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츠마오) 산하엽
리츠마오 스터디 1주
주제: 바람
(타커플 요소 다분함)
(먼저 보시면 편하게 이해하실 수 있을지도?)
(BGM을 켜고 들어주세요)
아. 그래. 히메미야는 물끄럼 눈에 들어온 남자를 바라보았다. 히메미야의 촉은 끝내주는 편이다. 일전 텐쇼인이 쓰러질 뻔 했을 때도 히비키와 후시미에게 언질을 줘서 더 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았던 적이 있다. 그런 히메미야의 촉이 무서울 정도로 빨간색 비상등을 켜고 앵앵거리고 있었다. 워닝. 워닝. 등골이 쭈볏. 소름이 오소소 오르는 것이, 위험한 기분이 들었다.
"..."
"..."
"... 뭐야. 왜. 뭐 도와줘?"
약간 곤란하다는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히메미야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괜찮아, 이사라 선배. 히메미야의 맑은 녹색의 눈은 바로 자신의 손에 잡힌 서류로 향했다. 회의중 나온 안건을 깨끗하게 정리한 서류가 손 끝의 부들거림에 약간씩 흔들리고 있었다.
평상시의 공기와 달랐다. 그것도 꽤 되었다. 한, 일주일 전인가- 부터. 혹시 몰라서 후시미에게 찔러보았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는 것 같다는 소리만 들려왔을 뿐이다. 유즈루 바보!
그러나 이사라의 공기가 약간 틀린걸 캐치한 건 비단 히메미야뿐은 아니었다. 하스미도 이상함을 어느 정도 안 것 같았다. 그럼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학생회와 관련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렸다.
"저기..."
"응?"
"혹시 무슨 일 있어?"
"뭐가."
뭐야, 히메미야. 네가 먼저 말을 붙이고. 이사라는 슬쩍 웃으면서 히메미야를 바라보았다. 왠일이래- 라는 얼굴이었다. 히메미야는 조금 더 입을 열까 생각하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아냐, 암것도 아냐. 내가 요즘 예민한가봐. 히메미야와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시시하기는. 이사라는 픽 웃고는 마지막 서류에 도장을 쿵 찍고는 잘 정리하여 학생회장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난 끝."
먼저 가볼께. 그것까지만 하고 너도 얼른 가. 궁도부쪽에 유즈루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이사라는 히메미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익! 머리 망가져! 울상이 된 히메미야를 뒤로한 채 이사라는 가방을 들고 2학년 교실쪽으로 내려왔다. 아마도 있겠지. 오늘도 잠자는 내 숲속의 왕자님.
이사라는 B반의 문을 조심히 열었다. 어라. 없네. 분명 아까 나 학생회실 가기 전에 같이 가자고 해놓고는. 이사라는 입술을 삐죽였다. 어딨는거야. 또 찾으러 가야...
"아..."
이사라는 발길을 돌리려다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찾으러 가고 싶지 않았다. 왜인지는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다. 일주일 전의 그 날. 피가 주우욱- 빠지는 것 같은 기분에 현기증을 일으키며 문에 기대었다. 하. 내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을 부르고 있던 연인의 목소리. 상상도 못했던 순간을 현실에서 맛보는 기분이란 얼마나 엿같았던가. 이사라는 혀가 쓴 것 같자 입을 살짝 벌렸다.
"음악실에 가지 않을 거야."
절대로. 이사라는 아랫입술을 아플 정도로 세게 깨물며 눈물을 삼켰다. 그 날만 생각하면 울음이 먼저 차오르는 것이
스스로에게 야속하기 짝이 없었다.
이사라는 음악실쪽으로 가는 길과 정 반대의 길을 택했다. 경음부가 그쪽에 있을 것이다. 가방을 들고 느리게 걸었다. 느리게 지고 있는 황혼의 색이 이사라의 머리카락 위로 조심스럽게 내려앉았다. 이사라의 표정은 많이 어두웠다. 실은 계속 어두워지고 있었다. 불안함과 배덕함이 잔뜩 뭉그러져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 같았다. 언젠가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하. 이사라는 애써 유쾌한 척을 해 보았다. 소용이 없었다.
"..."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B반에서 가지 않겠다는 듯이 길고, 또 길어져도. 이사라는 걸었다. 걸어야 했다. 기다리는 것 만큼 멍청한 짓은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고 심장 한 켠에 칼로 도리듯 다짐하며. 다짐하며.
끔찍한 고문이 하루하루 이사라의 목을 조이고 난도질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달래고 해봤지만, 나아지지 않는다.
꿈속에서도 나오는 너와 세나 선배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아. 이러다가 내가 미쳐버리면 어쩌지? 이사라는 이를 세워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물었다. 발걸음이 멈추었다. 탁해진 초록 눈에 망울망울 맺힌 눈물이 갈 곳 없이 볼을, 턱을, 그리고 바닥으로 낙하했다.
있지, 릿짱. 나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어. 사쿠마 선배와 키스를 해 봤는데-
너와 너무 닮아서.
너무 무서웠어. 아니, 너무 기뻤어. 실은 너와 세나선배의 행동이 꿈인줄 알았을 정도로. 하하하. 이사라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눈물이 쉼 없이 얼굴을 적셨다. 자신의 얼굴이 투명해질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다 비칠 듯이.
"이사라군?"
"..."
이거 봐, 리츠. 난 널 버릴 수 없어. 영원히 널 사랑할 수 있어. 비록 몸은 다른 사람의 품에 있더라도 말야. 간사하고- 새하얗게 울며 웃은 이사라는 발을 떼어 목소리의 주인에게 걸어갔다.
"왜 우니."
"... 릿짱이 보이지 않아요."
애써 입을 뗀 목소리에는 설움이 가득이 가득이 묻어났다. 흠뻑 젖은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형제가 맞구나 싶을 정도로 닮았다. 릿짱도 내가 울면 사쿠마 선배처럼 달래줘요. 이사라는 계속 눈물을 흘리며 조심히 손을 들어 레이의 손을 만졌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따땃한 눈물이 공기에 식어 젖어간다.
"찾아야 하는데."
"..."
"도저히 못 찾을 것 같아요."
나 혼자서는- 도저히 '안'찾을 것 같아요. 이사라는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 억누르며 말했다. 제발- 제발- 터져나오지 마. 그때처럼. 나를 비참하게 만들지 말아줘.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이사라를 조심히 안은 레이는 그대로 안아들어 경음부실로 데려갔다. 차피 아무도 없다. 아오이 형제는 일이 있어 먼저 갔고, 왕코는 오늘 아도니스와 약속이 있다고 한 걸로 알고 있다.
레이는 이사라를 의자에 앉혔다. 마실건- 물뿐이어서. 내민 물병을 받아들며 이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써 웃고 싶은데- 얼굴이 자꾸 일그러지며 엉망이 되는 것 같았다.
"..."
"..."
잠시동안 적막이 흘렀다. 공기 안으로 무언가가 파고들 틈이 보이지 않았다. 이사라는 계속 숨을 죽여 울었고, 레이는 이사라의 눈물을 닦아주고만 있었다.
먼저 그 적막을 부순 건 이사라였다.
"노래- 듣고 싶어요."
또 들려주실래요? 이사라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레이의 소매를 붙들며 말했다. 잔뜩 젖은 눈에 담긴 것은 사쿠마 레이가 아니라 사쿠마 리츠였다. 그럼에도 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사라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대었다.
릿짱. 과연 나는 이 답을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 평생 찾지 못하면 나는 영원히 이 절망의 방에 갖히게 되는 걸까. 시간은 약이 아니야. 그저- 우리의 시간은 독이어서, 나를 죽이고 또 죽이겠지.
넥타이를 풀어내리는 가느다란 손이- 정말 닮았어요. 리츠를. 이사라는 귀에 끼워진 이어폰 속 노래에 몸을 맡긴 채 중얼거렸다. 레이의 귀에 들렸지만, 이사라의 귀에 들리지 않는 속삭임들이 어둠에 무너지듯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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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 리츠마오입니다 리츠마오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