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Zero
츠카토리) 본문
히메미야 토리를 지칭하는 말이라면 아마도 그것이 정답일 것이라고, 후시미 유즈루는 장담하였다. 조그맣고 예쁜 인형같았다. 분홍빛의 머리카락, 커다랗게 뜬 녹색의 눈. 눈을 한번 찡그릴 때마다 심장이 덜걱덜걱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다.
목소리는 변성기를 거치기 전 같이 맑고 깨끗한 목소리. 그리고 사랑스러움의 극(極)이라면,
아마 지금.
"유즈루- 사과 줘."
"예, 도련님."
잘 깎아진 사과의 속살을 크게 한 입 베어물을 때. 무언가를 먹을 때만큼 사랑스러운 순간이 어디에 있을까. 오물오물 움직이는 입술. 통통하게 먹을 것을 담고 있는 볼. 그리고 행복에 겨워 곱게 휘어진 눈꼬리.
어느 하나 사랑스럽지 않을 순간이 어디에 있지.
이런 주인을 모신 자신이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다.
히메미야 토리.
주인은, 자라지 않는다.
Tiny Little Conjurer
스오우 츠카사 x 히메미야 토리
w.b. 0117
원래 육체는 자라나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히메미야 가문은 철(鐵)을 다루는 술사 집안. 이 집안은 다른 술사 집안과는 다르게, 능력이 여자에게'만' 유전적으로 전달된다. 그 세대의 여자 단 한 명만 술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세대에 전례에도 없던 일이 일어났다. 남자가 능력을 가져간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가, 눈을 간신히 뜨며 빼앵 우는 순간- 바닥에서 능력들이 솟구쳤다. 처음 있는 일.
이 아이는 이단아가 되었다.
부모와 여동생 외에는 의지할 곳도 없다. 버림도 받아보았고, 어릴 적 받을 수 있는 외압이란 외압은 다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저걸 극복해 올라섰다. 3자의 시선에서는 대단하고, 한편으로는 독하다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저 작은 몸으로 이뤄낸 자리, 본인이었어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
남자는 다리를 꼰 채 침대의 끝에 앉아 있었다. 히메미야가 자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그랬었지. 천사같다고. 천사는 천사지. 성격만 되바라지게 더러운 거 빼면야. 입만 다물면 참 사랑스러워. 입이 열리면 보이는 지옥문 저 너머가 생각났는지 남자는 배를 울리며 조용하게 웃었다.
입이 열리면 좋은 말이 나오는 경우가 드문, 히메미야다. 모난 성정이다고 하는 것 보다는 몸도 덜 자랐는데 혀도 덜 자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남자다.
남자는 히메미야와 동갑이다. 태어난 달수는 남자가 조금 느리지만, 자신과 히메미야의 차이는 성장뿐이다.
비슷한 환경, 비슷한 능력, 비슷한 성격.
유일하게 다른 것은 히메미야가 자라지 않는 것일 뿐이다. 남자는 턱을 괴고 발끌을 까딱이며 히메미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햇볕에 빤빤하게 말린 이불이 히메미야가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대며 서로서로 부딪힌다. 히메미야는 뒤척이면서도 계속 자고 있었다. 등이 보인다. 잠옷을 대충 입고 잔 티가 나는지 하얀 속살이 탐스럽기 짝이 없다.
잘 안타는 피부다. 햇빛을 오래 쬐면 사과같이 빨개진 얼굴로 죽을것 같은 표정을 짓는 걸 종종 본 적 있다. 평생 이렇게 입 안열고 잠만 잔다면, 죽음을 건너 사랑해줄 의향이 있다.
삐이이- 삐이이- 삐이이-
알람이 울린다. 시끄러워 금방이라도 깰 것 같은데도 히메미야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배게에 머리를 포오옥 묻으면서 팔을 뻗어 더듬더듬 자명종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잡히지 않는다. 히메미야는 자신처럼 팔이 길지도 않다. 그리고 손도 작다. 남자는 침대에서 일어나 조용히 걸었다. 발소리조차도 죽이고 걸어 히메미야 대신 시끄러운 알람을 꺼 주었다
"으으... 유즈루... 고마워..."
히메미야는 몸을 틀어 누워 이불을 목 끝까지 올렸다. 그리고는 도르르- 도롱이처럼 만다. 풋- 남자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후시미로 착각하고 있는 저 도련님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그저 기다리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하며 건너의 책장을 보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로 가득이 채워져 있다. 저 책들은 히메미야의 취향이기도 하다.
남자는 고르고 고민하다 정 가운데 책장에 있던 책 한권을 꺼내었다. 그림자 시리즈 2부.
"리츠 선배 book이나 간만에 읽어야-"
남자는 정면에서 침대가 보이는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앉았다. 무겁지만 부드러운 질감의 소파에 편안히 앉아 책을 한장한장 넘기는 즐거움. 남자는 햇볕 잘 들어오는 곳에서 책을 읽는 것이 못견디게 좋았다. 남자, 스오우 츠카사는 히메미야가 일어날 때까지 계속 책을 읽었다.
스오우는 히메미야의 가장 커다란 불청객이다. 어릴때는 곧은 나무인 줄 알았더니, 나이츠의 왕인 츠키나가 레오의 곁에 있으면서 배운게 쓸모없이 유들유들하고 능청스러운 것까지 싹 배웠다. 츠키나가를 가장 많이 닮은 스오우는 유쾌함을 빼고 진지함을 집어넣은 츠키나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으으으으음..."
뒤척이며 침대를 거의 구르다시피 하는 히메미야의 목소리에 스오우는 잠시 책에 둔 시선을 히메미야에게 가져갔다. 이불에 싸인 애벌레가 꿈틀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꽤나, 보기 좋은 광경이다. 이런 평화는 몇 번 있을까 말까한 거니까.
스오우와 히메미야는 꽤 오랜 시간을 알아왔고, 그 시간동안 굉장히 많이 싸웠다. 본인 대 본인이 아닌, 피네와 나이츠로써도. 가끔은 그냥 아무 능력도 없이 자신들이 마주쳤다면, 꽤나 괜찮은 친구가 되었을 것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물론, 그 생각도 오래 가지는 않았지만.
"배고파..."
크림치즈 바른 베이글 먹고 싶어- 따뜻한 핫초코- 히메미야는 잠결에 몸을 일으켜 중얼거렸다. 어어- 위태위태하다. 조금만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이면 그대로 이불에 쌓여서...
"으아악!"
바닥으로 낙하하지. 스오우는 일어서지도 않았다. 저런 적이 한두번이던가. 심심하면 이불에 말려서 바닥으로 낙하하는 히메미야다. 짤막한 개그라니까. 침대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어서 다치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꼴이 우스꽝스럽다.
"우으으- 흐에엥..."
울먹이는 소리를 내며 이불에서 빠져나온 히메미야는 거의 기다시피 하며 널부러졌다.
"배고파아~"
힝힝거리는 것이 영락없는 초등학생이다. 잠에 덜 깨서 머리를 몇 번 꾸벅꾸벅 졸다 몸을 느리깃느리깃 일으킨다. 한 번 대차게 엎어지고는 또 몸을 조심히 일으킨다. 약간 저혈압이어서인지 몸을 가누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가서 도와주지는 않는다.
"츠카사아아- 얼른 일으켜줘!"
이런. 정신 반쯤 놔서 모르는 줄 알았더니. 스오우는 책을 덮고는 히메미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히메미야를 끌어안듯이, 번쩍 일으켜 안았다.
"배고파아아아-"
"밥을 먹어."
"유즈루를 불러줘."
"네가 불러."
"뭐, 힛! 허윽, 혀야... 치사한 놈!"
잠이 덜 깨서 혀를 몇 번 씹더니 할딱이며 머리를 스오우의 어깨에 박고는 다시 눈을 감는 히메미야였다. 애다. 정말 애야. 자신와 너무 많이 차이나는 애다. 성장만 멈추지 않았어도 자신와 비슷할지도 모르는데.
자라지 않는 피네의 황태자.
그대로 안은 채 방 밖으로 나와 복도를 걸었다. 지나가는 메이드들이 수군거리는 것이 들린다. 괘념치 않았다. 히메미야는 다시 정신을 놓고 졸고 있으니까. 스오우는 히메미야를 도닥이면서 다이닝 룸에 도착하자마자 히메미야를 식탁 위에 눕혔다.
"오-"
식사를 준비하고 있던 후시미는 스오우와 히메미야를 번갈아 보다 픽 웃었다.
"식사는 도련님으로 하시는 겁니까?"
"... 농담이면 좋겠습니다만."
그리고 아침은 늘 안먹거든요. 빈 속이 편해서. 스오우는 귀찮다는 얼굴로 손을 털고는 히메미야가 누운 근처의 의자 하나를 들고 멀리 주욱 빼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후시미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스오우의 행동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종종 이런 장난을 치기도 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막는다고 해서 안 칠 스오우도 아니다.
"으음- 음..."
뒤척뒤척. 좁고 긴 테이블 위의 작은 황태자. 한번 몸을 트는 순간,
"으아아악!"
이번에는 제대로 아플 것이다. 비명이 쩌렁쩌렁 다이닝 룸을 울린다. 퍽소리가 난 것이, 바닥에 머리를 제대로 박았나보다. 그대로 울음을 터뜨린 히메미야를 보며 멀찍이서 픽 웃은 스오우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너!!"
사건의 원흉이라는 건 바쁜 법. 스오우는 다리를 꼰 채 히메미야를 보며 배를 울려 웃었다. 닮았다. 그, 왕과. 히메미야는 이를 물며 손을 휘둘렀다. 스오우가 앉은 의자 밑에서부터 철(鐵)의 바늘이 솟아올랐다. 스오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의자에서 빠르게 내려왔다. 그리고는 히메미야의 머리 끝쪽에 발을 디뎠다. 허리를 깊이 숙여 히메미야와 눈을 마주치고는-
"Good Morning."
Tiny Princess. 아침은 크림치즈를 듬뿍 얹은 베이글, 어때? 스오우의 웃음소리와 히메미야의 악에 찬 비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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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와 마법사 기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