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Zero
리츠이즈) 본문
앙상블 스타즈 리츠이즈 전력 60분(뭐 언젠 지각 안했나 포기했습니다)
주제: 곁
『이즈미짱에게.
안녕. 발달된 문명 사이에서 이런 아날로그한 짓은 왜 하냐고 내 편지를 받고 투덜거릴 이즈미짱이 안봐도 블루레이야.』
세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별다방에서 사온 카페모카를 마시며 나루카미 아라시가 파리에서 보내온 편지를 읽었다.
정답이다. 저 편지 안의 말대로, 발달된 문명 사이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 문자를 하던지, 전화를 하던지, 아니면 이메일을 쓰면 되는데 무슨 편지를. 글씨 연습하니. 아니면 일본어를 까먹을까봐 그런거니.
『한동안은 일본을 돌아가지 않을 예정이야. 일이 많은 것도 있지만 그 일이 끝난 뒤에 간만에 독일, 이탈리아를 거쳐서 놀다올 예정이거든.
이즈미짱도 같이 와서 돌아다니면 좋을텐데. 파리야 한 번 와 봤다고 했으니까.
리츠짱은 아마도 아직 마감에 시달리고 있겠지. 츠카사짱은 내가 출국하기 전날 일이 너무 많아서 배웅도 못간다고 엉엉 울던데.
그리고 왕님은 아직도 소식이 없지. 그쪽으로 소식이 들리면 연락 줘.』
"그런거 있을리가."
츠키나가 레오의 마지막 행방은 세 달 전의 오스트레일리아였다. 세나의 휴대폰으로 왔던 +61로 시작되는 전화 한 통은 정확하게 한 마디만 하고 끊겼지만.
-세나! 여기 따뜻해!
따뜻은 개뿔. 당연히 따뜻해야 정상이지! 거긴 남반구잖아. 세나는 갑자기 생각난, 츠키나가에 대한 기억에 짜증나는 표정을 지으며 나루카미의 편지를 계속 읽었다.
『일을 하러 다니느라 바쁜 게 디폴트인 이즈미짱이지만 아직 아픈거 알고 있으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이즈미는 그 문단에서 움찔했다.
몸은 교체되었다. 상처가 심하고 피가 반 이상이 빠진 몸뚱이는 버려지고, 새로운 육체가 대체되었다. 그럼에도 손목이 아주 가끔씩 아팠다. 나루카미는 그런 걸 보면서 환상통(Phantom pain) 같다고 했으니까. 세나는 시선을 편지에서 손목으로 옮겼다. 지금은 아프지 않다. 하얗고 아무런 상처도 없는 손목. 하지만 몇 달 전의 그 손목에는 정육점에서 썰법한 고기칼로 인한 상처가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의 겨울은 이번 년도 그렇게 춥지 않을 것 같으니까. 내년에 봐. 생일때는 잠깐이라도 일본으로 갈께. 혹시나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해줘.』
갖고 싶은 것. 세나는 아주 짧은 시간동안 머리를 굴려보았다. 갖고 싶은 것이라.
"유우군- 이 갖고 싶지..."
돌아왔으면 좋겠고. 안 돌아올 것을 알기에 지켜보기라도 했으면 좋겠고.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르지만. 세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나루카미의 편지를 계속 읽었다.
『이즈미짱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볼 필요가 있어. 늘 등잔 밑이 어둡다고 리츠짱도, 츠카사짱도, 왕님도, 나도 말하니까.』
'귓등으로도 안듣'이라고 쓰고는 한번 일자로 주욱 그어놓았다. 마치, 보라는 듯이. 이거 봐라? 세나는 어이털린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나루군도 은근 자기 할 말 다 한다니까.
『복잡하게 바라보는 것보다 단순하게 보는 것이 어떤 때는 편할 때가 있잖아? 물론 내가 이즈미짱에게 말 할 처지는 딱히 아니지만, 이즈미짱이 나를 걱정하듯 나도 이즈미짱이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야.』
삑삑삑- 현관문의 오토락을 입력하는 소리가 들리자 세나는 편지에서 시선을 떼고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을 열고 이세상의 모든 추위를 다 느꼈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리고 들어오는 리츠를 보고는 픽 웃었다.
"추워?"
"엄청."
날씨가 너무 많이 추워졌어. 이러다가 겨울이 바로 오면 정말 끔찍할 거야. 동면을 준비해야겠어. 리츠는 후다다닥 들어와 세나가 앉은 소파 바로 옆에 앉았다. 찬기가 세나의 곁에 다가왔지만 아랑곳 않았다. 이런 걸 추위라고. 세나는 한쪽 팔을 벌려 리츠를 안았다.
"뭐야?"
"나루군 편지."
"... 아날로그하네."
"그 생각 쿠마군만 한 거 아니거든?"
세나의 대답에 리츠는 킥킥 웃으면서 머리를 세나의 어깨에 대고 세나의 체온을 뺏었다. 세나는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었다.
"낫짱이 뭐래?"
"그냥. 나 걱정해."
"... 뭐. 셋짱이니까."
"헤? 뭐야, 그 말."
누가 들으면 내가 맨날 걱정만 끼치고 다니는 줄 알겠... 세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하다 멈추었다. 요사이 자신은 걱정을 그냥 끼친 게 아니라 엄청나게 끼쳤으니까. 그것도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자에게는 더 많이. 세나는 입을 닫았다.
"... 괜찮아."
리츠는 세나를 달래듯 한마디를 던졌다. 세나는 시선을 내려 리츠를 바라보았다. 리츠의 정수리를. 리츠는 고개를 느릿느릿 들어 세나의 눈을 마주하였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리츠는 양 팔로 세나를 으스러뜨릴 듯이 꽉 끌어안았다. 체온을 갈구하듯이 뺏어가고 찬기를 주면서 얼려버릴 것 같았다.
"언제 괜찮아질까."
"그건 셋짱 마음이야."
괜찮아질 수 있다면 언제든. 아니라면 계속. 리츠는 피로한 표정으로 리츠의 품에 안겨 버석이는 목소리를 내는 세나에게 답해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지쳐버렸어.]
[유우군이 없어. 내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어. 끔찍해.]
[잘있어.]
그날은 너무 추웠다. 장대비가 내렸고, 바람이 거셌다. 통화를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황급히 옷을 입고 세나의 멘션까지 갔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지 않아 젖먹던 힘까지 다 끄집어내어 계단을 올랐다. 빌어먹을 7층. 무슨 계단이 이렇게 많나 싶었지만 참았다. 말릴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 그렇게 전속력으로 세나에게 도착했을 때는 늦어버렸다.
믿었는데. 그렇게 믿었는데. 오래간만에 원 없이 운 것 같았다.
사쿠마 리츠가 세나 이즈미의 죽음을 털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시 돌아올 것을 알았으니까. 세나가 레이의 권속에 있는 하카제의 집에서 깨어난 것도 실시간으로 형을 통해 들었다.
그리고 새 스페어로 집에 온 세나는, 리츠를 껄끄러워 하였다. 죄책감을 가지고 온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얼굴을 비추고 곁에 있으려고 노력했다. 굳이 그런 걸로 죄책감 가져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에게 의지해주면 더 고맙겠고 싶어서.
"계속 있을 거니까."
괜찮아지지 않아도. 괜찮아져도. 계속 곁에 있을 거니까. 한 번 더 달래주었다. 세나는 미동도 없었다. 눈을 깜빡이며 리츠의 등을 보다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리츠의 어깨에 묻었다. 아직은, 시간이 모자라다. 조금 더 필요한 시간의 초침에 발을 올리고 싶었다. 세나는 자신의 팔을 들어 리츠를 마주 안으며 입을 열었다.
"난 괜찮지 않아."
"-"
"하지만 괜찮아질 거야."
"-"
"그러니까."
세나는 리츠에게 속삭이며 숨을 천천히 빼앗았다. 뒷 말은 리츠의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세나의 입 안에 맴도는 말은 그저 리츠의 입 안에 먹혀 들어가 사라져버렸을 뿐이었다.
-
6시간 뒤 출근인데...(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