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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Zero

황제와 마법사 본문

Enst/황제와 마법사 1부

황제와 마법사

0117 2016. 7. 5. 23:09


세상에 끝이 없는 게임이라는 것은 없다. 세나 이즈미가 오랜 시간을 살며 배운 것은, 게임은 언젠가 끝이 나고 그 게임이 끝이 나면 또 다른 게임을 꺼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오랜 시간을 살며 하나 더 배운 것이 있다면-

이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이상.

불멸의 시간을 선물받은 자들은 늘 게임을 한다. 텐쇼인 에이치의 손바닥 위에서 말이다.


[내가 죽으면, 게임이 끝나.]

[허. 죽지도 않으면서 헛소리를.]

[음- 그럼-]


텐쇼인이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나 조용히 세나에게 다가왔다.

실은, 그 다음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왕님은-"


세나는 몸을 천천히 일으켜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리츠의 귀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고꾸라져 정신을 잃은 리츠를 보던 세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아수라장이다. 자신의 꽃이 너무 붉은 색이 되어버렸다. 이런 색은 좋아하지 않아. 세나는 손목을 한번 크게 휘둘렀다. 꽃들이 빠른 속도로 시드는 것을 보며 몸을 테이블에서 내렸다.


"어디로 갔는지 몰라."


알 수 없어. 나는, 홀로 다시 찾으러 가야해. 너에게 할애할 시간도 사라질 것이고. 찾아와야 해. 아니면 기다려야 하거든. 왕님이 죽어서 내가 가진 스페어에서 깨어날 때까지. 발 끝에 꽃들이 밟힌다. 피들이 뭉글하게 새어나와 세나의 발바닥을 자작이 적신다.

어디에 있는걸까. 나는 모르겠어. 너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 나는 또 너희의 죽음을 볼 수 없어. 알잖아. 그때도. 쿠마군은 제일 먼저 죽어버렸지. 나루군은 텐쇼인의 칼에 죽어버렸고. 나도. 죽어버렸지.

카사군은- 한 번도 죽음을 본 적 없어. 실은 보고 싶지 않아. 죽는 건 나로 족해. 


"..."


세나는 리츠를 바라보았다. 그때. 텐쇼인의 총으로 자신이 죽은 후, 하카제의 품에서 깨어났다. 텐쇼인의 손이 닿지 않는 사쿠마 레이의 권속, 하카제 카오루가 숨겨둔 지하. 자신의 스페어. 하나뿐이었다. 텐쇼인의 눈을 피해 훼손을 당하지 않았다. 기적같이.

나루카미도 깨어났을 것이다. 리츠는- 아니지만. 그 때 리츠가 자신들과 같지 않음을 원망하였다. 기다림의 순간은 길고 험하다. 하카제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왕님을 지키지 못한 무력감에. 그리고 모든 것을 잃은 슬픔에.

그리고 또 이 상황은 반복된다. 리츠가 죽으면 돌아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반년


"너무 길어, 쿠마군."


입술이 몇 번 벌려졌다 다물어지기를 반복하였다. 어떤 말을 해야할 지 골라야 하는데. 골라지지 않아. 세나는 맨발로 리츠에게 걸어갔다. 땅이- 붉었다. 스오우의 피가 너무 많이. 그리고 리츠의 피가 너무 많이.


"왕님은. 아마도."


손이 다시 비었다. 리츠를 한번 손으로 건드려 보았다. 움직이지 않는다. 한번 더 건드려 보았다. 움직이지 않는다.


"..."


쿠마군. 들려? 들려? 내 목소리가. 들려? 또 손이 비었어. 어떻게 하지? 세나의 푸른 눈이 먹먹이 차올랐다. 아. 또. 나는 너무 바보야. 욕심쟁이야. 내 사랑을 그렇게 잃어놓고 또 잃을 위기야.


"쿠마군. 일어나봐."


세나는 다시 리츠를 건드려 보았다. 눈이 떠지지 않는다. 예쁜 공주님이 죽은 것 같아. 세나는 울어버렸다. 왕님. 나의 왕님. 츠키나가. 레오. 미안해. 다시 울어버려서. 나의 슬픔은 너의 슬픔이 되고, 나는 너를 구하러 가야하는데. 멈춰버렸어.


"-"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인어공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바란 것은 이런 절망이 아니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잠깐, 단추를 잘못 잠갔으니, 한번 풀어보자.

어려운 문제야. 세나 이즈미는 울면서 휴대폰을 꺼내었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야할 지 알고 있는 듯이 번호를 입력하고는 하나에는 sos 문자를, 그리고 다른 하나는 통화를- 전화를 걸어 귀에 대었다.


오랜 수신음. 당연할지도 몰라. 세나는 끅끅거리며 울면서도 전화를 끊지 않았다. 이윽고 캅캅이 가라앉은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누군고?]

"... 레이."

[... 세나?]


목소리를 알아들은 건지 남자의 목소리가 이리저리 쇳소리를 내며 귀를 울렸다. 세나는 목소리를 애써 내려고 안간힘을 쓰며 이곳의 위치를 말해주었다. 얼른 와달라는 듯이. 간절함을 목소리에 내걸어서.


"여기는-"


E&M


무언가를 잊은 기분이 들었다. 리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 결국은 여기서 눈을 뜨게 되네.

분명 찾는 것을 놓쳤을 것이다.

리츠는 멍하니 서 있다 느리게 발을 움직였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보았다. 시간이 넘치는 것 같이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발걸음이었다. 뛸 이유가 없다. 체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


꽤 걸은 것 같다. 시선을 들어 위를 바라보면, 무언가 반짝이는- 아, 별가루들 비슷한 것이 붉은 시야 안으로 빠르게 파고든다.

아름다운 보석같은 빛의 향연. 그 황홀한 축제의 장. 리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절경이야. 절경. 혼자 이 축제를 즐긴다. 함께 있을 누군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없다.


"셋짱."


아냐. 음. 음. 어울리지 않는걸. 리츠는 약간 어색하고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보일리 없지만) 조심히 입을 열어보았다.


"이즈미."


아, 부끄러워. 마-군을 마오-라고 부르는 것 이상으로 부끄럽잖아. 리츠는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다 같이 보면 좋을 절경인데. 왕님도. 셋짱도. 낫짱도. 스-짱도. 다같이. 우리 다 같이.


"나중에 같이 오면 좋겠다."

"어찌 데려오려고 그러누?"


기분나쁜 목소리. 사랑을 담뿍이 담은 다정한 목소리는 리츠의 귀에는 그저 기분 나쁜 소리로만 들릴 뿐이었다. 듣고싶지 않은 불청객이 오혔다. 벚꽃이 내리는 우산을 들고 맵시있는 정장을 입은 레이는 누가 봐도 반할 만큼 잘 어울렸다.


"네 세계에는 나 외엔 들어오지 못하잖니."

"..."


세나 이즈미의 '정원', 나루카미 아라시의 '의상실', 츠키나가 레오의 '성'처럼 마법으로 구현된 공간은 누군가를 들일 수 있다. 인간도 말이다. 하지만, 사쿠마 리츠의 '머릿속'과 스오우 츠카사의 '소금물 방'은 누군가가 들어오려면 같은 자여야 한다.

그래. 리츠처럼 '마물'이 되던가, 스오우처럼 '술사'가 되던가.


"리츠."

"나가."


난 형님을 초청한 기억이 없거든. 북풍한설 시베리아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목소리에도 레이는 허허로이 웃으면서 리츠의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쓰겠니?"

"필요없어."


리츠는 볼에 공기를 불어넣으며 레이의 시선을 외면하였다. 그럼에도 레이는 벚꽃 우산을 리츠의 머리 위에 가져다 대며 웃었다. 비가 오지는 않지만, 별들이 오는구나. 레이는 조용하게 웃으며 리츠를 바라보았다.


"많이 다쳤더구나."

"..."

"어찌나 울면서 나를 찾던지, 자다 말고 뛰쳐나왔지."


츠키나가가 없는 '나이츠'는 역시 2% 부족하구나. 레이와 리츠의 붉은 시선이 마주하였다. 리츠의 눈은 약간 탁했다. 피가 공기와 만나 말라붙어 버석해진 것 같은, 그런 색이었다.


"막내의 짓이더구나."

"스-짱은 나중에 혼내줄 거야."

"그래."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하늘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리츠의 세계는 레이도 좋아한다. 자주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지만, 형제가 나란히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레이는 이곳을 '사랑'한다.


"낫짱은?"

"아아- 왔더구나."

"셋짱은?"

"일어나지 그러니."

"... 싫어."


더 잘거야. 리츠의 말은 단호하였다.


"이곳이 더 좋아."


편하고. 혼자 있는 것이 외롭지만. 그거 빼면 여긴 좋아. 리츠는 들릴듯 말듯 중얼거리며 우산 위의 분홍 꽃잎들을 바라보았다.


"리츠."

"응."

"어리광 부리는 네가, 이 형은 정말 좋아. 언제 볼까 싶거든."

"..."

"하지만, 오늘은 돌아가자꾸나."


간절함이 절망으로 바뀌는 것은 싫잖니. 레이는 리츠에게 왼손을 조심히 내밀었다. 리츠는 말 없이 그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망설이고 있구나, 어린 나의 동생아.


"다들- 기다리고 있단다."


다정한 목소리. 리츠는 저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는 것이 아주 어린 옛날의 기쁨 중 하나였다는 걸 생각했다. 눈을 깜빡이며 레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어 레이의 손을 맞잡았다.


"착하구나."

"착각하지 마."


왕님을 찾아야 해서. 그래서 깨어나는 것일 뿐이야. 리츠는 나머지 손은 뻗어 우산의 벚꽃잎을 툭툭 쳤다. 접어. 리츠의 말에 레이는 웃으며 버튼을 눌렀다. 퐁- 우산이 접힌다.


"그런데, 나 지금 어디에 있어?"

"응?"


아아- 레이는 웃었다. 그리고는 리츠의 옆으로 한걸음 멀어지며 입을 열었다. 응? 뭐라고?


"들리지 않아, 형님."

"-"


뭐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그 순간. 별길의 품에서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눈을 뜨자 어둠이 엄습해왔다.


"... 하."


에라이. 리츠는 인상을 와자작 찡그렸다. 관짝 안이었다. 뭐라고 하는지 안 들렸지만 '내 것'이라고는 알아들었었다. 그래. 본인의 것. 본인의 관짝 안이다 이거지. 리츠는 한숨을 가볍게 뱉어내며 관을 뚜껑을 열었다. 끼이익- 묵직한 소리와 함께 어두운 빛이 각막으로 쏟아져 내렸다.


"칫-"


리츠는 눈쌀을 찌푸리며 허리에 힘을 줘 반쯤 일어났다. 그리고는 옷을 들춰보았다. 스오우의 공격으로 인한 상처는 온데간데 없었다. 밋밋하고 하얀 배를 바라보던 리츠는 고개를 들어 두리번 두리번 좌우를 보았다. 아무도 없네. 뭐지. 그리고 시선을 내려 관 옆을 보았다.


"..."


딱 봐도 어깨가 결릴 것 같아. 쓸 데 없이 이런거나 생각하고 자빠져서는. 리츤느 픽 웃으며 관에서 나오지 않은 채 손을 뻗었다.


"셋짱-"


이런데서 자는거 아니라고 본인이 본인의 입으로 그러지 않았나. 피곤하다고 맨바닥에 누워 잘 때마다 잔소리를 따따따 들은 것이 생각나 리츠는 입을 다물었다.

...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리츠는 몸을 세나에게 가까이 숙여 검지를 세나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아주아주 엷지만 따스한 숨길이 손가락 첫마디에 포옥 얹어졌다.


"후우..."



-


이게 몇년만인 기분이지...(아득킹오브아득)

언젠가 수정을 할 거지만 저 세나 부분 저도 마음에 안듭니다...(딥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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