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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와 그대 본문

Enst/마법사와 그대

마법사와 그대

0117 2016. 5. 6. 11:57

세나는 후후 웃으면서 방문을 열었다. 책장에 빼곡이 꽂혀있는 화학서. 갖은 언어들의 향연이다. 세나 이즈미. 현재는 화학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다. 본디 저명한 인물들 중 하나지만, 오래 살면서 이름을 바꿔가며 살다보니 현실에서의 이름은 나오 이즈미(名緖 泉)로 통한다.


하암~”


입이 찢어질 듯이 커다랗게 하품을 하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츠키나가의 악보를 꺼낸 세나는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가볍게 자신의 이름을 정 중앙에 적으면서 악보의 음을 그대로 따라 부르는 것이다. 츠키나가의 마법은 복잡하지만 부르기는 편하다. 그의 마법에 익숙한 세나는 펜으로 약간씩 츠키나가의 마법을 자신의 것으로 바꿔놓았다.


, 만나러 갈 수 있을 거야, 유우군-”


콧노래를 부르며 웃은 세나는 고개를 들어 바로 정면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금발의 남자가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수선화 꽃다발을 안고 서 있었다.

40일이다. 그동안만이라도 자신을 알고 있어줬으면 좋겠어. 세나는 눈꼬리를 접으며 손을 뻗어 사진을 톡- 떼어내었다.


보고 싶어.”


거리낌 없이 사진 위로 자신의 입술을 겹친 세나는 잠시 동안 멈춘 채 그 상태를 유지하였다. 첫 사랑은 츠키나가 레오지만, 지금의 사랑은 너인데- 내겐 영원히 너뿐인데. -


[이제 난, 당신이 없어도 됩니다.]


그렇게 매몰차게 내 손을 놓고 사라졌어. 세나는 약간 씁쓸한 표정이 되었다. 후우- 조금, 유우군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서랍에서 염색약을 꺼냈다. 보들보들 은색의 머리카락이 이젠, 검은색이 될 것이다. 쿠마군은 그걸 굉장히 싫어했다. 셋짱은 본래의 머리카락이 예쁜데- 라며 종종 하는 염색에 태클을 걸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크게 상관없다. 이제, 세나 이즈미는 나오 이즈미로 유우키 마코토를 만나러 가는 것이니까. 신속하게 움직이는 세나였다. 찰박찰박- 몇 시간을 투자하면 세나의 머리카락은 먹색이 되어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절실하게 움직이기는 너무 오래간만인 것 같은데. 그것도 유우키 마코토니까 그런 거려나.

지이잉- 지이잉-

휴대폰의 시끄러운 진동소리가 울린다. 머리를 대충 말리던 세나는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였다.


누구?”

-오오! 세나! 전화 받았구나!


호들갑을 떨며 호탕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모리사와다. 세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특유의 디폴트 짜증을 내었다.


뭐야.”

-하하! 너무 그러지 말라고.

좋은 정보 아니면 끊는다.”

-아아아앗! 그런 매정한 소리를!

용건이 뭔데?”


세나의 물음에 몇 번 헛기침을 한 모리사와는 행복을 가득 머금은 목소리로 세나에게 말했다.


-사실은 이번에 내가 승진을 하게 되…….

끊는다.”


들을 가치가 없네. 세나는 손을 뻗어 종료키를 터치하려고 하였다. 다급한 모리사와의 목소리가 짜랑짜랑하게 들려왔다.


-으아아아!!!! 끊지 말고!!! 좀 와서 축하를 해줬으면 좋겠어! 카오루도 온다고 했으니까!

하카제만 가면 됐지, 나는 왜!”

-생각나는 사람이 너뿐인걸!


그 말에 세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세나의 기준에서 모리사와는 솔직히 발이 넓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을 못한다. 세나는 말없이 잠시 동안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얽히는 것은 싫지만, 안 가는 건 또 양심에 찔린다. 세나가 위급할 때 나이츠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신세를 지는 자가 둘인데, 그 둘 중 하나가 모리사와 치아키다.


……. 알았어.”

-오오! 세나 역시 너뿐이다!

그럼 이제 경부보(警部補)가 되는 거야?”

-!

출세했네.”


그렇게 경찰이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대더니. 픽 웃은 세나는 머리카락을 대강 말리며 시계를 보았다. 벌써 12시네.


언젠데?”

-이번 주 금요일이다!

월차 많으니까 쓰고 가야겠네. 알았어. 자세한 시간이랑 장소는 문자로 해줘.”

-알았다, 세나!

꽃 같은 거 들고 가야해?”

-……. 카오루가 들고 오지 않을까?

않을까?”

-모르겠어! 혹시 모르니 부탁한다!


꽃은 많으면 좋으니까! 모리사와와의 통화가 끝난 뒤 세나는 말없이 휴대폰을 보았다. 승진. 승진이라. 다행인거지. 저 바보가.


유우군- 은 승진 같은 거 안 하려나.”


알고는 있다. 유우키 마코토가 모리사와와 비슷한 쪽에서 일을 하는 것을. 팀이 완전히 다를 것이다. 아마 형사부 쪽인 걸로 알고 있는데.

곧 만나게 되니까 그 때 물어보는 걸로 할까. 세나는 머리카락을 드라이기로 건조시키며 거울을 보았다. 흑발에 푸른 눈을 한, 나오 이즈미가 보였다. , 내일 출근하면 머리 또 염색했냐는 소리를 들을 것 같은데.

연구소에 다니는 나오 이즈미는 흑발이고, 세나 이즈미일 때는 염색을 마법으로 강제 제거한다. 그리고 나오 이즈미로 돌아가면 다시 염색을 한다. 계속 검어지는 것이다.


머리카락은 안 상해서 다행이지.”


좀 쓸모없지만, 왕님에게 머리카락 자동 염색하는 마법 같은 걸 만들어 달라 졸라볼까. 쓸모없는 생각을 하며 슬쩍 웃은 세나는 흑색의 머리카락을 조심조심 정리하고는 몸을 일으켜 캐리어백을 열었다.

스오우에게 신세를 지면서 입었던 옷들을 다 끄집어내어 세탁기에 넣고는 세제를 뿌려 세탁을 시작했다. 나오 이즈미는 꽤나 결벽증이라고 남들이 알고 있으니까.

세나 이즈미는 전혀 아닌데.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세나는 꼼꼼하게 거실과 방을 청소하였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로 바닥을 닦고, 일주일 전에 물에 담가두고 나간 머그컵들도 꼼꼼하게 설거지하였다. 미리 어느 정도 치워놓고 나가서 다행이야.

청소를 다 한 뒤 뭐라도 먹을까 싶어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지만 냉장고는 비어있었다. 뭔가를 오래 보관하는 성격도 아닌지라 그때그때 냉장고를 비우는 식사를 하는 세나였다. 그래서인지 나루카미나 리츠가 놀러올 때는 손에 가득이 먹을 것들을 사오는 경우가 빈번하다.


슈퍼에 갔다 와야겠네.”


진짜로 아무것도 없어. 냉장실은 맥주나 호로요이같은 주류 외엔 아무것도 없었고, 냉동실은 아이스크림 두 개 뿐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별로 안 좋아하는 초코맛. 이거, 분명히 쿠마군이 사놓고 간 거야. 나쁜 놈. 다 먹고 가라니까는!

세나는 잘 차려진 옷을 입고 대충 슬리퍼를 신었다. 정말- 안어울리기는 하지만 잘 어울린다. 이 말의 뜻은 두 가지로 나뉜다. 일반인의 눈이면 저렇게 잘생긴 남자가 잘 차려입어서 슬리퍼를 신었네? 그래도 잘 어울려- 지만, 아마 나루카미의 눈이라면…….


[어머!! 이게 뭐야! 이즈미짱 미쳤어?! 이렇게 잘 차려입은 옷에 슬리퍼라니! 삼선 슬리퍼라니!! 슬리퍼로 맞아볼래?!]


이렇게 나오겠지.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귀에서 자동으로 재생되는 기분이다. 세나는 문을 열고 선선히 부는 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날씨 좋네.”


마트까지는 좀 거리가 있어서인지 노래 한곡 선곡해서 들으면 딱이겠는걸? 어찌저찌 이어폰도 챙겨왔겠다, 세나는 휴대폰에 이어폰을 꽂았다. 노래가 들어있긴 한가- 저번에 한번 깨끗하게 밀어버린 기억이 났다. , 위험해. 안 좋은 예감.


아니군


노래는 들어있어.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세나는 산책로 쪽으로 들어서 걸으며 이어폰을 귀에 끼워 넣고는 음악을 켰다. 익숙한 노래였다. 비슷한 곡만 주로 반복해 듣는 세나였다. 어울리지 않게 아이돌 음악이긴 했지만.


[나오씨는 이런 노래 좋아하는구나.]

[올드한 취향이실 줄 알았어요.]

[아이돌이라니. 의외네.]


철벽의 나오 이즈미에게 새로운 발견을 한 것 마냥 이리저리 신기해하던 직장 동료들이었다. 그의 음악취향에 왈가왈부하지는 않았지만, 꽤나 의외였을 것이다. 이 와중에 같은 쿨P라며 손을 잡고 좋아하던 직장 동료도 있었다.


[나오씨가 쿨P라니! 저도에요! 시부야 너무 예쁘지 않나요!]

[……. …….]

[저번 뉴제네 이벤트 센터가 시부야지 않았습니까! 정말, 월차를 내고서라도 가고 싶었는데 왜 저는 첫 주에 월차를 썼는지.]


가까워진 직장 동료도 꽤 된다. 아이돌이란 거, 대단하구나새삼 그때 느낀 것 같다. 역시 아이돌은 위대해.

나이츠의 인원은 다섯. 츠키나가 레오, 세나 이즈미, 사쿠마 리츠, 나루카미 아라시, 스오우 츠카사. 이들 중 현실에 발을 담근 자는 셋뿐이다. 그들 중 가장 사람들 사이에 가장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자는 세나 뿐이고.

츠키나가는 역마살이 낀 자유로운 영혼답게 세계 곳곳을 둘러보고 있었고, 스오우는 계승문제로 한참 집안에서 바쁠 시기다. 리츠는 늘 집에 틀어박혀 책을 집필하느라 정신없고, 나루카미는 가위와 천을 들면 히스테리 게이지가 올라간다.

그나마 저 다섯 중 사람이랑 제대로 부딪히며 사는 건 세나 뿐이다. 영화나 드라마 취향이라고는 올드하기 짝이 없고(영화는 그렇다 쳐도 드라마는 심지어 미드다.), 술자리도 잘 안 나가고, 약간 결벽증이 있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일 하나는 끗발나게 잘해서 꽤 멀어 보이지만- 의외로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것 하나로 확 가까워졌다.


…….”


노래 몇 번 돌려 들었다고 벌써 마트네. 세나는 마트의 장바구니를 들고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끼니를 때울 것들을 담았다. 컵누들, 우유, , 과일들, 주전부리 몇 개. 금세 장바구니가 가득하다.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 하나를 계산대 위에 올리는 것으로 쇼핑을 끝낸 세나는 가볍게 계산을 하고 묵직한 먹거리들을 손에 들고 나머지 손은 갓 뜯은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었다. 소다맛의 아이스크림이 입 안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날씨가 더운 것은 아니지만 볕이 약간 세다.


흥흥흥~


콧소리를 내며 노래를 조곤조곤 부르던 세나는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시선에 뭔가 빛나는 것이 잡혔다.


?”


빨간색과 파랑색의 라이트. 경찰인가? 그것도 한두 대가 아닌 것 같았다. 세나는 뭐지 싶어 발걸음을 그쪽으로 돌렸다. 약간의 호기심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평상시의 세나 이즈미라면 뭐래- 하고는 그냥 지나가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약간 궁금한 것이다. 자신이 스오우의 저택에서 쉬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지금은 무슨 일인지.


저리 가십시오!”

출입엄금입니다!”


웅성대는 소리와 울음소리, 그리고 경찰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얽힌다. 세나는 이어폰을 귀에서 빼고, 아이스크림을 한 입 크게 베어 물며 가까이 다가갔다. 뭐지. 경찰이 흰 천으로 누군가를 덮는 걸 보니 좋은 일은 전혀 아니다. 공시소 차량도 있었다. 세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주위의 학생들이 소곤대며 대화하는 것이 들린다.


들었어? 동부 트럭살인마래.”

, 연쇄살인범?”

무서워. 왜 하필…….”


연쇄살인? 그런 게 있었나. 세나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고는 다시 뒤를 돌아 집 쪽으로 발을 내딛었다. 세상살이 흉흉해졌어. 엄청나게. 다른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생명을 앗는다는 건 범죄행위인데, 그걸 연속적으로 한다고? 무슨 악감정인거야, 그 녀석은.


!”


이런- 손에 약간 힘을 빼고 있다 사람과 부딪혀 버렸다. 마트에서 장을 보던 것들이 손에서 빠져나와 와르르 구르는 것이. 이런. 세나는 인상을 구긴 채 부딪힌 당사자를 바라보았…….


정말 죄송합니다!”


너무 급하게 달리다 이런 일이-! 부딪힌 남자는 울상이 되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던 젤리봉지를 주워 비닐에 담았다. 세나는 얼어버린 채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여기서-

세나는 아득해지는 기분에 이를 세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남자는 줍다 말고 세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

괜찮으세요?”


푸른색 뿔테 안경. 정말 다시 봐도 끔찍이 안 어울리네


-

쇼핑나갈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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