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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Zero
낮잠을 잤다. 그리고 얄팍한 꿈을 꾸었다. 달콤한 꿈도 아니다. 기분 나쁜 꿈도 아니다.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꿈을 꾸었다.그것은 아주 조그마한 시간의 틈바구니에 낀, 꿈이었다. 잘각잘각 움직이는 시계태엽에 맞물림을 도와주는 태엽 하나를 더 끼우는 그런 것. 마법사의 왕은 그것을, 우주에 떠있는 꿈이라고 했다. 대체 그건 무슨 뜻인데? 라고 물었을 때 그 왕은 눈을 깜빡이면서 자신을 바라보다 이내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 '직접 생각해보는 건 어때? 텐-시.' 텐시(천사). 외모에 반하면 그런 타이틀이 붙겠지만 자신의 행보는 그런 타이틀과는 반대의 행보를 하였다. 텐쇼인 에이치는 폭군이었고, 마법사의 왕이 가져야할 왕관을 찬탈하였으며, 그가 이끄는 군대들은 빠르게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를 ..
(BGM: 작업곡) 부제: 이슈타르의 별(金星) 텐쇼인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겨울밤의 공기라는거- 그렇게 차가웠나? 폐가 문제가 아니라 기도부터 시큰시큰 아파왔다. 텐쇼인의 발걸음은 아주아주 느렸다. 어슬렁거리는 사자만큼 느린 발걸음은 그래도 본인이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인지를 하듯이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이슈타르의 별들을 따라-' 스쳐지나가는 잔상들이 별가루들을 흩뿌리는 것 같았다. 일본의, 아니- 도쿄의 밤은 이렇게 별이 많지 않는데. 반짝이들이 이리저리 어둠에 묻히지 않아 시선 안에 파고드는 이 날카로움에 텐쇼인은 슬쩍 시선을 내렸다.본인이 살고있는 저택이 넓은 것을 아는 것인지. 별들이 텐쇼인의 그림자를 종종이 따라가고 있었다. 텐쇼인이 이내 발걸음을 멈추었다. 흑색의 구두가 ..
(BGM과 함께 해주세요.) 얼마나 오래 지났는지, 다 식어서 머그마저 차가워진 커피를 바라보았다. 아- 다시 타야 하는 건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리츠는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천장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이렇게 무기력한 적이 있던가. 물론 있다. 없지는 않지. 본인이 살아온 생애가 몇이던가. 얼기설기 짠 관 속에서 잘 때도 무기력했고, 고급 관에서 잘 때도 무기력했었다. 숨 쉴 때마다 무기력함에 모든 걸 다 던져버린 적도 있다. 없을 수가 없지. 본인의 나이를 세는 것은 잊었다. 자신은 그저 ‘생일’만을 기억할 뿐.뭔가의, 사이클처럼 찾아온다. 무기력이라는 ‘친구’는. 씨발, 친구라니. 친구는 무슨. 어디의 애인, 어디의 연인, 어디의- “하-” 생각 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 이상 ..
너는,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어. 나는 너를 바라보며 지금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감정에 머리가 어질어질해. 첫사랑을 겪는 소년처럼 심장이 터질것 같고, 목울대를 울리며 침을 꿀꺽꿀꺽 삼키고 있으며, 손 끝이 짜릿짜릿 저려오는 그 풋풋함에오늘도 나는 너를 보며 사랑한다고 수천번을 고백해.속으로. 미케지마 마다라의 답도 없는 고백의 행진곡은 붉어지는 볕에 말갛게 웃는, 그 흰 이에 씹히고 삼켜진다. 고백의 행진곡을 작곡해준 천재 왕은 손을 뻗어 허공을 휘젓고 헤집는다. 피아노 의자에 앉아 그의 몸짓을 감상하는 이 순간순간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너는 모르겠지.너는 모르겠지.너만 없었어도, 레오는- 왕은- 원망이 금새 턱 끝까지 차오른다. 모든 것을 빼앗아갔지. 네가 있는 자리는 원래 레오의 것이었어야 ..
-삶에, 별이 지듯.아오바 츠무기(靑葉 つむぎ) "삶에, 별이 지듯."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는 시체도 없는 무덤에 세워진 묘비를 훑으며 읽었다. 삶에, 별이 지듯. 누가 새긴건지 엄청 감상적이다. 그 '누가'가 한 행동을 생각하면 어울리지도 않는다. 사카사키 나츠메는 코웃음을 쳤다.품에 한가득한 블루, 퍼플의 수국 꽃다발이 비닐에 바스락댄다. 아오바 츠무기가 생각나는 꽃을 이거저거 골랐는데 어쩌다보니 핑크빛의 장미 일색이 되는 통에 그냥 머리 색깔이랑 비스무리한 파랑색의 수국으로 골랐다. 나츠메는 꽃다발을 묘비 앞에 내려놓으며 묘비의 글귀를 몇 번이고 속으로 읽었다.묘비 앞에는 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핑크색의 빅토리아 클래시와 아스틸베, 그리고 다알리아를 고풍스럽게 장식한 꽃 다발. 아마도 슈 형일 ..
“아아-” 목소리를 내어 보았다.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애써 쥐어짜듯이. 그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귀에 너무 거슬리는 목소리였다. 차라리 누군가의 목소리를 뺏어오고 싶을 정도로.탁해진 눈을 눈꺼풀로 가리듯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벽에 머리를 기대어 입술만 벙끗이길 반복하였다. 숨을 멈추어 보았다. 쿵쿵거리는 심장의 소리가 빨라질 때까지.아 너무- 잠이 들어버리고 싶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병원에 달려가 수면제를 처방받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불면증인 것 같다. 청하는 잠은 응답도 없었다. 치사하기 짝이 없다. 응답하라.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술, 술을 마시자-” 몸을 비척비척 일으켰다. 현기증에 침대로 다시 고꾸라졌지만, 몸을 일으키는 것에 성공하였다. 조심히 문을 열..
세나는 피곤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았다. 멍하다. 잠이 덜 깬 건지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며 졸았다. 날씨 하나는 옴팡 좋다. 따땃한 햇볕, 그리고 잠자기 좋은 날씨. 창문을 열면 약간 시원한 바람이 들어올 것이다. 아 베란다에서 광합성이나 할까. 채 그 생각이 가지 못했다. 세나는 다시 잠들어 버렸다.이젠 진짜로, 완전히- 몸을 움직일 수 있다. 가끔 느껴지는 손목의 환상통. 그것을 빼면 세나 이즈미는 재기에 성공한 셈이다. 끔찍했던 상실감에서 한걸음 멀어졌다. 세나는 고개를 약간 기괴하게 비튼 채 몸을 고꾸라뜨렸다.봄이 오고, 꽃이 피었다. 햇볕에 달큼함을 담뿍 머금은 꽃들이 피어나며 봄이 왔음을 지천에 알린다. 세나 이즈미의 마음에도 한기 서렸던 냉혹한 바람을 걷어내고 조심조심 싹을 움트게..
눈을 깜빡였다. 시선이 흐릿한 것이, 잠에서 덜 깬 것 같다. 아 다시 잘까. 리츠는 눈을 감았다. 옆에서 한소리가 들려왔다. 짜증나. 다시 잠들지 마. 곧, 이동해야 하니까. 퉁명스러운 말에 리츠는 인상을 찡그리다 팔을 위로 뻗어 기지개를 켰다. "흐아아암- 셋짱, 불친절해.""한두번 그런거 아니잖아. 일어나도록 해." 말투는 친절하지 않았지만, 머리카락을 쓰다듬다 이내 뺨을 간질이는 손끝은- 다정하기 그지없다. 이런 야누스적인 그를, 리츠는 굉장히 좋아한다. 소파에 누워서 잠을 청했던 것인지라 몸이 찌뿌둥하다. 두득거리며 뼈와 뼈가 부딪히는 소리에 리츠는 입을 삐죽였다. "늙었어...""나보다 오래 살았으니, 당연히 늙었지.""셋짱은 외모상으로는 28세잖아.""진짜 나이로는 거기서 4는 곱해야지." ..
앙상블 스타즈 이즈레오 전력 60분주제: 명왕성 세나 이즈미는 11월 2일 생이다. 하데스의 빛에 안겨 태어난 전갈자리 세나의 수호성은 명왕성이다. 이제는 없는, 별- 아니, 왜소행성(Dwarf Planet).츠키나가는 말 없이 고개를 들었다. 엎드린 채 작곡을 하고 있던지라 고개를 들면 마치 스트레칭을 하는 것 같은 자세가 된다. "세나!""왜.""세나는 그럼 이제 수호성이 없는 거야?""..." 그걸 왜 물어. 세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별걸 다 묻네. 피곤한 표정으로 츠키나가를 바라보던 세나는 책을 덮고 고개를 끄덕였다. 2006년에 그렇게 되었으니까. 내 수호성은 없다고 봐야지. "...""... 짜증나- 라고 하고 싶은데. 어찌 되었던 그건 미신이니까." 수호성이 있냐는 둥 뭐냐는 둥. 난 너무 ..
앙상블 스타즈 리츠이즈 전력 60분주제: 사진 인간이 신에게 받은 최고의 선물은 망각과 기록이라고 한다. 세나 이즈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몸을, 이제 움직일 수 있었다. 세나는 과거 인간이었고, 인간으로써 신에게 받은 선물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자신이 인간이 아니게 되면서 더 이상 자신에게 선물이 되지 않았다. 망각이라는 것이 존재하면 참 좋을텐데. 마법사도, 스페어를 교체하면 일정 기억이 사라지는 그런게 있으면 좋을텐데. 마법사는 신에게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어서 그런 걸까. 나는, 마법사의 왕을 통해 만들어진 존재여서 그런건가. 엷게 숨을 내쉬었다. "셋짱.""어.""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해?""..." 그러게.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세나는 몸을 일으켜 리츠에게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