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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와 마법사 본문

Enst/황제와 마법사 1부

황제와 마법사

0117 2016. 4. 3. 23:58




잠이 들 수 없는 때가 있다. 그게 언제부터인지 기억하고 있다. 그 주간이 되면 간헐적으로 꾸는 악몽에 입 안으로 꾸역꾸역 약을 쑤셔넣어 잠 자는것을 포기하고 작곡에 매진하고 지휘에 매진한다. 견딜 수 없다. 그 순간이. 기억하고 있는 붉은 광상곡이.


[츠키나가군.]


달콤한 목소리. 한때는 그 목소리가 사랑을 속삭였었다. 물론 지금도 속삭이긴 하지. 츠키나가에게는 믿을 수 없는 거짓말로 들리지만.

진실따윈 없다. 거짓으로 일관된 목소리. 그 목소리가 얼마나 위험하게 들리는지. 자신은 너무 뼈저리게 알고 있다. 저 행위의 끝을, 자신은 신나게 구경하고 오지 않았던가. 사랑에 눈이 멀어,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도 정신차리지 못한 멍청한, 벌거벗은 왕.

황제라는 자리는 누구나 군침을 삼킬 자리이다. 자신들의 세계를 통치하는 황제.

저 자리는 원래, 츠키나가의 것이어야 했다. 마법사들의 왕. 이치를 깨우친 지휘자. 천재적인 작곡가. 츠키나가 레오. 저 자리를, 텐쇼인 에이치가 가져갔다. 저것은 '나이츠'의 시선에서는 '찬탈'이었다.


[가져가봐.]


이 자리. 원래 너의 것이라면, 뺏어봐. 텐쇼인이 가진 것이라고는 자신의 능력, 그리고-

압도적인 숫자의 군대.

질은 양을 압도할 수 없다. 곱절로 차이를 만드는 그것은 자신도 흔히 알고있는 '란체스터의 법칙'이었다. 당연히, 나이츠는 패배하였다. 이 패배의 원흉은 츠키나가 레오, 자신이었고.

첫 죽음은 나이트였다. 사쿠마 리츠는 텐쇼인이 있는 곳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관자놀이를 관통한 은제 탄환은 핏덩이로 물들어버린 시체 하나를 남겼을 뿐이다. 체스판의 첫 스타트. 그리고 적의 왕을 가장 위협할 수 있는 병기. 그리고, 가장 첫번째로 처리해야 할 장기짝. 텐쇼인은 빠르게 왕을 인질로 붙들고 나이트를 없애버렸다. 흑색의 나이트가 잿가루가 되는 걸 보며 웃었다.


[원래 난 내 능력을 사용하는 걸 싫어해.]


이유는 츠키나가군도 알고 있지?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귓전을 찌르듯이 파고든다. 텐쇼인의 능력은 자신도 잘 아는 능력이지만, 그것이 텐쇼인의 수명을 깎아먹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텐쇼인의 수명뿐 아니라 건강도 깎아먹고 있지. 왜 양으로 승부를 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덕분에 텐쇼인은 능력 대신, 인간이 발전시킨 무기들로 나이츠의 목숨줄을 위협하였다.

퀸은, 텐쇼인의 손에 죽었다. 눈 앞에서 능력을 쓰려던 찰나- 육탄전을 벌인 텐쇼인의 칼에 찔려 죽었다. 세번 찔렸다. 심장, 목, 그리고 배. 그것은 두고두고 나루카미 아라시의 치욕이 되었다.


[자. 다음은 누가 될까.]


너 빼고 나머지. 비숍뿐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루크. 모든 것을 대신 맡게될 비숍. 세나 이즈미. 하나 빼고 다 죽은 마당에 츠키나가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라도 살려보내는 것 뿐이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려줘.]

[응?]

[뭐든 할께. 살려줘.]


세나만큼은 안돼. 절대. 이 진창 속에서 세나 이즈미의 능력은 보잘것 없고, 그저 자신이 만든 무기만 쓸 수 있는 갸날픈 인간이었다. 텐쇼인은 엎드려 빌던 츠키나가의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휘어잡았다.


[다시 말해봐.]

[... 뭐든 할께.]


세나를, 살려줘- 내 첫번째 사랑을 살려줘. 더듬더듬 나오던 저 구걸은, 텐쇼인의 마음에 썩 차지 않았을 것이다. 텐쇼인은 웃었다. 무언가가 잔뜩 뒤틀리는 기분에 텐쇼인은 츠키나가를 질질 끌고 자신의 황좌에 앉혀주었다.


[생각해보자.]


내가 네 어린 고양이를 살릴지, 죽일지. 저 말이 얼마나 잔인한 희망고문인지 깨달았을 때는. 늦었다. 텐쇼인은 세나 이즈미를 살려주었다. 살린 채로, 츠키나가의 앞에 데려왔다. 왼쪽 손목의 인대는 끊겨있었고, 지쳐 엉망진창이 된 저 화학자는- 텐쇼인의 매서운 발길질을 이길 수가 없었다.


[자. 살려왔지?]


칭찬은 안바랄께. 후후 웃으면서 피를 닦던 텐쇼인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었다. 세나는 츠키나가의 품에 안겨 있었다. 츠키나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고스란히 몸에 느껴졌다. 


[왕님. 왕님.]

[아무말도 하지 마. 너라도... 너만이라도- 살려보낼거니까.]

[틀려. 내가 죽어야 이 이야기가 끝나.]

[... 아냐.]

[아니기는. 짜증나.]


세나는 콜록거리며 피를 토해내었다. 쓸모없는 몸뚱이.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 부속품들을 훼손당했다. 스페어가 없는 마법사들은 오랜 시간을 공들여 영체의 상태에서 육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 작업이 너무 오래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나, 제발...]

[내 부속품들이 다 훼손되었다고 알고 있어.]

[그래서 널 살려야해.]


난 널 1년이나 기다릴 자신이 없어. 츠키나가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루카미도 1년, 리츠는 반년. 부속품이 없는 이들의 시간은 무섭도록 길다. 이 기나긴 시간을 홀로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없는 육체들이 부활하는 시간은 너무 길고 두려워서- 츠키나가는 견딜 수 없어했다.


[아냐. 나 대신 왕님이 살아야지.]


내 눈에 보여 외치는 체크메이트는 싫어. 세나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츠키나가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는 숨을 천천히 쉬며 텐쇼인에게 걸어갔다. 눈이 감기는 것을 애써 뜨게 하며, 세나는 텐쇼인 앞에 섰다.


[죽여.]


이곳에서 나를 죽이고. 이야기를 끝내. 네 재미없는 군상극, 질렸거든. 4대 다수? 이건 다굴빵이라고 하카제가 그러더라? 세나는 피비린내나는 입으로 웃었다. 텐쇼인은 웃으면서 오른손에 들린 총을 세나의 미간에 조준하였다.


[1년 뒤에나 만나게 될 테니 인사해. 네 왕에게.]

[...]


세나는 말 없이 고개를 돌려 츠키나가를 보았다. 모든 것을 다 잃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왕이 매섭도록 재수없어 보였다.


[씨발, 그런 눈으로 바라보려거든 눈 감아.]


나는 그런 왕을 보고 죽고싶지 않으니까. 정신차려, 츠키나가 레오. 넌 내 왕이다. 내가 섬기는 왕은, 그런 눈으로 날 보지 않아. 세나는 있는 힘을 쥐어 짜내 츠키나가를 노려보며 일갈했다. 그리고는 텐쇼인을 보며 말했다.


[반드시. 다음 번에는- 내가 널 죽여버릴 거야.]

[... 기대할께.]


장전된 총이 당겨진다. 공이가 탄약을 쳐 화약을 터뜨리고, 그 충격에 탄환이 빠르게 회전하여 불을 뿜고는- 세나의 미간을 뚫었다. 1초도 아까웠다. 퍽- 소리와 함께 피를 흩뿌리며 얄팍한 몸이 무너져내린다. 바닥으로. 털썩- 하는 소리가, 귀에 낯익게 들려왔다. 바닥이 피로 물드는 것이 보인다. 츠키나가는 멍하니 세나, 이제는 시체가 되어버린 육체를 바라보았다.


[...]

[...]


말이 없었다. 승자와 패자 모두. 츠키나가는 소리도 못 내고 울고 있었고, 텐쇼인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츠키나가를 보고있을 뿐이었다. 다 죽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죽었다. 이젠,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


[자, 츠키나...]

[체크 메이트.]


츠키나가는 그대로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던 총 하나를 장전해 자신의 입에 쑤셔넣어 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버렸다.





"씨발."


츠키나가는 짓씹듯이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마법사는 죽음의 감각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죽음 앞 고통까지 다 느낄 수 있다. 인간처럼. 다만, 죽으면 끝인 인간과는 다르게 마법사는 스페어를 통해 살아난다.

6년 전부터, 츠키나가는 잠을 자는 것이 어려웠다. 지금도. 꿈을 꾸지 않을 정도로 깊게 자지 않는 한, 힘에 겨운 행위가 수면이었다. 츠키나가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지긋지긋해. 내가 죽는 것도. 네가 날 살리는 것도. 자신이 마법사들의 왕이고, 네가 네 목줄을 쥐고 이 세계를 통치하는 황제라는 사실도. 모든 것이 다 질려. 네가 아니라 내 나이츠때문에 살아가는 게 질리도록 싫어. 언젠가 내가 너를 죽이는 날이 오게 되면...

되면...

될까.


"..."


하하하- 미치려면 단단히 미칠 것이지. 어중간하게 헤까닥 돌아버려 가지고는. 빌어먹을 츠키나가 레오씨. 츠키나가는 흘끗 시선을 내려 자신의 옆에서 자고 있는 황제, 텐쇼인 에이치를 보았다.

무방비하고.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츠키나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얼굴에서 내려 황제의 목을 향했다. 조르면 죽을 것 같은데. 언제, 언제, 언제 이런 기회가 있겠어.

속살거리는 욕망에 충실하게 츠키나가는 양 손으로 텐쇼인의 목을 쥐어보았다. 얇고 하얀, 목. 조금 힘을 세게 주면, 뚝- 부러질 것 같은 목.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손이 떨려왔다.

조심스럽게 힘을 주려던 찰나,


"그렇게는 안 죽어."


보드라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그 목소리의 주인은 고쳐주기라도 하는 듯이 양 손으로 츠키나가가 쥔 부분을 적절히 수정해 주었다. 조금 더 위. 그리고 숨통을 누르면 돼. 츠키나가는 하- 웃었다. 울었다.


"자. 이대로 세게 눌러."


입꼬리를 올려 느긋하게 웃는 텐쇼인의 눈이, 츠키나가의 눈을 마주한다. 츠키나가의 눈이 무서울 정도로 흔들리는 것이, 재밌어 죽겠다는 듯이. 츠키나가는 숨이 넘어갈 것 처럼 울었다. 헐떡이면서도 그 손을 풀지는 않았다.

이렇게 죽여달라고 판 차려주는 착한 사람이 어딨어. 텐쇼인은 능청을 떨면서 손을 뻗어 츠키나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사정을 모르면 달콤한 로맨스, 사정을 알면 지금 당장 죽이라고 목청높여 소리칠 상황.


"..."


츠키나가는 힘을 주려던 손을 풀었다. 죽일 수 없다. 언젠가 내가 너를 죽이는 날이 오게 될 일도 없어. 내가 먼저 죽게 될 테니까. 츠키나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거두며 입으로 한껏 저주를 퍼부었다.


"평생, 사랑받지 말고 외롭게 살아가. 난 죽어버릴 테니까."


애처로울 정도로 무서운 저주였다. 문제였다. 츠키나가 레오의 사랑이 문제였고, 텐쇼인 에이치의 사랑이 문제였다. 모든 것을 빼앗긴 자는 허탈함이 아니라 독만 남는다고 하는 것을 망각한 텐쇼인이, 츠키나가의 저주를 피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다 뺏어갔으면서."


즐거워? 텐쇼인은 츠키나가가 묻는 그 물음에는 확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즐거워. 너무. 많이. 아주. 후후- 츠키나가는 인상을 구기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원래."


텐쇼인은 몸을 일으키며 츠키나가를 끌어안았다. 얇게 잡히는 허리. 입에 먹을 것을 대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갈빗대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츠키나가의 몸은, 생각보다 형편없었다. 무언가 먹을 것을 주어도 깨작깨작 먹는다. 


"이런 사랑도 존재해야 즐겁지."

"..."


입을 열지 않았다. 사랑의 형태가 어찌 되었던, 텐쇼인의 사랑은 츠키나가다. 지고지순할 정도로. 누가 들으면 배를 울리면서 비웃겠지만. 저 사랑을, 지금 붙들어 놓은 것만으로도 텐쇼인은 만족이다.

6년 전, 자신의 눈 앞에서 죽어버린 가엾은 사랑은 자신이 숨겨둔 스페어로 깨어났다. 그 절망스러운 얼굴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당장에라도 키스를 퍼붓고 싶을 정도로.


"안 즐거워."


이젠 진짜 지치고 질려서. 견딜 수 없는 기분이야. 츠키나가는 몸을 일으켰다. 침대 밖으로 벗어나, 텐쇼인의 셔츠를 대충 걸치고 맨발로 나가버렸다. 텐쇼인은 그저 웃었다. 저렇게 질리고 견딜수 없는 시간이 얼마나 긴 지 알고 있다. 텐쇼인은 웃으면서 창문을 보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장기짝들을.


E&M


"Long time no see, 리츠선배!"


스오우가 웃으면서 외쳤다. 리츠는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저번주에 만나서 같이 커피 한 잔 하지 않았었나? 케이크 조각들을 종류별로 늘어놓고 좋아 죽어버리겠다는 얼굴로 먹어댔던 너의 얼굴이 굉장히 인상깊게 기억에 남아있는데. 리츠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우리 저번주..."


리츠의 말이 채 이어지지 않았다. 유리천장에 달라붙어 있던, 스오우가 찢은 종이조각들이 유라를 뚫고 터진 것이다. 마치, 초소형의 폭탄처럼 말이다. 큰 타격은 없을 것이다. 리츠는 본인의 몸을 소중히 하는 쪽에 가까우니까. 인상을 찡그린 리츠는 매캐한 냄새에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잔 수-"


츠카사의 공격은 대부분이 정공법이다. 그만큼 커버가 된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단번에 커다란 타격을 줘서 이기는 것이 츠카사의 필살기라고 봐도 좋다. 하지만, 유독 자신을 잘 아는 나이츠와 싸울 때는 잔 수를 많이 썼다. 시선을 분산시키고, 조금이라도 틈새가 보여야 공격을 했다. 자신을 너무 많이 아는 자들에게는 정공법의 약점을 다 들킨다는 것을 계산한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죽일 기세로 덤비는 건 스-짱 답지 않은데. 리츠는 웃었다.


"End면 곤란하겠지요."


리츠선배는 까탈스러우니까요. 스오우도 리츠를 보며 웃었다. 피가 대충 빠졌다. 땅을 어느정도 적시고 있어서인지 수선화들이 스오우의 피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었다. 흰색의 꽃잎이 붉은색을 띄기 시작한다. 츠카사는 느른하게 웃었다. 츠키나가를 닮은 웃음이다.

오랜 시간을 알게 되면 서로가 서로를 닮는다고 한다. 유독 스오우는 츠키나가를 많이 닮았다. 미친짓 하는 것을 빼고 정중함을 집어넣으면 츠키나가 레오와 스오우 츠카사는 굉장히 비슷해진다. '계승자' 다울 정도로.


"오늘은 돌아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하- 리츠는 스오우의 정중함 안에 들어있는 가시같은 날카로움에 어깨를 으쓱했다. 셋짱의 말을 빌리자면 건방져. 그런 말 해도 돌아가지 않을 거 알면서 이러는거지? 리츠는 시선을 내렸다. 느리게. 느리게. 그리고 시선이 정원에 닿았다.

수선화.

이렇게 많이 핀 경우는 드물었는데. 리츠가 잠깐 정신을 판 사이, 스오우는 책의 한 페이지를 한 번 더 뜯어내었다. 리츠선배 책이다. 평범한. 하지만 이걸 가지고 있는 소유주가 철(鐵)의 주인된 자여서 이런 잔 수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주인의 손을 탄 것은 주인의 능력을 가지게 되는 법. 술사(術師)의 특징이다. 리츠선배의 책을 열혈적으로 아끼는 철의 주인 덕분에 이런 것도 써보고. 그리고 난 가지고 돌아가는 순간 들을 수 있는 욕을 잔뜩 얻어먹겠지. 되바라진 히메미야.


"방심은 금물입니다."


피가 멎지 않았다. 과다출혈이라고 오해를 받을 정도로. 인간이었으면 애진즉 응급실로 실려갔을 것이다. 스오우는 괘념치 않았다. 오히려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질질 흐르는 핏덩이들을 피곤한 표정으로 보며 종이를 몇 번 접었다. 비행기 모양. 그리고는 피가 흐르는 손목에 가져다 대자 흑색의 글씨들이 빠르게 피를 흡수하여 붉은색으로 변했다. 


"에잇-"


종이비행기를 가볍게 날리자, 피에 젖은 종이에 뭐라도 달린 듯이 빠르게 리츠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리츠는 오른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정말 스-짱 잔머리 굴리는 거 그만 해. 몇 걸음 물러나 종이비행기를 피했다. 여기서 끝이면 스오우 츠카사가 아니겠지. 리츠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천장 위에서 정원으로 뛰어내렸다. 시끄러운 소리는 내며 종이비행기가 위에서 터졌다. 


"잔 꾀 그만 써, 스-짱."

"하하-"


리츠는 수선화를 구둣발로 짓밟으며 스오우를 바라보았다. 세나가 보이지 않는다. 테이블에 누워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쉬시지 그러셨나요."

"나, 오늘 볼 일은 스-짱에게 없는데."

"피차일반입니다."


세나선배 짜증내면 어지간히 무서운 거 뻔히 아시면서 왜 오셨어요. 피가 흐르는 손을 한번 휘두르자 핏방울들이 리츠를 향해 튄다. 리츠를 계속 물러나서 피할 수밖에 없었다. 맞는 순간 다치게 된다.

츠카사의 능력은 강하다. 리츠도 인정할 만큼. 컨트롤도 까탈스러운 능력이고 몸에 상처를 내서 무기로 쓰다보니 본인에게 돌아오는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몸을 막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스오우는 피를 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땅에 스며있던 츠카사의 피들이 수선화들을 찢고 무기가 되어 돌아온다. 이래저래 스-짱 능력 짜증나고 불편해. 어릴 때는 골려먹기 되게 좋았는데. 마치 왕님 처럼.


"어?"


왕님? 리츠는 뒷걸음질치며 피하던 발길을 멈췄다. 잠시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이따위 짓을 할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왕님을. 레오를 찾아야 하는데. 분명- 세나만이 알고 있는 걸...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대로 스오우의 무기가 리츠의 배를 꿰뚫었다.


"리츠선배!"


피할 줄 알았는데! 스오우는 너무 놀라 책을 그대로 떨어뜨리고는 리츠를 향해 달렸다.


"리츠선배, 선배!"


본인이 가진 능력까지 전부 놀려 놓았다. 무기들이 방울방울 액체로 돌아온다. 그러게 갑자기 왜 멈춰서서는! 스오우는 무너져내리는 리츠를 안고는 몸을 움직여 리츠를 흔들었다.


"선배!"

"... 스-짱은 아직 멀었어."


리츠는 금방이라도 꺼질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스오우의 목을 한손에 움켜쥐었다. 리츠의 붉은색 눈이 스오우의 자색 눈과 마주친다. 시선을 매료시키는 눈. 리츠는 스오우를 향해 단 한마디를 내뱉었다.


"잠들어."


말의 힘을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 그것이 사쿠마의 영역. 스오우의 능력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구간이다. 스오우는 그대로 몸에 힘을 빼며 정원 바닥으로 추락했다. 리츠는 말 없이 다리에 힘을 줘 몸을 일으켰다. 배를 제대로 뚫려서인지 피가 새는 것이 선뜩할 정도로 느껴진다. 빌어먹을. 이래서 다치는 건 사양이라고.


"셋짱-"


내가 이긴 것 같은데. 이제 그만 몸 좀 일으키지 그래. 말이라도 해봐. 리츠는 고통에 침을 몇 번 삼켜보았다. 세나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리츠는 눈을 세게 감았다 떴다. 이런거- 솔직하게 말하면 며칠 두면 언제 다쳤다는 듯이 나을 것은 알고 있다. 지금도 무기에 찢어지고 어그러진 근육들이 천천히 붙고 있다. 회복력 하나는 끝내주는 사쿠마.


"셋-짱."

"돌아가."


매정한 대답이 돌아온다. 숨을 쉬는 것이 생각보다 힘에 겨웠다. 스-짱 나중에 혼날 줄 알아. 리츠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테이블에 누워있는 세나와의 거리, 몇 걸음. 리츠는 다리를 뗄 수가 없었다. 마치, 투명한 벽이 가로막고있는 기분이다.


"왜?"

"지금 너 보고 싶지 않아."

"난 셋짱 보고 싶은데."

"꺼져."


입이 험하네, 셋짱. 리츠는 키득키득 웃었다. 웃을 때마다 피가 계속 빠지는 것 같았다. 질금질금 피가 새는 감각은 싫다. 마치, 무언가가 주르르 빠져나가는 감각이- 무섭도록 선뜩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화났어?"

"..."

"왜?"

"대답 유도하고 싶은거면 돌아가."


답은 대충 알고 있는거, 알아. 세나의 답이 무서울만큼 냉랭하다. 픽- 웃은 리츠는 그냥 그대로 주저앉았다. 걷는 것도 무리다. 같잖은 인간의 감정에 놀랐던 거지, 세나 이즈미도. 과거에 가졌던 감정을 되풀이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독이라는걸 알면서도 말이야. 하하. 세나와 태생이 틀린 리츠로써는 알 리 없다. 저 감정은 분명.

'질투'니까.


"있지. 나 뭐 하나만 물을께."

"묻지 마."

"왕님은 어딨어?"

"..."

"레오는 어딨어?"

"..."

"왜 숨기고 있어?"



-


어우 힘들어....분량 없는 영혼은 웁니다....8ㅁ8

너무 간만에 9편입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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