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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Zero
눈을 몇 번 깜빡여 보았다. 뻑뻑해서인지 고통스럽다. 오만상을 찡그리면서 눈에 인공눈물을 넣었다. 주르륵 광대를 타고 흐르는 인공눈물을 닦아내며 휴대폰을 들었다. “어, 아도니스. 응. 아냐아냐. 곧 갈게.” 가벼운 용건들이 입에 오르내렸다. 오오가미는 힘든 표정으로 전화를 끊고는 벽에 등을 기대며 주저앉았다. 실은 간다고는 했지만, 가고 싶지 않다. 자신은 그냥- 어딘가 사라지고 싶었다.레이는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자신이, 그의 권속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품에서 다시 살아났으며 죽지 않는 존재(UNDEAD)가 되었다. ‘네가 나의 마지막 권속이었으면 좋겠구나.’ 넌 유독 힘에 부치니까. 아이고, 그럴 거면 살리지 마시던가. 오오가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휴대폰을 ..
“이사라.”“네.”“그런 표정 짓지 마라.”“선배야말로요.”“여기서 제일 죽을상으로 있는 게 너야 임마.” 등을 툭 치며 너무 그런 표정 짓는 거 아니라고 하던 선배는 휴대폰의 진동에 액정을 확인하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브리핑실로 모이라고 문자왔다. 얼른 가자고.” 이사라는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비어있는 휴대폰. 차라리 리츠가 뭐라고 한마디라도 보내줬으면 좋겠다. 잔소리든 뭐든 간에.1층의 브리핑실은 벌써 인산인해였다. 형사부 전체가 모인다. 팀당 7명 정도. 그리고 형사부의 팀은 총 5개. “주목-!” 웅성이던 소리들이 잦아든다. 팀장들은 전부 앞자리에 앉아있었다. 하나같이 안 좋은 표정. 이사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좋은 표정은 없다. 반갑지 않다. 오랜만에 나타난 불청객. 차라리 모..
신난다. 최악의 순간이 갱신되는 기분이다. 이마를 짚었다. 지금 이 순간 형사부 전체에게 퇴근이란 없다. 미친. 다른 놈들도 아니도 동부 트럭 연쇄살인마라니. 이사라는 휴대폰을 들어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수신음이 간 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여보세요- 라고 말하는 상대에게, 자신은 할 말이 딱히 없다. “리츠, 나야.”-무슨 일이야.“오늘……. 생각보다 큰 사건이 터졌어.”-…….“정말 미안해.”-아냐.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뚝. 통화는 매우 무미건조했다. 이사라는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담배가 좀 필요하다. 분명 평생 입에 물지 않겠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입에 하얗고 얇은 대가 물려진다. 그리고는 라이터의 불길 한번에, 이사라의 입에서 회색의 연기가 느릿느릿 뿜어..
세나는 무릎을 굽혀 남자에게서 봉지를 가져와 주섬주섬 다시 담았다. 잠깐 힘을 뺀 찰나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정말 죄송합니다.”“아닙니다.” 남자가 마지막으로 건넨 식빵 봉지를 받아들은 세나는 몸을 느릿느릿 일으켰다. 남자는 허리 숙여 다시 한 번 세나에게 사과를 했다. “저, 혹시 이 근방에 CCTV 위치 좀 알 수 있을까요?”“네?”“아아-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경시청 소속 형사부 유우키 마코토라고 합니다!”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어 신원을 증명한 유우키는 눈을 도르륵 굴리며 세나를 바라보았다. 세나는 그런 유우키를 빤히 바라보다 무릎들 툭툭 털고 손을 뻗었다. “지금 당신이 선 자리에서 2시 방향으로 있는 가로등 옆에 하나. 그리고 6시 방향으로 하나. 10시 방향에는 가로등은 없지만..
세나는 후후 웃으면서 방문을 열었다. 책장에 빼곡이 꽂혀있는 화학서. 갖은 언어들의 향연이다. 세나 이즈미. 현재는 화학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다. 본디 저명한 인물들 중 하나지만, 오래 살면서 이름을 바꿔가며 살다보니 현실에서의 이름은 나오 이즈미(名緖 泉)로 통한다. “하암~” 입이 찢어질 듯이 커다랗게 하품을 하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츠키나가의 악보를 꺼낸 세나는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가볍게 자신의 이름을 정 중앙에 적으면서 악보의 음을 그대로 따라 부르는 것이다. 츠키나가의 마법은 복잡하지만 부르기는 편하다. 그의 마법에 익숙한 세나는 펜으로 약간씩 츠키나가의 마법을 자신의 것으로 바꿔놓았다. “곧, 만나러 갈 수 있을 거야, 유우군-” 콧노래를 부르며 웃은 세나는 고개를 들..
“후아암-” 세나 이즈미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피곤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찰박찰박 발바닥을 바닥에 부딪쳤다. 차가운 바닥이 마음에 들었다. 발바닥으로 찬기가 올라와 잠이 좀 깨는 기분인걸. 세나는 기지개를 켜고는 코를 훌쩍이며 살짝 졸았다. 아직 잠에서 확 깨는 것이 어렵다. 세나는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빠져나와 복도를 걸었다. 대단히 자연스럽다. 여기에 한두 번 와본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듯이.집은 있은데 요즘은 남의 집에 신세 지고 있단 말이지. 세나는 어느 방 문 앞에 서서 문고리를 한참 바라보다 조심히 손으로 잡고 왼쪽으로 돌렸다. 문이, 열린다. “왕님-” 좋은 아침이야. 세나는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츠키나가에게 다가갔다. 츠키나가는 세나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