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Zero
마법사와 그대 본문
“후아암-”
세나 이즈미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피곤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찰박찰박 발바닥을 바닥에 부딪쳤다. 차가운 바닥이 마음에 들었다. 발바닥으로 찬기가 올라와 잠이 좀 깨는 기분인걸. 세나는 기지개를 켜고는 코를 훌쩍이며 살짝 졸았다. 아직 잠에서 확 깨는 것이 어렵다. 세나는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빠져나와 복도를 걸었다. 대단히 자연스럽다. 여기에 한두 번 와본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듯이.
집은 있은데 요즘은 남의 집에 신세 지고 있단 말이지. 세나는 어느 방 문 앞에 서서 문고리를 한참 바라보다 조심히 손으로 잡고 왼쪽으로 돌렸다. 문이, 열린다.
“왕님-”
좋은 아침이야. 세나는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츠키나가에게 다가갔다. 츠키나가는 세나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건지, 열심히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악보들이 잔뜩 널려 있는 것이, 저거 새벽부터 저랬나보다. 츠키나가는 정신이 나간 것 같아 보였다. 뭐, 왕님 정신 나가신 거 한두 번이셨던가. 세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Good Mornig, 세나 선배.”
“좋은 아침이야, 카사군.”
어깨가 결리는 게, 슬슬 몸뚱이를 갈 때가 된 건지. 아니다. 나중에 스포츠 마사지라도 받아야지. 세나는 목을 우득우득 풀며 스오우가 앉은 소파 옆자리에 앉았다.
“익-! 책을 읽는데 방해됩니다!”
“책보단 내가 더 중요하지 않아?”
겨우 저 종이쪼가리보다는 내가 더 소중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아? 세나는 인상을 잔뜩 구기며 다리를 꼬고 앉았다.
“나루군은?”
“새벽같이 일하시러 출근하셨습니다.”
“아- 곧이지. 쿠마군은?”
“리츠 선배는 주무시러 가셨습니다.”
“하-”
잠 잘 시간이긴 하네. 세나는 시계를 보며 스오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눈을 감았다. 또 주무시려는 겁니까? 그럼 Bed로 옮겨드리겠습니다. 나직하고 정중한 스오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나는 괜찮다고 말하고는 잠시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종이가 넘어가는 사락이는 소리가 꽤나 기분이 좋다.
아, 생각해보니 슬슬 집으로 들어가긴 해야 한다. 다른 것도 아니고- 빨래를 해야 해. 일주일치 정도를 밀어놓고 그냥 스오우의 집으로 들어가 신세를 진 것이다 보니. 내일은…….
“됐다!!!!!!”
야호! 난 진짜 천재라니까! 츠키나가의 벼락같은 비명소리에 놀라 눈을 뜬 세나는 미간에 주름을 잡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왕님?”
“이거 봐, 세나!”
에메랄드같이 진한 녹색의 눈을 반짝이며 세나와 스오우에게 가까이 온 츠키나가는 눈앞으로 잔뜩 무언가가 쓰여 있는 악보를 내밀었다.
“이게 뭐기에.”
왼손으로 악보를 받아 천천히 읽던 세나와 스오우는 표정이 천지차이로 바뀌었다. 스오우는 영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당연히 몰라야 정상이지. 녀석은 ‘마법사’도 아니니까. 마법을 알지도 못하는 녀석이 보면, 이 악보는 그저 잔뜩 휘갈겨 쓴, 가벼운 작곡에 불과하다. 하지만, 세나는 이걸 알겠다는 듯, 기가 막혀 웃을 뿐이었다.
“왕님.”
“응?”
“나, 이거 써도 될까?”
“에에- 쓰는 거야?”
“세나 선배, 그게 뭡니까?”
저는 도통 모르겠습니다. 머리에 Question Mark를 달아야 할 판국이라고요. 스오우는 볼멘 목소리로 세나를 바라보았다. 세나는 피식피식 웃으면서 악보를 잘 접었다. 그리고는 츠키나가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내가 써도 되는 거지?”
“뭐. 마음대로 해.”
“이거 유효기간은?”
“한 달.”
“겨우?”
“하고 열흘 얹어서.”
“오케이.”
그럼, 나 나갈 준비 할게. 세나는 빠르게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사라졌다. 스오우는 하아? 라는 표정을 지으며 츠키나가를 바라보았다. 츠키나가는 어느새 세나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Leader.”
“응?”
“저게 도대체 뭡니까?”
“저게 뭐냐고?”
“네.”
저는 그저, 한 장의 악보처럼 보였는데, 세나 선배는 뭐가 그렇게 좋다고 방방 뛰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렇게 웃으시는 거, 엄청 오래간만에 본 것 같습니다만. 스오우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며 츠키나가를 바라보았다.
“하하-”
츠키나가는 웃으면서 스오우의 볼에 가볍게 입술을 대어 입을 맞췄다. 쪽- 소리가 들려오자 스오우의 자색 눈이 대번에 댕그래진다.
“W, What?!”
“저게 궁금하면, 네가 마법을 익히는 게 어때?”
루크 계승까지 멀었지만, 네 실력이면 빠르게 알 듯한데. 츠키나가가 속내를 비치며 웃자, 스오우의 표정이 나빠졌다.
“제가 왜 마법을 안 익히는지 알지 않습니까.”
“알긴 하는데.”
“그러면 그쪽으로의 문의는 일절 받지 않습니다.”
“칫-”
철벽이 따로 없어요, 철벽이. 츠키나가는 흥칫뿡- 하는 표정으로 스오우를 바라보다 스오우가 들고 있는 책을 툭툭 건드렸다. 대번에 자신의 독서가 방해되자, 스오우의 표정이 세나와 비슷해졌다. 같은 책만 수십 번 읽는 게, 확실히 네가 리츠의 팬이기는 하구나~ 츠키나가는 하하 웃으면서 책을 계속 건드렸다.
“이익-! Leader!”
“리츠 책 그만 읽고 마법 좀 배우라는 게 그렇게 싫어?”
“예! 그러니 그만하십시오!”
제가 왜 싫어하는지 뻔히 아시는 분이 배우라고 하면 제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스오우는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페이지를 넘기려는 찰나-
“싫어!”
츠키나가는 스오우의 시선을 돌리려는 듯이 책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바닥에 잔뜩 널려있던 악보를 날려 스오우의 시선을 가렸다. 바람이 약간 일어나 악보들이 스오우에게 날아들었다. 츠키나가는 그런 스오우를 보며 하하 웃었다.
“Leader!”
정말…! 스오우는 짜증을 한껏 머금은 목소리로 자신의 시선을 차단한 악보들을 헤치며 츠키나가를 불렀다. 츠키나가는 그새 문을 열고 세나가 있던 방 쪽으로 후다다다 뛰어갔다.
“하여간 Physical 하고는-! 몇 백 년 산 사람치고는 너무 정정한 거 아닙니까?!”
스오우는 츠키나가를 뒤따라 달렸다. 보이지도 않았다. 어디로 간 거야! 스오우가 두리번거리는 사이, 츠키나가는 어느새 세나의 방으로 쏙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
“세나-!”
“놀라게 하지 말아줄래?”
방에서 젖은 머리카락을 털며 옷을 갈아입고 있던 세나는 츠키나가가 침대로 몸을 던져 데구르르 구르는 걸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아직 정리가 안 되어 있긴 하지만, 별로 좋은 광경은 아닌 걸?
“예쁘네.”
“간만에 차려입는 거지.”
“누굴 만나러 가는 거야?”
“음~ 비밀.”
“비밀은. 안 봐도 훤하네.”
녀석이지? 츠키나가는 웃으면서 손을 들어 가까이 다가오라고 까딱였다. 세나는 조심스럽게 츠키나가의 옆에 앉았다.
“재밌게 즐기다 와.”
“…….”
“40일정도면, 현실과 마법은 잘 구분할 수 있겠지.”
“날 뭐로 보고.”
“하하- 세나다운 대답이네.”
츠키나가는 세나의 팔을 당겨 자신의 옆에 눕혔다. 세나는 옷이 약간 구겨져도 조용히 츠키나가의 옆에 누워있었다.
“네가 어디에 있건, 내가 부르면 넌 내 옆으로 와야 해.”
“……. 날 바보로 보는 거야?”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세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츠키나가를 바라보았다. 츠키나가는 그런 세나를 보며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뭐야, 그 웃음. 날 못 믿었다는 거야?”
“아니.”
츠키나가는 세나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하며 웃었다. 따뜻한 입술이- 맞닿아서 약간 손끝이 바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세나의 첫 사랑의 키스란, 생각보다 보드라운 커스터드같이 행복을 선사하는 것 같았다. 츠키나가와 키스를 할 땐, 늘.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어.”
“오늘은 혀 안 넣네.”
“여기서 넣으면 동할지도 모르잖아?”
“……. 변태.”
세나는 몸을 일으켰다. 츠키나가는 계속 누워있었다. 세나는 흘끔 츠키나가를 바라보다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좀 더 누워 있을래.”
“자려고?”
세나는 침대에서 벗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셔츠가 약간 구겨진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겉옷을 입고 나갈 거니까 크게 상관은 없다. 40일이라. 40일간 하고 싶은 것 리스트를 주구장창 적어놔야 하나. 대번에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세나- 세나-”
“응? 왜?”
“내가 부르면 와야 해.”
마치, 세뇌시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츠키나가의 말에 세나는 고개를 살짝 꺾으며 츠키나가를 바라보았다.
“알아.”
네가 부르면, 난 어디에 있던 너에게 달려갈 거야. 너는 내 ‘왕’이고, 처음이고, 끝이야. 세나는 물에 젖어 투명한 푸른 눈을 츠키나가에게 향해 말했다.
“네 ‘부름’을 내가 거역한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많이 말해?”
“그냥.”
“어디 갈 거야?”
“아니. 스오의 집에 계속 있을 거야. 내가 필요하면 와.”
전화는 없으니까. 후후 웃은 츠키나가는 손을 뻗어 천장에 그려진 문양들을 손가락으로 덧그리듯이, 움직였다. 세나는 그런 츠키나가를 보며 손목에 시계를 찼다.
손목 위로, 약간 무게가 있는 시계가 올려졌다. 왼쪽 손목의 시계는, 본래 저 왕의 것.
“팔뚝에 부름 좀 그만 새겨.”
정말 아프다고. 세나는 주제를 돌리려는 듯이 툴툴거리며 시계바늘을 보았다. 곧, 8시다.
“아프기는 많이 아프지.”
“나한테만 그러잖아.”
“넌, 그렇게 고통을 가중시키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잖아.”
“…….”
츠키나가의 말은 세나의 정곡을 찔렀다. 세나는 츠키나가의 첫 번째 악장이고, 시작을 알리지만- 유독 부름을 받는 것을 싫어했다. 네 앞으로는 가겠지만, 그것이 오늘은 아니라는 듯이 구는 질풍노도의 청소년 같은 행동. 자신이 예상한 범위 외에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세나 이즈미. 츠키나가는 그저 그 부름에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만으로 세나를 발 앞에 오게 할 뿐이었다.
이게 한 기백 년 정도 이어지면 둘 중 하나가 포기할 법 하건만, 그것도 없다. 세나도, 츠키나가도 너무 오래 살아서 쓸모없이 이런데서 꽉 막힌 태도를 보인다. 스오우나 나루카미는 그런 둘을 보며 융통성이 없다고 혀를 찬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리츠는 포기한지 오래라고.
“그럼 부르지 마.”
“필요하니까 부르는 거지.”
“불러서 하는 거라고는 청소였던 적도 있잖아.”
내가 하녀야? 기껏 왔더니 피아노 청소하라고 그랬으면서. 악보 정리 하라고 한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세나는 툴툴거리며 왼손 다섯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소지에 쏙 들어가는 반지가 마음에 들었는지 세나는 츠키나가에게 다가왔다.
“40일 동안, 정말 네가 죽을 것 같은 일 아니면 부르지 말고.”
“지금 죽을 것 같은데.”
“거짓말하지 말고, 왕님.”
“흐응-”
세나는 톡 내뱉으며 신발을 신었다.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다. 츠키나가는 웃으면서 세나를 바라보았다. 거울을 보고 있는 세나는, 변하지 않았다. 외관은 자신이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모습 그대로다. 속은, 글쎄.
“왜.”
“그냥. 예뻐.”
“시답잖기는.”
세나는 캐리어백을 들었다. 스오우의 집에 신세를 좀 졌던지라 아예 옷가방까지 들고 왔었다. 이제 다 들고 돌아가야지.
“그럼, 가볼게.”
“응.”
세나는 거울을 보았다. 평상시의 세나 이즈미로 돌아와 있었다. 눈을 한번 깜박이다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캐리어백을 세운 채 츠키나가에게 다시 걸어갔다.
“밥 꼬박꼬박 먹고.”
“스오가 맨날 나 묶어놓고 먹이잖아.”
“……. 그래.”
입술을 몇 번 달싹이던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츠키나가와 얼굴이 약간 가까워졌다. 세나는 주저없이 상체를 츠키나가에게 가까이 하며 볼에 짧게 입을 맞췄다.
“다녀올게.”
“조심해서 다녀와.”
세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캐리어백을 잡은 채 거울 앞에 섰다. 자, 가볼까. 세나는 거울에 손을 올렸다. 순간, 거울이 녹는 듯이 세나의 손을 빨아들였다.
“악보, 잘 쓸게.”
“그래.”
츠키나가는 손을 흔들며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세나를 배웅하였다. 흐응- 츠키나가는 데굴데굴 침대 위를 굴러다니다 이내 이불을 덮어썼다.
40일이라. 조금 더, 오래 기간을 잡아 만들어 볼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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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마코이즈 시작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