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바 츠무기)
-삶에, 별이 지듯.
아오바 츠무기(靑葉 つむぎ)
"삶에, 별이 지듯."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는 시체도 없는 무덤에 세워진 묘비를 훑으며 읽었다. 삶에, 별이 지듯. 누가 새긴건지 엄청 감상적이다. 그 '누가'가 한 행동을 생각하면 어울리지도 않는다. 사카사키 나츠메는 코웃음을 쳤다.
품에 한가득한 블루, 퍼플의 수국 꽃다발이 비닐에 바스락댄다. 아오바 츠무기가 생각나는 꽃을 이거저거 골랐는데 어쩌다보니 핑크빛의 장미 일색이 되는 통에 그냥 머리 색깔이랑 비스무리한 파랑색의 수국으로 골랐다. 나츠메는 꽃다발을 묘비 앞에 내려놓으며 묘비의 글귀를 몇 번이고 속으로 읽었다.
묘비 앞에는 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핑크색의 빅토리아 클래시와 아스틸베, 그리고 다알리아를 고풍스럽게 장식한 꽃 다발. 아마도 슈 형일 것이다. 그리고 그 옆은 크림색의 리시얀서스와 불로초, 폼폰소국으로 장식한 꽃다발. 늘 첫번째로 놓여있는 푸른색의 안개꽃과 목화다발. 그 외에도 이리저리 죽음과는 어울리지 않는 꽃들이 일색이었다.
아오바 츠무기는 살아 생전(이렇게 말하니까 약간 기분이 이상하다.) 업도 업이지만 덕도 많이 쌓았기에 이런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산 자의 기일. 오늘은 아오바 츠무기가 죽은 날이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나츠메군! 지각이에요! 어쩌면 좋아! 늦었어요! 먼저 가볼, 아악!' 이러면서 현관문 앞에 성대하게 엎어지지 않았던가. 휴대폰 액정도 금이 갔다면서 엉엉 울며 절뚝절뚝 발을 절고는 도서관으로 뛰어가는 아오바 츠무기를 보며 한편의 슬랩스틱을 본 기분으로 커피를 마셨었다.
"나츠메."
"레이 형."
평상시와는 달리 머리를 묶은 레이가 보였다. 품에는 꽃다발. 그리고 양 손에는 테이크 아웃 커피컵을 들고 와 왼쪽을 자연스럽게 나츠메에게 건네었다. 라떼. 노시럽. 맞지? 레이의 다정한 물음에 나츠메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쪽에 들린 커피컵의 빨대에 입을 대며 츠무기의 묘 앞에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노랑에 가까운 크림색 장미였다.
"무슨 장미야?"
"아. 카타리나 로즈. 최근에 리츠가 빠져있거든."
"그거랑 무슨 상관인건데?"
"그냥 리츠 생각도 하면서 고른거란다."
레이는 픽 웃으면서 묘지가 정면으로 보이는 벤치에 걸터앉았다. 어울리지 않게 사립 묘지에 관리비도 엄청나게 비싼 곳이다. 묻힌 자는 아오바 츠무기 뿐이었다. 거창하기까지 하다.
"아오바 군이 얼마나 되었지?"
죽은 지. 레이의 말에 나츠메는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한, 3~4세기쯤은 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숙청당할 때 죽었으니까. 남의 죽음에 엄청 여상한 태도였다. 아마도 츠무기가 옆에 있었다면 너무하다고 울상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은?"
"오늘도."
"일을 나갔구먼."
"그렇지."
직장인이니까. 세월 한번 길구먼. 레이는 커피를 한 모금 쭉 빨며 한숨을 토해내듯이 웃었다. 이 날은, 추모의 시간이다. 산 자를 추모하고, 죽음을 그리워하며, 생애를 다시 찾음을 축복해준다. 적어도 둘은 그랬다.
"아오바 군은 여기에 안 오누?"
"본인이 본인 죽은 묘에는 왜 와."
별로 오고 싶어 하지도 않으니까. 파보면 관밖에 없지 않아? 여기 안에. 아오바 츠무기의 묘는 일본식이 아니라 서양식으로 되어있는 지라 화장을 한 것도 아니고(시체가 없어서 화장을 할 수도 없지만), 그저 관 하나만 덩그러이 밑에 매장되어 있다. 자신이 알기는 그러하다. 이 묘지는 텐쇼인이 만들었으니까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텐쇼인만 알지 않을까.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유품같은 건지, 아니면 비어있는 건지.
"그건 그렇고 정말 꽃다발이 많구먼."
"오지도 않는 묘의 주인한테 보내는 추모지."
"추모 치고는 너무 색색이지 않누."
"형도 그렇잖아."
우린 추모보다는 축복에 더 의의를 두는거 아니었어? 나츠메는 다리를 꼬며 라떼를 마셨다. 오래 있지도 않는다. 기껏 해봐야 커피 한잔 레이와 마시고 나면 자신도 일을 하러 가겠지. 레이는 자신을 배웅하고는 좀 더 남아있던 것 같았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뭐가?"
"우린 그렇게 추모와 축복을 함에도 아오바군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알긴 알아. 관심이 없을 뿐이지."
나츠메는 호박색의 눈을 가리듯이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팔짱을 꼈다. 동거를 시작하면서 매년 하루는 이렇게 시간을 할애해 츠무기를 추모하러 가는 것을 알렸을 때,
'굳이 제 죽음에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츠무기는 선을 그으며 웃었었다. 저는 여기 있는데 죽었던 저를 추모하는건 약간 웃기지 않나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나츠메군. 저 같은 자를 추모할 필요는 없어요. 매정하고 무서울 정도로 싹둑 자른 결론이었다.
'내 마음이야.'
차마 거기에 대고 뭐라고 할 수가 없어 고심하다 꺼낸 말은 심통맞은 한마디였다. 츠무기는 그럼에도 웃으면서 마음대로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엔 본인의 관할이 아니라는 것처럼.
커피가 바닥을 드러내었다. 레이의 커피도. 빨대 사이로 액체와 공기가 함께 빨려 시끄러운 소리를 내었다.
"... 난 이제 그만 가볼께."
"그래."
"오늘도 더 있을 거야?"
"그래야지 않누. 네가 함께한 세월보다는 짧지만, 난 과거의 아오바 츠무기와 꽤 친했으니까."
나츠메는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묘지를 빠져나왔다. 슬쩍 고개를 돌려 레이를 보았다. 레이는 움직이지도 않고 커피잔을 옆에 내려놓은 채 모비가 정면으로 보이는 벤치에 앉아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가 보네, 과거에.
시선을 슬쩍 올려다 보았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보았다.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인 것 같았다.
-
"그래. 오늘의 꿈엔 네가 나왔었지, 츠무기."
내 관에 앉아서 뭔가를 들고 있었단다. 그게 뭐였냐면, 네 무기. 너를 아우르는 아르카나. 내가 본 건 Magician(1)이었단다. 아마도 나와 같은 자들의 꿈에도 너는 나와서 아르카나를 보여주었겠지. 나는 1이지만, 또 다른 자들은 나와 같지 않을 거야.
네가 나오는 꿈은 경고와 닮았어. 권유, 혹은 조언이라고 하기엔 너무 날카롭고 단단하지. 너는 나를 만난지 오래되어서 실제 얼굴을 보면 어색할 것 같다만, 이상하게 너와 만나는 꿈은 너무나 익숙해.
츠무기, 너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네가 보여주는 카드는 늘 다르고, 나는 너의 경고에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어. 무시하기엔 너는 너무 강하니까.
레이는 아오바 츠무기가 없는 묘에 대고 말했다. 어둠이 그새 자신의 품을 그리워하듯이 안겨 속살거렸다. 레이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느리게 다시 떴다. 눈을 몇 번이고 감고 뜨는 행위가 지루함보다는 도피를 원하고 있는 모양새다.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눈을 떴다. 붉은색이 어둠에 탁해졌다. 레이는 고개를 다시 묘지 정면으로 향했다.
"..."
변한 것은 없었다. 답이라도 내어주는 것이 어떻누. 너는 늘 수수께끼였어. 모든 것을 다 보여줬지만, 그것이 정답인지 오답인지는 알려주지 않았지. 선택하라는 것 처럼. 그 소리없는 종용에 내가 얼마나 밀렸는지 너는 모를 거야.
레이는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그리고 묘비 앞으로 다가왔다. 인사를 하고 그만 멍멍이가 있는 곳으로 가야겠지. 나의 발길이 도달하는 곳에. 묘비 앞에 서 느리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내년에 또 보게나. 그때는 함께 오면 좋을 텐데. 너는 너의 죽음에 커다란 상처를 받았었지만,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날이-
"음?"
레이는 눈을 깜빡였다. 묘비 위. 종이가 반 접혀 올려진 것이 보였다. 분명 본 적 없는데. 레이의 손은 종이를 향했다. 약간 매끌한 종이의 감촉을 느끼며 냄새를 맡아보았다. 달큼한 금목서의 향이 코를 아찔하게 찔렀다.
반으로 접힌 종이를 펼쳐보았다. 하나 씌여있었다.
Soon. 곧. 무엇이. 곧.
"곧 만날 수 있는건지-"
아니면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너는 다시 답을 선택하라고 나를 종용하는 구나. 레이는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피식 웃었다. 찾지못할 답에 힌트를 얻은 셈 치자는 생각을 하며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삶에, 별이 지듯. 아오바 츠무기. 별이 진 삶은 아니었는데, 너는. 너의 죽음 앞 생애는 그저 비참함이 먼저가 아니었누. 너는 이용당해 버려진 가엾은 폰(Pawn). 황제의 첫번째 신부(神芙). 첫번째 검. 부러진 검. 대관식 앞의 피로 물든 카펫의 주인. 다 잃은 날개꺾인 파랑새.
발길을 돌렸다. 묘지를 벗어났다. 적막뿐인 곳에- 어울리지 않는 등불이 내려앉았다. 주인이 내려앉았다.
"곧."
우린. 곧. 묵(墨)을 담은 눈이 묘비로 향했다. 품에 자신에게 헌사한 꽃다발들을 가득이 품에 안으며 몸을 일으켰다. 왼팔로 가득이 안은 꽃다발들이 무거웠다. 오른 손에는 첫번째의 꽃다발을.
절뚝이며 밖을 향하는 발길이- 가벼웠다.
-
R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