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좋은 날은 아님을 직감하였다. 이사라는 피곤한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휴대폰을 침대 머리맡에 던졌다. 손가락 마디마디까지도 움직이기도 귀찮은 날이 있는데. 그게 오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아, 오늘 저녁에 리츠 책 출간기념 파티 있다는데."
초대장을 받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오늘 일정을 따지면 아마 근처에도 못 갈 것이다. 하하. 리츠에겐 미리 전화해서 미안하고 축하한다고 해야지. 엄청 섭섭해 할 목소리로 대답할 리츠를 생각하니 마음이 쓰리다. 어쩔 수 없는걸.
어제부터 회식이라고 넷이서 술집을 신명나게 달렸는걸. 2차에서 유우키는 필름이 끊겨 울면서 죽어버리겠다고 지랄발광을 했고, 3차에서는 호쿠토가 필름이 작살이 나서 팀 법인카드로 양주만 7병을 결제했다. 나의 예상이지만 오늘 부장님께 진탕 깨질 거야. 그리고, 정말 미안하지만 그 양주 다 내 집에 있어. 나 심심하면 따 마시려고. 이사라는 헛웃음을 지으며 4차까지 멀쩡했던 아케호시를 떠올렸다.
"하여간 술고래, 말술."
아케호시는 술을 물처럼 마신다. 술 깨는 속도도 인간이 아닐 것 같을 정도로 빠르다. 이사라야 술을 천천히 마시고 안주를 많이 집어먹으면서 깨는 스타일. 유우키는 그저 그렇고, 호쿠토는 분위기에 휩쓸려서 폭음을 한다.
"으으……. 이사라군……. 나 죽을 것 같아."
"죽는 건 노노해, 마코토."
화장실로 비틀비틀 걷다가 결국은 사족보행을 하는 유우키를 보며 픽 웃은 이사라는 술깨는 음료 냉장고에 있다고 말하고는 침대에 다시 누웠다. 더듬더듬. 던진 휴대폰을 들고 단축번호 4번의 폰 번호를 보았다.
-사쿠마 리츠
바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지금 시간, 새벽 5시. 아마도, 지금-
[여보세요.]
역시. 내가 너 깨어있을 줄 알았다. 이사라는 웃으면서 목소리를 내 보았다.
"리츠?"
[마-군. 무슨 일이야?]
이 시간이면 자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리츠의 물음에 이사라는 웃으면서 어쩌다 보니 일찍 깼다고 말했다. 그런 이사라에게 돌아온 건 휴대폰 건너의 심드렁한 리츠의 목소리였다.
[술 마셨구나.]
"응."
너를 못 속이지. 하하- 이사라는 웃으면서 몸을 돌려 누웠다. 리츠의 목소리는 쌩쌩했다. 부엉이 같은 놈이다. 작업은 밤에 더 잘 된다는 이유가 1번이지. 사쿠마 리츠는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다. 연령층 전체를 아우르는 선호도. 몰입도 높은 문체와 소재들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그리고 그 꽉 짜인 전개와 해결까지의 그 순간순간이 너무 멋져서 책이 나올 때마다 감상을 전화로 비명 지르며 해주는 이사라였다.
[출근해야지. 얼른 자.]
"잠도 안 와."
[……. 허긴. 마-군은 술 마시면 잠이 깨는 스타일이니까.]
"그러게."
난 오늘 직장에서 죽은 목숨이지 않으려나. 이사라는 허허로이 웃으면서 눈을 깜빡이며 협탁 위의 액자를 보았다. 리츠와 레이 형과 자신이 찍인 사진이었다. 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리츠는 죽어도 레이랑은 찍지 않겠다고 했었고, 마오는 둘이 같이 안 서면 안 찍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었다. 저 부루퉁한 표정. 입을 잔뜩 내밀고 시선도 다른 쪽으로 돌리며 아주 대놓고 형은 싫어- 라고 광고하는 표정 봐. 저때의 리츠는 정말 귀여웠는데. 물론 지금도 리츠는 귀여워. 피곤한 눈으로 자신을 부를때 정말 귀여워. 쿡쿡 웃으면서 이사라는 조용히 리츠에게 말했다.
"나, 오늘 네 파티 못갈 것 같아."
[……. 알았어.]
"일이 좀 이러네. 미안해."
[미안하면 내일 나랑 데이트 해.]
"어디서?"
[집에서.]
"그래."
내일 차피 쉬니까. 며칠 전에 호쿠토에게 월차를 낼 거라고 서류를 던졌던 걸 생각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욱한 마음에 낸 거긴 하다. 그때가 이사라에게 제일 일이 많았을 때였고, 박살이 나도록 깨지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바람에 두통약을 씹었을 정도니까. 이사라는 욱욱대는 마코토의 목소리를 들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장난 없나본데?
"리츠. 리츠. 나 슬슬 끊어야겠다."
[그래.]
"파티 잘 하고 오고."
[응.]
"내 책 빼놔! 표지 안쪽에 사인 해주고!"
[그래.]
-중략
"사쿠마씨. 사쿠마씨!"
"아-"
리츠는 자신을 부르는 말임을 알아듣고 고개를 돌렸다. 오늘 본인의 책이 발간 날임에도 리츠는 피곤한 표정으로 굳이 여기에 자신이 있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었다. 즐기는 건 출판사나 즐기면 되는 이야기 아니던가. 뭐가 그리 좋다고 자신까지 불러서-
솔직히 본인이 이런 곳에 참가하는 이유는 마-군 외에는 이유가 없는데. 자신의 책이 나올 때마다 늘 월차를 후려치고 나왔던 이사라가 오늘은 못 온다고 새벽에 전화를 했다. 실은 그 새벽이 아니라 어제 저녁에도 전화를 해서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리츠 사랑해 나 지금 술 들이키고 있어 양주 7병이 꽁으로 생길어야아아~ 이랬었다. 리츠는 그 생각이 나자 풋 웃으면서 휴대폰을 들었다.
「책 읽고 싶어. 신간.」
이사라는 이 문자 이후 단 한 번의 연락도 하지 않았다. 바쁠 것이다. 술을 마신 다음날에는 늘 바빴으니까. 일반 부서에 있을 때도, 지금 있는 곳에 있어도. 신간신간 노래를 제일 많이 부른 이사라이건만, 아마 오늘은 일하는 내내 서러워하고 있겠지.
"어머-"
주위가 갑자기 시끄러워진다. 누가 등장 하셨나― 는 리츠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꽃이었다. 리츠가 좋아하는 라넌큘러스 한바구니. 색색의 라넌큘러스들이 리츠의 시선을 그대로 사로잡았다.
리츠는 천천히 라넌큘러스 바구니에 다가갔다. 꽃들 사이의 편지. 리츠는 그 편지를 꺼내어 펼쳤다.
-Hello World. Undead.
레이가 보낸 꽃들이었다. 리츠는 인상을 슬쩍 찡그리면서도 편지를 다시 접어 꽃들 사이에 넣어두었다. 라넌큘러스라니. 쓸모없는 형이지만 이런 때는 가끔 감사해야 한다니까. 리츠는 꽃들을 바라보다 손을 뻗어 연분홍색의 라넌큘러스를 꺾었다. 손바닥 안에 가볍에 올라온 꽃은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화려했다.
"누가 생각나는 꽃인데-"
픽 웃은 리츠는 꽃 한 송이를 든 채 몸을 돌려 편집장에게 걸어갔다. 가벼운 논 알콜 칵테일 잔을 들고 홀짝이며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그녀는 리츠가 오자 생긋이 웃으면서 허리를 숙였다. 힐을 신어 키가 180cm가 훌쩍 넘어 굉장히 위압적인 분위기의 그녀는 지나가던 웨이터가 가지고 있던 서빙 접시 위 샴페인 잔을 들어 리츠에게 건네었다.
"4부 준비는 어때요?"
"오늘 3부 완결 나왔는데. 벌써?"
"벌써부터 말이 많아요."
초고를 읽었을 때 내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금고 안에다가 당신 원고 넣어두고 밤을 설쳤을 내가. 이젠 독자들의 차례죠. 4부를 기다리며 밤을 설치게 될 거라고요. 그녀는 흥분에 차 칵테일을 그대로 원샷했다.
"얼른 준비해야 할 걸요."
"내 원고는 늘 나올 때 주잖아요."
"좀 기간을 짧게 해도 좋은데."
"그 말을 편집장 외의 수많은 사람에게도 들어봤죠."
내 대답은 하나였고. 리츠는 웃으면서 샴페인을 한 모금 마셨다. 혀끝에 톡톡 튀는 탄산의 청포도 맛. 리츠가 즐기는 맛이었다. 리츠는 한 모금 더 마셨다. 입 안에 넣고 탄산이 팡팡 터지는 것을 즐기며 음료를 구석구석 굴렸다. 탄산이 다 빠지면- 그때 삼켰다.
"나, 굳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어머- 그러고 보니 늘 오는 손님께서 안 오시네요."
"오늘 야근이래요."
"그래서 그렇게 지루한 표정으로 있으신 거구나~"
그녀는 웃었다. 10년 정도 편집장 일을 하면서 어지간한 사람들을 다 만나봤지만 사쿠마 리츠는 좀 특이한 남자다. 만사가 다 귀찮아서 죽어버릴 것 같이 굴고, 그러면서도 꼬박꼬박 독촉 하나 없이 원고를 보내준다. 그림자 시리즈로 대박을 쳐도 보낸다고 고지한 날짜를 어긴적도, 일찍 보낸 적도 없다.
그런 남자가 출간일에 받는 초대에 꼬박꼬박 나오는 이유는 아마도 그 손님 때문일 것이다. 손님이 오면 사쿠마 리츠의 눈부터 바뀐다. 피곤함이 가득한 눈에서 생기를 한껏 머금은 눈이 된다. 손님은 멋쩍은 듯이 웃으면서 꽃다발을 주고는 시선을 사쿠마가 아닌, 그의 책으로 돌려버린다. 그 때 사쿠마 리츠가 얼마나 아깝다는 눈을 하는지, 그녀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일찍 가고 싶은데."
"어머. 사인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사인은."
귀찮아요. 리츠는 샴페인 잔을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비어 있었다. 그녀는 사쿠마 리츠를 잡지 못한다. 손님이 없는 사쿠마 리츠는 그저 이 행사가 지루하고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일련의 행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음~ 그럼 손님께 전해주세요."
그녀는 웃으면서 출판사로 들어온 선물들 중 비싼 와인과 샴페인을 리츠의 품에 넘겨주었다. 리츠는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술을 즐기는 이사라를 생각하며 받아들었다. 그리고 오늘 갓 나온 따끈따끈한 책 두 권. 이사라에게 있어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책일 것이다.
"어머, 그러고 보니 꽃은-"
"집으로 부쳐줘요."
그럼 바이바이. 리츠는 피곤한 얼굴로 차키를 들고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자신이 굳이 없어도 책은 잘 나갈 것이고, 편집장은 행복한 얼굴로 오늘도 술을 들이킬 것이다. 차의 조수석에 짐들을 놓은 리츠는 조심스럽게 책 위에 라넌큘러스 한 송이를 올려놓았다.
마-군을 닮은 꽃이다. 물론 자신의 한정으로 말이다. 시선을 사로잡으면서도 부드러운 꽃. 리츠는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보았다. 아직 퇴근은 멀었으려나. 발을 구르며 손톱을 뜯어댈 이사라가 안 봐도 블루레이다.
"뭐- 가볼까."
-중략
퇴근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의 시간은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라고 누군가가 말했었다. 누가 그랬지? 아 레이형이 말했었다. 너무 공감되잖아. 이사라는 인상을 잔~뜩 구기며 눈을 치켜뜬 채 시계를 노려보았다.
"시계에 구멍 나겠어, 이사라."
히다카는 커피를 마시면서 서류로 이사라의 머리를 아프지 않게 때렸다. 이사라는 한숨을 푹 쉬며 마른세수를 하고는 입을 삐죽였다. 지금 시간은 8시. 저녁도 안 먹었다. 히다카는 이사라의 등을 툭툭 치면서 뭐든 먹고 싶은 게 있냐고 조심히 물었다.
"생각이 없어."
"먹어야 일을 하지."
"..."
안 먹고 퇴근하면 안 되냐는 말이 목 끝을 톡톡 건드리고 있었지만 이사라는 꾸욱 눌러 참았다. 오늘 그렇게 된통 깨지고도 정신을 못 차려. 밤새야 하는 걸까. 서류들을 몇 번 대충대충 넘겨보았다.
아 짜증나 죽겠네. 차라리 세나 이즈미라도 있으면 죽자 살자 찾을 텐데. 이사라는 책상에 얼굴을 박으며 한숨을 커다랗게 쉬었다. 입맛도 없고, 생각도 없다. 그냥 들어가서 잠만 자고 싶다. 야근 폭발해라. 이왕 폭발하는 김에 경시청도 폭발해라. 아니다, 내 직장이고 내 자금줄이야 안 돼.
"나 그냥 도주하면-"
"내일 감당 어쩌려고."
그래. 내일을 위해. 내일을... 걍 때려 치고 리츠 등에다가 빨대 꽂고 살고 싶은 기분이 스물스물 드는 이사라였다. 원래 이러면 안 되는 거 잘 알고 있다고. 하지만. 하지만! 일 안하고 돈 많이 버는 리츠 품에서 좋아하는 책 읽고 신나게 노는 게 뭐가 나빠!
"안되겠다."
"이사라!"
"사-리!"
"싫어싫어! 난 갈래! 어차피 집중도 안 되는 마당이야!"
본격적으로 막나가는 거냐! 호쿠토의 말에도 이사라는 아랑곳 않았다. 내일 대차게 깨지고 올 테니 난 오늘 리츠의 신간을 읽을 것이다! 막나가는 이사라를 말릴 수가 없었다. 저 날만 저러는 거야. 시말서 좀 쓰면 괜찮... 아이고야. 호쿠토는 이마를 붙들었다.
"난 간다!"
"시말서나 준비해, 이사라."
"네네~"
마코에게 차 끌고 와달라고 해줘~ 나는 자유로이 살겠다. 렛잇고! 이사라는 차 키를 히다카에게 던지고는 후닥닥 특수부를 벗어났다. 자, 우선 퇴근을 했으니 리츠의 집에 가서 신간을 털어와 볼까. 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길을 걷던 이사라는 순간 발을 멈췄다.
"……."
그리고 고개를 살짝 돌려 스쳐지나간 사람을 보았다. 남자. 키는 179cm정도. 눈 밑에 흉터. 검은 후드를 깊게 눌러썼다지만 보이는 건 다 보이는 법이지. 이사라는 고개를 갸웃하다 휴대폰을 들었다. 수신자. 유우키 마코토.
[퇴근하시고 내일 시말서 쓰신다고 하더니.]
"범죄자 데이터베이스 조회 가능해?"
[컴퓨터 앞이야.]
"조회 좀."
생각나는 범죄자의 이름을 읊자 유우키 마코토의 한숨이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전과 5범. 아이고. 악질인데 저런 놈들은. 혀를 가볍게 차는 유우키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이사라는 범죄자의 구속 여부를 물어보았다.
[아직 안 잡혔네. 왜?]
"지금 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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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신간은 이쪽입니다.
나이츠 위주의 올캐러 책이다보니 다른 캐릭터들도 나옵니다. 주의해주세요.
커플링이 중구난방이어서 위의 인포를 제대로 확인해주시면 감사합니다.
또한 분권이므로 다음권은 6월 어나스테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에이레오를 부득부득 우기지만 정말 에이레오가 이번권에는 분량이....(너무 슬퍼서 드러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