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Zero
에이레오) 본문
낮잠을 잤다. 그리고 얄팍한 꿈을 꾸었다. 달콤한 꿈도 아니다. 기분 나쁜 꿈도 아니다.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꿈을 꾸었다.
그것은 아주 조그마한 시간의 틈바구니에 낀, 꿈이었다. 잘각잘각 움직이는 시계태엽에 맞물림을 도와주는 태엽 하나를 더 끼우는 그런 것. 마법사의 왕은 그것을, 우주에 떠있는 꿈이라고 했다. 대체 그건 무슨 뜻인데? 라고 물었을 때 그 왕은 눈을 깜빡이면서 자신을 바라보다 이내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
'직접 생각해보는 건 어때? 텐-시.'
텐시(천사). 외모에 반하면 그런 타이틀이 붙겠지만 자신의 행보는 그런 타이틀과는 반대의 행보를 하였다. 텐쇼인 에이치는 폭군이었고, 마법사의 왕이 가져야할 왕관을 찬탈하였으며, 그가 이끄는 군대들은 빠르게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를 만들어내었다. 혼돈에서 질서로. 파격적이고 위험한 행보의 끝에는 누군가가 올라야할 제위를 가로채는 것이 있었다. 모든 것을 사랑하기에 사라져야 하는 왕이 존재하였다.
결국은 끝은 누군가가 예언한 대로 흘러갔다.
'결국은 그뿐이니까요.'
스노우볼이 그렇게 굴러가듯. 운명의 수레바퀴. 흘러가는대로 둘 수밖에 없는 그 절대적임. 그 흐름에 텐쇼인은 몸을 맡긴 채였다. 그리고 그들이 쓸려나갔듯, 마법사의 왕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그는 저항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필연적인 끝을, 자신의 손으로 내주려고 하였다.
[체크메이트.]
Farewell, My Dear. 텐쇼인은 눈도 감지 못하고 머리가 뚫려 사망한 그의 시체를 인형처럼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작별은 짧을 거야. 그리고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네가 나를 사랑한 만큼, 나는 너를 소유하고 있어. 너를 위해 준비된 현실과 절망과 환희의 속살거림에 미쳐버린다고 해도 결코.
나는 너를 놓을 수 없어. 아니, 놓지 않을거야. 너의 우주가 품은 꿈이 너를 기다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듯이.
황제는 로맨티스트처럼 굴었지만 로맨티스트는 아니었다. 텐쇼인의 로맨틱이란 것은 인간의 개념과 거리가 멀었고, 츠키나가는 그런 그의 행동을 딱히 좋아하시도 않았지만 딱히 싫어하지도 않았다. 금빛의 테를 두른 듯한 푸른색의 우산을 쓰고 커피 한 잔과 함께 나타나 몇 마디의 대화를 하다 츠키나가는 가곤 했다. 가끔은 멍충이 황제랑 만나고 싶지 않아-! 라면서 자신의 손길이 드리우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치곤 했다. 물론 도망쳐봤자 거기서 거기였다. 그의 행보를 모를만큼 텐쇼인 에이치는 안일하지 않다.
정복은 쉽지만 수성은 어렵다. 텐쇼인이 만들어낸 개척점. 언젠가는 자신 또한 츠키나가군처럼 찬탈당할 것이다. 그때가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그때 츠키나가군은 어떤 얼굴을 할까.
한번쯤은 물어보고 싶을 질문지었지만, 텐쇼인은 츠키나가 앞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홍차와 다과들을 꺼내놓고 츠키나가를 맞을 뿐.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귀에 울리자 딱히 예민하지도 않은 귀가 반응하였다.
텐쇼인이 이내 눈을 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는 한낮이었다. 오늘은 스케쥴이 없었다. 자신이 사회에서 이끄는 텐쇼인 재벌그룹이란 것은 자신이 또다른 세계에서 만들어낸 것과도 닮았다. 수성은 어렵다.
"아-"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두드득. 뼈가 맞춰지는 소리가 무서울 정도로 선명하게 들려왔다. 익숙하다.
"굿애프터눈- 멍충한 황제."
"어?"
텐쇼인의 시선에 담긴 건 건너의 소파에 다리를 꼬고앉아 양 손을 깍지낀 츠키나가였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옷이 잘 어울렸다.
"세나군이 코디해준 거?"
"아아. 아니. 나루가."
그냥 아무거나 입고 나가려고 했다가 머리채를 쥐어잡히고는 엄청 혼났어. 목끝까지 잠궈져 있는 단추에 투덜거렸지만 풀지는 않았다. 상냥하기도 하지.
"묘하네. 츠키나가군이 먼저 오다니."
"뭐."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눈 끝이 약간 발그레졌다. 입술을 모아 살짝 삐죽이자 입술로 색이 몰려 립스틱을 바른 것 같이 되었다. 저 입술에 잘 어울리는 립을 본 것 같았다. 저번 백화점을 돌 때. 희미하지만, 맥의 립스틱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무슨일이야?"
"어?"
"츠키나가군이 먼저 올 정도면 나에게 용건이 있어서가 아니겠어? 용건은?"
텐쇼인이 침대에서 벗어나며 츠키나가를 바라보았다. 츠키나가의 눈. 텐쇼인이 소장한 만년필에 사용하는 잉크들 중 하나에 츠키나가의 눈과 비슷한 색을 가지고 있다. 디아민 골든 오아시스.
"아니... 그, 그냥..."
"그냥?"
시선을 어디에 둘 지 몰라서 허둥거리고 있었다. 자신이 부르면 마지못해 응답하는 츠키나가군 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ㅊ, 차 한잔 얻어마실까 해서."
그런 얼굴은 꽤 반칙이었다. 길을 잃어버린 아이같은 얼굴. 텐쇼인은 시선을 내렸다. 피가 밑으로 쏟아지는 것 같은 느낌에 인상을 슬쩍 구겼다. 그리고는 천천히 츠키나가에게 시선을 마주하였다.
우주를 부유하는 꿈. 너의 세상에 발을 디딜 수 없는 꿈. 텐쇼인은 츠키나가에게 손을 내밀었다.
"늘 가던 곳으로 가. 옷을 입고 차 한잔 하지."
물에 잉크를 타듯 번지는 웃음에 츠키나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텐쇼인은 입고있던 잠옷의 단추를 풀었다.
꿈이 기억에서 흐려지고 있었다. 츠키나가군이 끌어안고 있는 우주에서 쫓겨난 기분이 목 끝을 간질였다. 우주를 끌어안은 그에게 별은 그의 기사들이겠지만, 그들과는 다른 별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이 되는 것은 결국 그 우주마저 삼켜버릴 블랙홀인 셈이지. 너의 우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나는 너를 집어삼킬 수밖에 없어.
그런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꽤나 로맨티스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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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섞어보았지만 망했다.
에이레오 전력 60분 6회차 전력 주제: 나는 너를 우주라 부르고 싶었다. 별이 되어 너라는 우주 한조각 차지하고 싶었다.
에이치가 봤다는 레오에게 어울리는 립스틱은 맥의 프로스트 립스틱 코스타 시크 입니다. (맥 홈페이지 발췌)
그리고 디아민의 골든 오아시스입니다. (베스트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