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Zero
에이레오) 7월 6일 본문
간만에 밖으로 나서는 것이다.
츠키나가 레오에게 밖은, 그저 불필요한 곳일 뿐이겠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츠키나가는 창문 밖으로 펼쳐진 광경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며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누군가가 하는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사운드. 고막에 약간 문제가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틀 정도의 사운드에 바로 옆에 앉은 남자는 인상을 찡그렸다. 불청객임을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퉁명스러운 태도는 간만이었다.
츠키나가 레오가 유메노사키 학원에서 정학을 처분받은 일주일 뒤, 한번 갔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얼마나 박대했었냐면, 양동이에 물을 한바가지 퍼오더니 그대로 끼얹었다. 차가운 물을 흠뻑 맞고 들은 말은 '꺼져!'였다.
물론, 볼일을 본 다음날 바로 입원해야 했었다. 이건 비밀이다. 케이토는 거품을 물을 기세로 발을 굴렀었다. 하하.
'뭐야.'
아침부터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미남의 모습이 인상을 대판 찡그린 츠키나가는 빠르게 현관문을 닫으려고 했었다. 물론, 그보다 빠르게 문틈 사이에 구두를 끼워넣는 것으로 일당락 되었지만.
츠키나가에게 자신은, 그저 악마가 아닐까. 악마는 미모와 사악함이 비례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아마도 자신은 아주아주 사악한 악마일 것이다. 츠키나가는 자신의 얼굴을 사랑하지, 본질은 끔찍이도 싫어할 뿐.
'부탁이 있어서 왔어.'
시간 좀 내줄래, 츠키나가군? 후줄근한 스트라이프 셔츠에 씌여있는 'Fuxx U'라는 글씨가 인상깊었다.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잔뜩 엉망이 된 머리카락, 흑색의 트레이닝 바지. 맨발.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안경을 쓰기 시작했나보다. 흑색의 뿔테까지.
츠키나가는 차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한 뒤 10분정도 지나서야 나왔다. 물기가 있는 머리카락. 가벼운 셔츠에 워싱진. 파랑색의 컨버스화. 잘 어울린다. 가벼운 옷이 참 잘 어울린다.
그리고는 도착하기 전까지 목소리도 듣지 않겠다는 듯,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음악을 듣고있는 것이다. 어떤 노래를 듣는지 궁금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가 이어폰쪽으로 귀를 대 보았-
"뭐야."
대번에 어깨를 살짝 틀어 인상을 팍 구기는 츠키나가였다. 텐쇼인은 말없이 츠키나가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길을 잃은 어린 고양이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겠고, 누군가의 손길이 악의처럼 다가오는-
다시금 고개를 돌려 창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움직여 다음 노래를 트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럽다. 한두번 해본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깜빡. 눈을 감았다가 뜨기를 아주 오래 반복하면. 리무진은 어느새 조그마한 카페에 와 있었다. 텐쇼인의 몇 안되는 비밀 아지트. 츠키나가와의 밀회(密會). 스릴 넘치는 기분이다. 텐쇼인은 웃으면서 츠키나가에게 손을 내밀려고 했지만, 박정할 정도로 싸늘하게 츠키나가는 이어폰을 귀에서 뺀 뒤 반대 차문을 열고 내려버렸다. 손이, 어색하다.
"또 여기야?"
"여기가 제일 편하잖아."
"... 아이스 모카. 휘핑 듬뿍, 초코시럽 듬뿍."
츠키나가는 단편적으로 늘 먹던 것을 혀 끝에 올리며 발을 움직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까지 자연스럽다. 테이블은 하나. 안락한 의자는 둘. 그 외에는 책이나, 빈 오선지들이, 펜이 굴러다니고 있다. 끝에 있는, 약간 꺼진 1인용 소파. 간만에 오는 건데도 먼지는 없었다. 츠키나가는 이곳을 '망상이 막힌 카페'라고 불렀다.
"이번에는 용건이 뭐야?"
"너무 단도직입적이야, 츠키나가군."
"..."
츠키나가는 말 없이 텐쇼인을 바라보았다. 에스프레소 기기를 켜고 원두를 그라인더에 가는 것까지. 텐쇼인이 혼자 할 수 있는 미니 카페다. 츠키나가는 바닥을 굴러다니던 펜을 집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가득이 놓인 오선지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손길은 거침이 없다. 빠르게 오선지를 펜이 누빈다. 몸을 약간 흔들면서도 적막을 펜의 사각이는 소리로 메우겠다는 듯이 마구마구 손을 놀린다. 펜의 잉크가 쉼 없이 뿜어져 나온다.
그저 한장. 그리고 그 한장에 못 이겨 두장이, 세장이, 열장이- 츠키나가 레오가 주문한 아이스 모카, 휘핑과 초코시럽을 듬뿍 얹은 텐쇼인 특제 음료가 완성되기까지 몇 분. 츠키나가의 손에는 몇 십 분의 악곡들이 완성된다.
"하-"
츠키나가는 테이블에 올려진 코스터와 유리컵을 보자 손을 멈췄다. 약간 떨리는 손을 뒤로한 채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다 완성된 악보를, 바닥으로 버리듯이 던졌다.
"..."
말이 없었다. 적막을 깰 마음이 없는 텐쇼인은 건너의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자신이 내린 아이스 라떼 한잔을 마시며 츠키나가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 시럽 칠 걸.
"용건."
"아, 내가 칠석에 공연을 할 것 같아."
"공연이라고 쓰고 억압이라고 읽는 그 사기질?"
"사기라니. 너무하네."
"..."
츠키나가의 눈이 무기질의 무언가처럼 도로록 움직였다. 부자연스러웠다. 텐쇼인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리고 입을 천천히 열었다. 용건과 사랑의 무언가를 가득이 담아.
"곡을, 츠니카가군이 만들어 주었으면 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자괴감이 목 주변을 쭈볏하게 만들 정도다. 츠키나가는 시선을 텐쇼인에게서 내려 오선지를 보았다. 빈 오선지는 많다. 솔직히 손을 몇 번 움직이면, 아마도 텐쇼인이 만족하는 노래 하나쯤이야 거뜬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절망할 것이다.
늘 같은 이유로.
"그래."
그러면서도 츠키나가는 거절하지 못한다. 그게 더 끔찍한데도 말이지. 예쁜 노래. 사람의 시선을 끄는 노래. 그것은 유메노사키의 아이돌 그룹에게 커다란 무기다. 츠키나가는 그런 무기를 잘 만드는 장인인 것이다. 그리고 그 장인은 황제에게 목줄이 매여 하라는 대로 하는 노예인거지. 츠키나가는 자조하였다. 왜 이렇게까지 텐쇼인을 거절하지 못하는 건지. 거절하고 싶은 단어들은 많다. 고르고 골라서 웃는 얼굴로 말할 수 있는데. 있는데. 있다고. 그런데도 할 수 없다. 소리로 나오지 않는다. 목소리가, 거부하고 있다.
"왜 칠석이야?"
"아아- 발키리와."
"이츠키랑?"
"그래."
그러고 보니, 너흰 좀 각별했던 사이였지. 종종 질투한 적이 있어. 후후 웃으면서 라떼를 한모금 더 마신 텐쇼인은 다리를 꼬고 웃었다. 츠키나가는 한숨을 쉬었다. 악몽은 꾸다보면 익숙해지지 않는다. 악몽은 새롭게 자신을 괴롭히고 좀먹는다. 텐쇼인 에이치는 악몽과도 같은 존재다. 뭘 해도 자신은 고통받고, 숨쉬기가 어렵다.
사각이는 펜의 놀림이 다시 시작된다. 유려하면서도 강하게- 오선지를 찢을 것 같이 펜들이 움직인다. 무아의 경지같이 츠키나가는 손을 이리저리 오선지 위에 올려놓았다.
칠월 칠석.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 소원을 빈 종이를 조릿대에 매달아 기원하고. 아.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하루뿐인 사랑. 1년에 한번 만나는 사랑. 가엾은 사랑.
그래도 너흰 양반이지 않나. 츠키나가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며 다음 오선지를 손에 들었다. 생각하니까 서러워진다. 자신의 사랑은 지금도 이렇게 이용당하고 버려지기를 반복하는 일회용이다.
내 사랑을 소각이라도 해 주지 않을래요. 츠키나가는 잠깐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움직였다. 잔뜩 짓밟혀진 자신의 사랑은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미안할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그런 사랑도 사랑이라고 끌어안고 이런 미친짓을 하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 미안하지. 미안해, 츠키나가 레오.
"... 여기."
빠르게 완성된 악보들을 정리해 준 츠키나가는 고개를 푹 숙였다. 텐쇼인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악보를 찬찬히 보았다.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애절한 사랑에 대한 하룻동안의 화답인 것처럼 달콤한 노래였다.
츠키나가는 말 없이 아이스모카를 들고 타박타박 걸어가 1인용 소파에 삐따닥하게 앉았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듣지 않겠다는 듯이 귀에 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며 입에 빨대를 물었다.
쭈우욱- 볼이 약간 패일 정도로 힘차게 빨고는 차가음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입에 물린 빨대를 놓지 않는다. 텐쇼인은 말없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악보를 계속 읽었다. 곰씹어도 참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텐쇼인은 고개를 들어 츠키나가를 보았다.
츠키나가의 혀를 적시는 달콤한 아이스모카가, 짭조름해질 것 같았다.
텐쇼인, 자신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나올 일이 없을 노래. 그리고 이 노래가 나왔다고 해도 원래는 자신이 주인은 아닐 것이다.
이 노래는 그의 기사들에게 돌아갔었어야 하는 노래일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란, 가장 이 노래에 걸맞을만큼 화려하게 끝내야 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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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하하하하... 피곤해. 이거 에이레오 맞나...()<<우기기
이런걸 보고 동상이몽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