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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Zero

리츠마오) 본문

Enst/外

리츠마오)

0117 2016. 7. 10. 02:02


금방이라도 비를 한데 쏟아부을 것 같은 날씨다. 이사라 마오는 인상을 구기며 키보드를 두들겼다. 다닥이는 시끄러운 키보드의 소리에 귀가 따가울 정도로 이사라는 대단히 예민했다. 바지런히 움직이는 손가락에 유우키는 이사라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늘 이맘때 즈음이면 이사라의 분위기는 바뀌곤 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 더해지면 더욱이.


7월. 더위가 어깨 위에 올라타 기승을 부릴 때.

이사라는 이맘 때-


리츠마오) 천둥치는 밤

[앙상블 스타즈 전력 60분 7월 2주차]


"사-리..."

"말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하는 이사라는 살벌하기까지 하다. 아케호시는 입을 쭈우욱 내밀며 조심조심 이사라에게 다가갔다. 이사라의 작업은 멀은 것 같다. 이번 사건 종료 보고서 담당은 이사라의 차례였다. 사무적이다 못해 지금 이 계절이 여름인지 겨울인지 착각할 만큼 꽁꽁 얼어붙은 이사라의 목소리는 북풍한설을 넘어 남극에 퐁- 하고 떨어진 것 같은 기분까지 선사하고 잇었다.


"커피 안 마실래?"

"마셨어."

"그럼 간식같은거 가져올까?"

"아니."

"... 아직 멀었어?"

"이제 20%정도 남았어."


20%라고... 이사라의 보고서창을 흘끗 본 아케호시는 눈을 꽈악 감으며 고개를 돌려 유우키와 히다카에게 양 손을 들어 검지를 교차하였다. 아 망했어요. 페이지는 30페이지가 넘어있었다. 이런데 20%라면 이사라는 밤을 샐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지금 이 시각, 10시 22분을 지나가고 있다. 신이시여. 차라리 정전... 아냐, 여기서 정전이면 우린 사-리에게 살해당할지도 몰라!


"그, 그럼- 나 잠깐 에어컨 좀 틀께...?"

"마음대로."


이사라의 대답에 아케호시는 살금살금 에어컨 앞으로 걸어가 작동 버튼을 꾸우욱 눌렀다. 띠로링~ 맑은 음을 내며 시원한 바람이 사무실 안을 가득이 메웠다. 시원한 바람에 약간 기분이 나아지길 바라며 히다카는 곧 자신들에게 올지도 모를 사건파일들을 훑었다.


"..."


사무적으로 두들기는 키보드 소리. 딸각이는 마우스 소리. 그 외에는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외에는 숨소리조차도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냉랭한 분위기에 아케호시와 유우키는 울 듯 한 표정으로 채팅을 하며(차마 일이 끝나 지금 퇴근했다가는 이사라의 눈빛에 죽을지도 모를 것이라도 생각했다) 속으로 엉엉 울고 있었다.

그 순간, 시끄러운 벨소리가 정적으로 가득한 공간에 불청객처럼 들이닥치며 울렸다. 사무실 안을 메우는 달콤하면서도 비트있는 세레나데. 이사라의 손이 멈췄다. 나머지 셋의 시선이 빠른 속도로 이사라의 휴대폰에 향했다. 누구냐. 어떤 미친 눈치없는 XX가 이 시간에 전화질이죠? 아 저 휴대폰의 명복을 빌어야 하는건가. 이사라는 휴대폰의 액정에 들어온 수신인의 이름을 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허."


기막히다는 목소리로 딱 한마디 하고는 전원을 꺼버렸다. 완전히. Good Bye. 셋은 고개를 돌렸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타이밍은 최악의 타이밍이었고, 용건이 얼마나 급하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용건보다 사건 종료 보고서와 이사라의 기분 상태가 더 중요한 겁니다.

다시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가 공기 위에 섞였다. 숨쉬는 것도 고통스러워질 때 즈음, 이사라는 보고서를 끝냈다.


"호쿠토. 네쪽으로 보냈어."

"아, 응. 월요일에 와서 확인할께. 수고 많았어."


퇴근하자. 히다카의 말에 이사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유우키와 아케호시는 안도한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손목의 시계를 내려다 보았다. 아직 금요일이다. 금요일. 물론, 10분 뒤면 토요일이 되지만.


"푹 쉬어."

"조심해서 들어가, 사-리."

"응. 마코토, 차 끌고왔댔지?"

"어어. 아케호시군 데려다 주고 가려고."


그럼 난 알아서 들어갈께. 이사라는 차키를 흔들며 셋을 보았다. 쿠르릉대는 소리가 들리자 넷은 황급히 차로 대피하였다. 강수확률 80%. 일기예보가 틀리기를 바랬지만, 그런건 사치였다. 이사라는 시동을 걸고 차 두대가 나가는 걸 보며 느리게 엑셀을 밟았다.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차를 몰며 집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는 거리를 누볐다. 새벽에 가까워진 도로는 매우 조용했다. 집에 가서 술이나 한 잔 할까. 따뜻한 뱅쇼가 마시고 싶어졌다. 더워 돌아가시겠는데 왜 그런 거나 생각나는 건지. 집에 어지간한 재료는 다 있다. 와인에, 과일에, 시나몬까지.

평소 와인을 마시는 것 보다는 사케나 양주를 더 즐겨마시지만, 왜인지 어느날 집에 와인이 있는 것을 알았다.

투투둑- 투두둑-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려는 건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차의 유리를 빠르게 강타한다. 부을 기세인 건지. 쿠르릉대는 소리를 한층 더 심해졌다. 금방이라고 벼락이 떨어질 것 같...

콰과광!!!!


"후우-"


역시. 한숨을 크게 쉬면서 핸들을 돌려 좌회전. 그리고 곧 집이다. 주차하고 빠르게 들어간다고 해도 왠지 흠뻑 젖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를 어쩌지. 차에 좀 있다가 비가 한 숨 돌릴 때 즈음에 들어갈까. 주차를 하고는 시동을 끄고 휴대폰을 들었다. 꺼버린 휴대폰에 어른히 이사라 본인이 비친다.

괜히 껐나 싶지만, 예민한 상태에서 전화를 받으면 분명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꺼버렸다. 내가 왜 이러는지 알고 있지만 이해해주지 않을 것임을, 이사라 본인은 아주 잘 안다. 그래도, 지금은 통화하고 싶지 않았다. 문자도 보고싶지 않아. 전화는 더더욱 받고 싶지 않아.

네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휴대폰을 켜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두자.


"아, 좀 나아졌다."


약간 숨이라도 돌리려는 건지 빗줄기가 약해졌다. 이때를 틈타 이사라는 빠르게 차 문을 열고 문 앞으로 뛰어갔다. 으아으아으아아아!!! 황급히 오토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며 차 문을 잠갔다. 삑삑- 전조등이 빛을 발하며 잠겼다는 신호를 보내자 안도하며 문을 닫-

콰아앙-!!

시끄러운 소리가 고막을 치고 지나갔다. 귀가 멍멍하다. 가까이서 친 것 같았다.


"하이고. 다시 쏟아지려나보네."


타이밍이 좋았다. 이사라는 허허로이 웃으면서 문을 잠그고는 신발을 벗으면서 현관을 지나 에어컨을 키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시원한 바람. 오렌지와 사과를 냉장고에서 꺼내었다. 레몬도 있네. 나이스! 자취 경력이 몇 년인가. 이사라는 과일들을 빠득빠드득 씻고 칼을 들어 얇게 썰었다. 그리고는 밀크팬을 꺼내(별 쓸 데 없을거라고 믿었는데 입주 축하선물로 스바루가 준 걸 잘 쓰고 있다. 땡큐 스바루군!) 과일들을 넣었다.


"어디갔지..."


와인. 와인. 왜인지 모르겠지만 집에 있는 와...


"찾았다-"


이름이 뭐니, 넌. 이사라는 미간을 약간 찡그리면서 라벨에 씌여있는 영어를 조심히 읽어보았다.


"피네스트... 프라파..."


뭐여 이건... Finest Frappato(파이니스트 프라파토)라고 쓰여있었다. 이사라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와인을 따 꼴꼴꼴 밀크팬에 과일들이 잠길 정도로 자작이 부었다.


"근데 이게 어디서 난 거지."


본인이 산 것은 확실하게 아니다. 절대로. 절대로. 네버. 이사라는 와인을 살 돈이면 조금 더 모아서 양주을 살 것임을 보증한다. 히다카는 사케취향, 아케호시는 본인이랑 같은 취향. 유우키는 가벼운 츄하이. 누구지. 누가 준 거지.


[맛있대. 가져.]


아 이런.


"하."


불현듯, 누가 준 건지 생각이 났다. 이사라는 인상을 대번에 구겼다. 자신이 지금 피하고 있는 당사자. 그가 준 것이었다. 술에 약해서인지 생기는 술마다 족족 이사라를 주곤 한다. 아 왜 하필 지금 생각나니. 차라리 생각이라도 나지 말 것을.

한숨을 쉬며 불을 켜고 시나몬과 정향, 그리고 설탕을 넣고 끓게 두며 이사라는 머리를 짚었다. 3월은 꽃으로 고통받고, 7월은 그에게 고통받는다. 인연을 끊지 않는 한. 자신이 죽지 않는 한. 계속 고통받을 것이다.


7월 초입. 비가 거세게 내리는 날.

이사라 마오는 이별당했다. 정확하게 정정한다. 이별했다. 본인 입으로 먼저 꺼냈으니 당했다는 수동형은 어울리지 않아.


[본인이 견디지 못해서 헤어진 주제에 끔찍하게 고통받는거 아냐?]


녹안의 꼬마는 아이스크림을 먹다 기막히다는 눈으로 이사라를 보고는 입을 열어 그를 힐난했다. 넌 너무 나를 잘 알아, 빌어먹을 꼬마. 이사라는 고개를 슬쩍 들어 와인이 보글보글 끓는 것을 보았다. 향 하나는 좋네. 맛있다더니.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


누구지? 이 시간에 전화 할 사람이 있나. 이사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음날로 넘어가 새벽을 향해 느리게 가는 시간 속에서 집의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이사라는 전화기에 가까이 다가가보았다.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은 별로 없다. 다들 자고 있을 시간. 꿈나라를 해메일 시간. 한 명 빼고.

그냥 전화선을 뽑아버릴까. 받을까. 아직, 자신이 없었다. 네 목소리를 들을 자신이. 이사라는 전화벨이 울리는 것을 들으며 가스레인지의 불을 껐다. 받아볼까. 무슨 말을 하지. 자다 깼어? 왜 전화했어?

삑-

자동응답기로 넘어갔다. 이사라 마오입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그리고 난 뒤에 들려오는 목소리.


[안 자는거 알아, 마-군. 잠깐 통화하자.]


뚝- 끊겼다. 이사라는 뱅쇼를 머그잔에 부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넌 나를 너무 잘 알아. 나도 너를 너무 잘 알지만. 이사라는 한숨이 멈추지 않는 자신을 원망하며 호로록 뱅쇼를 한모금 마셨다. 맛있다.

휴대폰을 켰다. 삐로롱- Hello-! 그리고 켜지는 화면. 문자도 없다. 부재중 단 한건. 아까 자신이 꺼버린 전화로 인한 것 하나.

익숙한 번호를 입력하였다. 너무 많이 입력해봐서 머리보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여 알아서 치는 번호.


"어쩌지."


망설여진다. 에어컨의 찬 바람을 맞으며 베란다 유리를 등지고 앉은 이사라는 뱅쇼를 한잔 더 마시고는.

번개가 내리치며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았다. 내 지금 상황도 저 비처럼 씻겨내려가면 좋겠다. 

이사라는 말 없이 휴대폰의 액정을 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전혀 모르겠어. 그냥 평상시처럼 굴면 되는걸까. 7월의 나는 나와 네가 너무 싫은데.

구질구질하게 헤어졌다고 생각한다. 못 견뎌서. 서로의 맞지 않는 생활에 견디지 못해서 헤어져달라고 그랬고, 헤어졌고, 집을 옮겼고, 울었고, 후회했고. 깔쌈할 것 같았겠지. 전혀 아니었다. 7월만 되면 이사라의 기분상태는 롤러코스터가 아니라 자이로드롭 수준으로 들쑥날쑥했고, 불안정한 상태의 이사라는 비만 오면 예민함이 하늘을 찔렀다.


천둥이 자꾸 친다. 정전이라도 일어났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다. 그럴 수 없겠지. 이사라는 바닥에 머그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뒷통수로 베란다의 유리를 퍽- 쳤다. 얼얼하도록.

통화. 눌러버렸다.



-

언젠가 올 시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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