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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이즈)

0117 2017. 2. 19. 00:18

앙상블 스타즈 리츠이즈 전력 60분

주제: 사진





인간이 신에게 받은 최고의 선물은 망각과 기록이라고 한다. 세나 이즈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몸을, 이제 움직일 수 있었다. 세나는 과거 인간이었고, 인간으로써 신에게 받은 선물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자신이 인간이 아니게 되면서 더 이상 자신에게 선물이 되지 않았다.


망각이라는 것이 존재하면 참 좋을텐데. 마법사도, 스페어를 교체하면 일정 기억이 사라지는 그런게 있으면 좋을텐데. 마법사는 신에게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어서 그런 걸까. 나는, 마법사의 왕을 통해 만들어진 존재여서 그런건가. 엷게 숨을 내쉬었다.


"셋짱."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해?"

"..."


그러게.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세나는 몸을 일으켜 리츠에게 걸어갔다. 리츠는 소파를 등받이 삼아 바닥에 앉은 뒤 테이블을 바싹 붙이고 노트북의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세나는 그 소파 위에 앉았다. 쿠마군은, 늘 바쁘구나. 세나의 무기질같은 눈이 몇 번 도록도록 움직였다.


"피로한거면 자."

"피곤하진 않아."

"새벽 2시야."

"그래."


시계, 아까 봤어. 세나는 조용조용 리츠의 말에 답하며 휴대폰을 보았다. 새벽 2시 13분. 잠이 오지 않는다. 오늘 한 것도 없는데. 두개의 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넣었던 지라 가볍게 면접을 본 것이 끝이었다. 기천년을 먹고 살아도 될 돈이 있지만, 그것은 세나 이즈미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잔재에 불과하다. 자신의 머리를 쓸 여력이 있는 한, 계속 그 잔재들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쿠마군은- 누군가를 잊으려고 애쓴적이 있어?"

"... 아직."


나는 셋짱처럼 절망해본 적이 드무니까. 형에게나 그래봤지만, 형은 혈육이고- 잊으면 안되는 존재고. 리츠의 손가락이 움직이다 멈췄다. 그리고 허리를 틀어 세나를 바라보았다.


"잊는 건 불가능해."


셋짱이 인간이 아니게 된 시점부터- 모든 기억을 끌어안고 살아가는거야. 굉장히 아프게 심장을 쿡 찔렀다. 세나는 시선을 내렸다. 이럴때 왕님은 어떻게 했을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리츠는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입을 열었다.


"왕님은- 뼈아픈 배신을 당했었잖아."

"..."

"그럼에도, 왕님은 엣짱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않지."


그래. 왕은, 황제를 사랑했었다. 황제는 왕이 가져갈 그 자리를 위해 왕을 배신했고, 왕은 결국 찬탈당한 자리를 찾지 못했다. 정확하게는 그 자리를 포기했다. 마법사들의 왕으로 남은 것이다. 그러고도 왕은 아주아주 가끔, 황제와 만나기도 한다고.


"만약 쿠마군이 나라면, 지금의 과거를 잊기 위해 무슨 짓을 할 거야?"

"글쎄."


나라면 잠을 자겠지. 아주 오랫동안. 관에 들어가서 한 백 년 정도 푹 잘 것 같은데. 그 말에 세나는 픽 웃었다. 그래. 쿠마군은 '잠'이 있었지. 가끔은 부럽네. 자신도 그렇게 오래 잠을 잘 수 있으면 좋겠다. 자신의 잠은 육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몇 년 걸리지도 않는다. 육체가 있다면 몇 달 내로 현실에 끌어당겨지겠지.


"마법사는 망각하지 않는 존재잖아."

"..."

"그러면, 그 위로 덧씌우면 어떨까."


가볍게 시작하는거야. 과거의 기억을 안고, 새 기억을 다른 이들과 새겨나가는거지. 그 과거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끔. 기억은 날 거야. 문득문득. 그리고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순간까지- 새 기억을 만들어나가면 돼. 단순한 논리였다. 실현 가능성도 높은 논리. 하지만 의지가 결정하게 될 논리.


"노력해봐야겠네."

"... 지금부터 시작하면 돼."

"어?"


리츠는 세나의 손에 들려있던 휴대폰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가볍게 비밀번호를 풀고는 카메라 어플을 꾹 눌렀다. 그리고는 셀카기능으로 바꾸며 테이블을 밀어내 세나 옆에 앉았다.


"가까이."


리츠가 끌어당기는 대로 옆에 붙어 가볍게 사진 한장. 찰칵이는 기계음이 들렸다. 표정도 별로다. 리츠는 뿔테안경을 끼고 세나는 머리가 부스스했다. 이걸 사진이라고. 세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휴대폰을 뺏고는 사진을 지우려고 하였다.


"지우지 마."

"왜. 쿠마군 안경 벗고, 나 머리 좀 정리하고 다시 찍으려고 하는데."

"지우지 않는게 더 중요해."


기억이라는 건, 좋은 것만 기억하는게 아니잖아. 이상한 것도, 나쁜 것도, 모든 걸 이용해서 덧씌워야지. 리츠의 말에 세나는 사진을 보았다. 더럽게 못생겼네(본인의 기준에서). 세나는 머리를 손으로 조심히 눌러내렸다. 무슨, 정전기라도 일어난 마냥 머리가 엉망 진창이야. 어느 정도 머리를 손질한 뒤 리츠의 안경을 벗겼다.


"쿠마군 안경 안어울려."

"전자파 차단용이니까."


오래 노트북 보고 있으면, 눈 뻐근해. 리츠의 심드렁한 말에 세나는 인공눈물이라도 한박스 구비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휴대폰을 들었다. 이번에는 좀 잘 나오겠지.


"쿠마군 옆으로 붙어 좀 더-"


세나는 리츠에게 밀착하며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잘 나오네. 아까 사진 역시 지우고 싶어졌어. 세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사진을 보았다.


"이런 사진을- 얼마나 더 찍어야 할까."

"아주 오랫동안."


유우군이- 셋짱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때까지.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보자.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지 못하겠지만.

그런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유산(Legacy)이란, 쿠마군의 형과 쿠마군 같은 존재니까.


"그 오랜 시간동안 함께 하면 될 거야."

"..."


손목이, 시큰하게 아파왔다. 깨끗한 손목에 가끔씩 드리워지는 환상통이란. 세나는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픔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지 못할 것이다. 세나는 아픔을 무시하며 리츠를 바라보았다. 시선에 먹혀들어가듯이. 눈과 눈을 맞추며, 세나는 손을 뻗어 리츠의 뺨을 만져보았다. 쿡쿡 찌르는 아픔에 손 끝이 약간 떨렸다. 리츠는 그런 세나의 손목을 조심히 그러쥐었다.

세나는 눈을 감았다. 자신의 휴대폰에 이제, 사진들이 쌓이기 시작할 것이다. 덧씌우고 덧그려보기로 할 것이다. 


자신이 왕에게 받은 최고의 선물은, 시간과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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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간만에 쓴것도 쓴거고 지각도 지각이고...

(넋부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