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Zero
리츠마오온 신간 샘플 본문
샘플)
“안녕.”
이것이 나의 첫 기억이다. 머리에 총이라도 맞은 듯 한 아주 신선한 만남이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사쿠마 리츠는 말없이 자신의 머리 위에 투명우산을 씌워주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감기 걸려.”
다정하게 말하는 목소리의 끝에는 아주 작은, 염려가 섞여있었다. 리츠는 남자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약간 도톰한 그 입술 사이로 흰 이가 보일 듯 말 듯 하다.
리츠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우산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우산에는 붉은 별, 그리고 푸른 별이 알알이 박혀 있었다. 눈이 아프지는 않지만, 왠지 시간이 있다면 그 우산 밑에 앉아서 하나하나 별을 세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투툭이는 소리를 잔뜩 내며 들이 부어대는 비가. 시끄러울 정도로 거슬리지만. 이상하지.
리츠는 이 남자가 거슬리지 않는다.
“집에, 데려다줄게.”
“…….”
처음 보는 남자인데. 이상하다. 익숙한 것은 아니지만 불편한 것도 아닌 이 기분은, 처음이었다. 리츠는 남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신록의 푸른 눈이다. 비슷한 눈을 본 기억이 있다. 자신을 응시하는 따땃한 눈길과는 다르게, 맞잡은 손은-
차가웠다.
머뭇거리다 내민, 리츠의 손을 꼬옥 잡아준 남자는 웃으면서 리츠에게 한걸음 가깝게 다가섰다. 젖고 있던 남자의 어깨를, 우산이 드리워져 젖지 않게 해 주었다.
“다시 한 번 말할까.”
“?”
“안녕.”
“……. 안녕.”
인사에 화답하듯이 낸 리츠의 인사는, 아주 거칠고 갈라진 목소리였다. 자신이 낸 목소리에 스스로 흠칫 놀란 리츠를 보며 풋- 웃은 남자는 허리를 숙여 리츠와 시선을 가까이에 마주하였다.
“다시 해 줄래?”
남자의 부탁에게 리츠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큼큼- 비가 와서인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리츠는 다시 목소리를 내어 인사하였다.
“안녕.”
“후후. 이름이 뭐야?”
“당신은?”
“내가 먼저 통성명?”
“응.”
리츠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멋쩍은 듯이 웃었다. 눈썹이 정말 팔(八)자로 내려와서 웃었다. 약간, 신기했다.
“이사라 마오. 마오라고 불러.”
“…….”
“이제, 네 차례야.”
“집에 가고 싶어.”
뭔가. 이름을 별로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우산을 쥐고 있는 건 이사라 쪽인데. 그럼에도 이사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래.”
집이 어디야? 라고 하면서 리츠의 빈손에 우산의 손잡이를 쥐어준다. 손잡이의 끝에는 노란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리츠는 어? 라는 눈으로 이사라를 바라보았다.
“응? 왜?”
“내가, 드는 거야?”
“네 집으로 가고 있잖아.”
나는 네 집을 몰라. 그러니까 네가 들어야지. 후후. 이사라는 손을 뻗어 리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직, 어린 몸이-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삐죽인다. 이사라의 웃음이 약간 커졌다.
“머리, 쓰다듬지 마.”
“미안-”
귀여웠어. 이사라의 말에 리츠의 목소리가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귀엽다는 말도 하지 마.”
형이 만날 해. 형도 있어? 응. 한 살 많은 형. 고등학생이겠네? 응. 집에 있는 거야? 아니. 없어.
이름도 모르면서, 벌써 가족 구성을 다 알아버렸네. 이사라는 웃으면서 빗소리에 몸을 맡겨 리츠를 따라 느리게 걸었다.
“근데, 이사라는 몇 살이야?”
“어?”
대뜸 던져진 질문에 이사라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나이? 아아- 그제야 이사라는 픽 웃었다.
“이건 알려주지 않을래.”
“에에-”
“너는 몇 살인데?”
“난 중학교 3학년.”
“곧 고등학교 들어가겠네?”
“아직 반년 남았어.”
리츠의 목소리는 불퉁했다. 별로 나이를 먹고 싶지 않은 걸까. 이사라는 리츠의 표정을 찬찬히 훑었다. 리츠도 이사라의 표정을 끄집어 올리고 있었다.
“그냥 보면 고등학생 같은데, 이사라는.”
“하하. 고등학생이면 좋겠다~”
이사라는 웃으면서 다시 손을 뻗어 리츠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이익, 쓰다듬는 거 싫다니까……. 그러면서도 차가운 그 손길이 좋은 건지 몸으로는 드러내지 않는 것이.
여름의 더위를 아주 약간이라도 삭히는 저 손이 시원해서 그런 거야. 리츠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이사라를 보았다.
“있지. 비 오면 무슨 생각해?”
이사라의 대뜸 나온 물음에 리츠는 미간을 약간 찡그렸다. 비가 오면. 글쎄.
“실은 오늘 비가 올 줄 몰라서 우산을 안 들고 와서인지, 오늘의 비는 짜증났어.”
“하하- 확실히 오늘은 좀 변덕이었어.”
“그냥 평상시 우산이 있을 때의 비는 좋아.”
시원하고. 더운 건 정말 싫어서 시원한 게 좋아. 근데 비가 오면서 뜨거운 바람이 불면 싫어. 약간 끈적거리고 습하지만 집에 제습기가 있다면 나쁘지 않아. 리츠의 조근조근하고 느린 말에 이사라는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지금은 장마기간이라고 일기예보가 그랬으니까.”
“아아. 확실히.”
“확실히?”
“일기예보가 틀리지 않았다고.”
한동안은 맑아진 뒤, 비가 쉼 없이 내릴 거니까. 내일부터는 우산 잘 들고 다녀. 이사라는 리츠를 바라보며 말했다.
“…….”
“응? 왜?”
“……. 아냐.”
싱거운 리츠의 말에 고개를 갸웃한 이사라는 이내 웃으면서 리츠에게 조금 가까이 다가갔다. 어깨가 살짝 닿는다. 아 차갑다. 냉기가 리츠의 어깨를 약간이나마 시원하게 해주고 있었다.
“비 너무 맞으면 감기 걸려.”
“알아.”
“병원, 싫어하지?”
“양호실도 싫어해.”
병원 특유의 냄새 있잖아. 난 그 냄새가 싫어. 뭔가, 토할 것 같아. 우우- 상상하니까 비위가. 리츠는 인상을 슬쩍 쓰면서 이사라를 바라보았다. 집까지 가는 길이. 왜 이렇게 짧지? 몇 마디 나눴다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다고.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길은 걸어서 20분. 20분이라는 시간, 생각보다 짧구나. 리츠는 집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약간 울적해졌다. 이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로 나오는 것이 자신의 집인데.
“거의 다, 왔어.”
“그래?”
생각보다 멀구나. 이사라는 웃으면서 집 앞을 가로막는 울타리 옆에 섰다. 엄마가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장미꽃들이 보였다. 비에 젖어 약간 생기를 담아 파릇해진 것 같은 기분인데. 뭐. 기분이겠지. 붉은색의 장미꽃을 보던 이사라는 좀 볼이 따끔한 것 같은 시선에 눈을 내려 리츠를 바라보았다.
“저기.”
“응?”
“…….”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내일도 보고 싶다, 라고 하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리츠는 어……. 라고 한마디 중얼거렸다. 그런 리츠를 보던 이사라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리츠에게 한걸음 멀어졌다. 비가, 순식간에 이사라를 덮친다.
“또 만날래?”
-
역시 마-군은 없네. 리츠는 혀끝이 쓴 기분이 되어 목울대를 울리며 침을 삼켰다.
발걸음은 어느새 공원 안쪽의 수국 밭으로 향하고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아 활짝 핀 수국을 멍하니 보고 있던 리츠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소리쳤다.
“마-군!”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목소리로. 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정말, 비가 오지 않으면 올라오지 못하는 구…….
“릿짱.”
이사라는 자다 깬 얼굴로 눈을 비비며 뒤에 서 있었다. 리츠는 우산을 접고 이사라에게 다가갔다.
“못, 나오는 게 아니었어?”
“오래는 못 있어.”
자다 깼어. 이사라는 다크서클이 약간 내려온 얼굴로 리츠를 보았다. 리츠는 손을 뻗어 이사라의 뺨에 대 보았다.
“릿짱.”
“응?”
“날 언제까지 기다려 줄 수 있어?”
그게 무슨 소리인건지. 리츠는 고개를 갸웃하며 손을 내렸다. 이사라를 응시하는 눈에 불안함이 아주 조금씩 섞여들고 있었다.
“저녁부터 비가 내릴 거야.”
오래 내릴 거야. 그리고 난 뒤 장마는 끝나. 나도, 사라질 거야. 이사라의 말은 촉촉했지만 건조했다. 젖은 목소리의 내용은 금방이라고 갈라질 것 같았다.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묵직한 무언가가- 쿵-
“마-군…….”
“난, 릿짱이 좋아.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난 널 만난 적이 있었어.”
까마득한 과거에. 나도 기억의 편린 속에서 널 찾아낸 거니까.
“그런데,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너를 너무 곤란하게 만들어.”
내가 옆에 있으면 누군가가 보기에 넌 미친놈처럼 보일지도 몰라. 네가 그렇게 생각 안한다고 해도. 이사라는 고개를 푹 숙였다. 노랑 머리핀이 보인다. 꽤 잘 어울린다, 고 생각했다.
“내가 네 옆에 있고 싶은데, 그러려면 정말 시간이 걸려.”
“그런 거, 필요 없어.”
“내가 필요해.”
“필요 없어!”
리츠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사라는 어깨를 움츠렸다. 리츠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마-군도, 형처럼 사라지는 게 싫어.”
“돌아올게.”
“언제!”
“…….”
그걸 장담할 수가 없다. 이사라는 울음을 터뜨리며 서럽게 우는 리츠에게 다가갔다.
“릿짱-”
“가지 마.”
남의 눈이 뭐가 중요해. 내가 보이면 되는 거 아냐? 리츠는 울면서 이사라를 바라보았다. 그때랑 똑같았다. 형이 짐을 싸며 떠나던 날이랑.
[미안해, 리츠. 형이 많이 못나서.]
“형도, 마-군도 다 날 두고 사라지면.”
“사라지는 게 아ㄴ…….”
“그게 사라지는 거야!”
리츠는 발을 굴렀다. 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는 형, 이젠 마-군까지! 혼자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시간을 기다리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르잖아! 리츠는 팔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계속 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눈물이 자꾸 앞을 가렸다. 마-군의 얼굴이 보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 미안해.”
“두고 가지 마.”
혼자 있고 싶지 않아. 언제 온다고 말이라도 해 줘. 또, 나는-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
행사장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