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Zero
마법사와 그대 본문
세나는 무릎을 굽혀 남자에게서 봉지를 가져와 주섬주섬 다시 담았다. 잠깐 힘을 뺀 찰나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남자가 마지막으로 건넨 식빵 봉지를 받아들은 세나는 몸을 느릿느릿 일으켰다. 남자는 허리 숙여 다시 한 번 세나에게 사과를 했다.
“저, 혹시 이 근방에 CCTV 위치 좀 알 수 있을까요?”
“네?”
“아아-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경시청 소속 형사부 유우키 마코토라고 합니다!”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어 신원을 증명한 유우키는 눈을 도르륵 굴리며 세나를 바라보았다. 세나는 그런 유우키를 빤히 바라보다 무릎들 툭툭 털고 손을 뻗었다.
“지금 당신이 선 자리에서 2시 방향으로 있는 가로등 옆에 하나. 그리고 6시 방향으로 하나. 10시 방향에는 가로등은 없지만, 정면으로 주차된 차가 일주일이 넘도록 움직이지 않는데, 그 차 블랙박스가 있을 거예요. 확인해보세요.”
세나는 유우키를 바라보며 이해되었냐는 눈짓을 하였다. 유우키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메모지를 꺼내 펜으로 휘갈겨 쓰고 있었다.
“사건현장에서 아까 정리하고 있던 것 같은데, 빨리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네- 네? 네?! 아, 네! 가, 감사합니다!”
뻘뻘거리며 안경을 고쳐 쓴 유우키는 세나에게 인사를 하고는 부지런히 사건현장으로 달려갔다. 유우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세나는 한참 말이 없었다.
“이렇게 만나기는…….”
정말 싫었는데. 차라리 모리사와의 승진식 즈음에 만나는 게 어떠했을까- 라는 생각이 와장창 부서졌다. 세나는 이마를 짚으며 한참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가야지…….”
세나는 비닐봉지를 들고 한숨을 살짝 내쉬며 발길을 돌렸다. 기쁘기는 하다. 유우군을 만났으니까. 하지만, 기쁜 것도 잠시다. 하필 이렇게 만나게 되면-
귀에 다시 이어폰을 꽂고는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걸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이상하게 약간 먼 기분이다. 아까와 달리 변해버린 바람을 맞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귀 안쪽으로 울리듯이 들려오는 노래에 바깥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봐요!”
확- 하고 팔을 그대로 잡아당겨져 발길이 반대쪽으로 돌려졌다. 세나는 어? 하는 사이 시선이 반대가 되자 벙찐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아―”
유우군- 왜지? 왜 여기 있지? 세나는 멍청히 자신의 시선 정면의 유우키를 바라보았다. 오른쪽 이어폰을 귀에서 빼자 유우키의 헐떡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저기……. 그, 아―”
“진정하세요.”
얼마나 뛰어온 거야. 세나는 유우키를 바라보다 비닐봉지 안에서 음료 하나를 꺼내 건네었다.
“드세요.”
“가, 감사합― 아, 이게 아닌데―!”
“?”
“저, 저기―!”
유우키는 어물어물하다 한 손으로 음료를 받았다. 그리고는 나머지 손으로 세나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 한동안 이쪽으로는 통행이 좀 힘들어질 거예요! 그, 그래서- 혹시나 이런데 돌아다니실 때 주의하시고…….”
“…….”
그 말 하려고 돌아온 건가? 세나는 멍청하니 유우키를 바라보았다. 눈가가 새빨개진 게 보였다. 유우군은 늘 부끄러우면 눈가가 먼저 빨갛게 달아오르고는 했으니까.
“이쪽으로 연쇄살인마가 돌아다닐지도 모르니까 밤에 다니는 건 주의해주세요-!”
유우키의 커다란 목소리가 귓전에 쏙- 들어온다. 세나는 얼어붙은 채로 유우키를 바라보았다. 내 귀가 잘못된 건 아닌 것 같은데. 아-
“…….”
“…….”
“……. 저기…?”
한참동안 말이 없자 유우키는 조심히 세나를 응시하며 불러보았다. 세나는 그 순간- 와르르 산사태처럼 몰려오는 기쁨에 눈꼬리를 확 휘며 웃어버렸다.
“아하하하―”
심장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두근거린다. 기뻐. 너무 기뻐. 우린, 지금 처음 만난 건데- 왕님의 마법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처럼 너와 나를 이어주고 있어. 기뻐. 행복해. 꿈은 아니겠지?
“그거 말하려고 온 거에요?”
“네? 아, 에―”
“하하―”
마구 벅차오르는 기분인걸. 세나는 계속 새어나오는 웃음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행복은 급작스럽게 눈앞으로 다가온다고 하더니, 진짜인건가.
세나는 유우키가 잡은 손을 바라보다 자신의 손에 힘을 줘 유우키의 손을 맞잡았다.
“고마워요.”
“네? 아, 에? 헤?”
“고맙다고요.”
이렇게 친절하게 와서 조심하라고 그럴 줄은 생각도 못 했던지라. 세나는 웃으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 어쩌면 좋아. 행복이 이렇게 가볍게 손에 넣어지는 건 줄 생각 못했는데.
세나 이즈미의 인생은 베드엔딩이 태반이었고, 대부분은 죽음이 굉장히 나빴다. 딱 한 번의 자살과 수두룩한 타살 속에서 세나 이즈미는 마법사로서의 자신의 몸을 수많은 스페어들로 교체하며 한 세기 이상을 살아왔다.
저 딱 한 번의, 잊지 못할 자살은 유우키 마코토로 인한 것이었다. 하카제 카오루가 보관하고 있던 스페어로 깨어난 뒤 삐걱대는 몸을 이끈 채 욕조에 누워 한참을 울었다. 그때의 고통을 잠시동안 망각할 정도로, 세나는 지금이 즐거워졌다.
“나오 이즈미(名緖 泉).”
“네?”
“내 이름이에요.”
이름,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으니까. 세나는 웃으면서 만들어진 지금의 이름을 내뱉었다. 혀를 살포시 물 듯 내어 웃는 것이, 유우키의 시선에 닿는다.
“유, 유우키 마코토입니다.”
“그건 아까 들었죠.”
“아, 그…….”
허둥대는 것이, 변하지 않았다. 자신의 앞에서도- 늘 실수를 연발하고는 했으니까. 세나는 픽 웃고는 한걸음 내어 유우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지금 내가 명함이 없네요.”
넌지시- 라고 하기에는 머쓱할 정도로 대범한 돌직구였다. 유우키는 눈을 한 바퀴 도르륵 굴렸다. 녹색의 눈이 굴러가는 것이 세나의 눈에 들어오자 웃음을 참기 어려웠는지, 픽 웃어버렸다.
“안, 줄 거예요?”
“네? 아, 에? 핫- 자, 잠시-!”
말을 해야 알아채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유우키는 주섬주섬 명함을 꺼내 세나에게 건네주었다. 유우키 마코토. 경시청 형사부 2팀.
피곤한 일을 하고 있네. 세나는 명함을 보다 손을 유우키에게 내밀었다.
“아까, 펜 있었죠?”
“네?”
“펜이요.”
“네- 아, 여기.”
유우키는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세나에게 내밀었다. 세나는 가볍게 펜을 찰칵이고는 자신의 손등 위로 스윽 그었다. 잘 나오는지 확인을 하려는 것 같았다. 검은색의 선이 세나의 손등 위로 새겨진다. 잘 나오네. 그리고 세나는 유우키의 명함 위에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쓱쓱 썼다. 090을 시작으로 나머지 8자리를 쓴 세나는 그대로 그걸 펜과 함께 유우키에게 내밀었다.
“여기.”
“……. 네?”
“진동이어서 전화 잘 안 받고, 문자도 한두 시간 뒤에 확인하니까 별로 기대는 하지 말아요.”
“제 번호는…….”
“외웠어요.”
오래 살면 암기력 하나는 끝내주는 법이지. 세나는 픽 웃으면서 유우키에게서 조심스레 한걸음 물러났다.
“사건해결, 잘 해요.”
연쇄살인이라고 하던데. 세나의 말에 유우키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세나는 그런 유우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비닐봉지에서 주섬주섬 젤리봉지 하나를 꺼내어 내밀었다.
“?”
“먹어요.”
단거 먹으면 머리 회전 빨라진다잖아요. 세나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여 유우키를 올려다보는 듯이 바라보았다. 슬몃 웃는 것이, 유우키의 눈 끝에 자꾸 매달리는 것 같았다.
“가, 감사합니다.”
“- 힘내요.”
세나는 웃으면서 걸음을 돌려 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 세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유우키는 시선을 내려 자신의 명함 위에 써진 휴대폰 번호를 바라보았다.
작업 많이 걸어본 사람인가- 라는 생각을 하기엔, 엄청 철벽같아 보였다. 유우키는 사건현장이 있던 곳으로 몸을 틀어 느리게 걸었다.
시간이-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무슨 생각으로 증거사진을 찍다말고 남에게 넘겨 달려갔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늦어요.”
“미, 미안해요, 유키나가씨.”
“뭐하느라 이렇게 늦었어요? 증거사진 다 찍었고. 시체는 공시소로 간지 반년 넘은 기분이에요.”
“그, 그게…….”
“하아- 전 분명 사이버 쪽 아니었어요? 왜 전 여기서 이렇게 있는 건지.”
“사, 사람이 부족해서…….”
“이거 큰 사건 아니에요?”
형사부도 아닌 사람까지 충당해야 할 정도였던가. 유우키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남자, 유키나가 세이지(雪永 聖司)는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짙게 내려온 다크서클은 이 남자가 수면이 굉장히 부족하다는 것을 여실이 보여주고 있었다. 한숨을 쉰 그는 유우키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오전부터 살인사건인거, 안 반가워요.”
“그건 저도 그래요.”
아마 먼저 키를 잡은 팀은 형사 2팀이지만, 관할권은 형사부 전체로 넘어갈 것이다. 동부 트럭 연쇄살인마는 도쿄도 내에서 광고에 가까운 수배범 중 하나다. 너무 간만에 나타나서인지 다들 정신이 없을 것이다. 유우키도 처음에 전화를 받아 출동할 때는 아닌 줄 알았다.
동부 트럭 연쇄살인마.
자신이 형사부에 소속되기 한참 전부터 꾸준히 오르내리는 살인마다. 도쿄 내에서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죽이며, 시체의 배 위에 피로 트럭을 형상하는 그림을 그려놓는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전쟁일 텐데.”
“죽인 사람만 열손가락 지나간 거 알아요.”
저 여자가 이제 스무 손가락 바로 앞까지 왔다는 것도요. 그 말에 유우키는 입을 닫았다. 잡히지를 않는다. 누군가의 죽음이 한 사람에 의해 비롯되었다. 이젠 단수가 아니라 복수가 되었고, 생각 이상으로 무기력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되어 돌아온다.
“……. 음료 마실래요?”
유우키는 세나에게 받은 음료를 유키나가에게 내밀었다. 목이 탔는지 받아 조심히 캔을 딴 그는 목울대를 울리며 꿀꺽꿀꺽 음료를 마셨다.
“하필 와도 이때.”
“그러게요.”
둘은 한숨을 쉬었다. 유키나가의 휴대폰이 울렸다. 슬슬 복귀하면 되는 건가. 하늘이시여. 이 상황을 기다렸지. 유키나가는 전화를 귀에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예, 유키나가입니다.”
통화를 하는 것을 보며 유우키는 세나에게 받은 젤리를 살짝 뜯었다. 꽤 맛있다고 정평이 나 있는 젤리다. 최근 들어 히다카가 입에 물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톡톡 손바닥 위로 몇 개를 털어 입에 대려는 순간 유키나가의 목소리가 고막 안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동부 트럭 시체가 한 구 더라고요?”
입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젤리들은 무자비하게 바닥으로 낙하했다.
이례 없는 경우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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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작업하러 고고씽>///<
유키나가 세이지는 닭죽(SANO)님께서 제 세계관에 얹어주신 캐릭터입니다. 빠른 협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