 심상이시군.

마법사들에겐, 남이 끼워준 반지는 남의 손으로 빼야 빠진다고 한다. 절대 빠지지 않을 것이다. 텐쇼인에게 빼달라고 하지도 않을거니와, 빼주지도 않을 것을 안다. 이를 바득바득 갈며 노려보는 녹색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 있었다.


"무효야!"

"무효긴."

"난 결혼서약에 찬성한 적 없어."

"잠결에 찬성했어, 츠키나가군. 꿈에서 나와 결혼하고 싶었나보지."

"너랑 결혼할 바엔 혼자 사는게 백만배 낫지!"

"녹음도 되어있는 걸."

"거짓말, 거짓말이야!"


눈물이 울컥울컥 치솟았다. 츠키나가는 그대로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울어버렸다. 결혼이라니.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기가 몇 갠데(쓸모없이 나이 자랑) 저놈이랑 살아야해?! 있을 수 없어! 이혼이야! 이혼! 그런 츠키나가를 보며 텐쇼인은 킥킥 웃었다. 지금, 지금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결혼같은 건 없어. 이혼이야, 이혼이라고! 흐아아아앙-"


화장을 워터프루프로 해서 다행이다. 텐쇼인은 츠키나가를 끌어안고는 가볍게 들어올렸다. 왼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도 나머지 팔로는 텐쇼인의 목을 감싸 안는것이 본능적이다.


"사랑해. 사랑해 츠키나가군."

"난 너 싫어. 싫다고! 이럴 순 없어! 우아앙-!"


정 반대의 말이 마구 오간다. 텐쇼인은 엉엉 울어젖히는 츠키나가를 달래며 버진로드를 걸었다. 신랑과 신부됨을 축하하는 결혼행진곡이 정원을 가득이 메우듯이 울려퍼졌다. 해피 웨딩. 신랑신부 모두 행복하기를...!






-


"헉."


츠키나가는 눈을 크게 뜨며 숨을 들이마쉬었다. 뭐, 뭐야. 하... 꿈인건가. 다시는 꾸고싶지 않은 꿈이었다. 결혼이라니. 결혼은 미친 짓이야. 츠키나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시선을 자신의 왼손 네번째 손가락으로 내렸다.


손가락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