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Zero
마법사와 그대 본문
눈을 몇 번 깜빡여 보았다. 뻑뻑해서인지 고통스럽다. 오만상을 찡그리면서 눈에 인공눈물을 넣었다. 주르륵 광대를 타고 흐르는 인공눈물을 닦아내며 휴대폰을 들었다.
“어, 아도니스. 응. 아냐아냐. 곧 갈게.”
가벼운 용건들이 입에 오르내렸다. 오오가미는 힘든 표정으로 전화를 끊고는 벽에 등을 기대며 주저앉았다. 실은 간다고는 했지만, 가고 싶지 않다. 자신은 그냥- 어딘가 사라지고 싶었다.
레이는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자신이, 그의 권속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품에서 다시 살아났으며 죽지 않는 존재(UNDEAD)가 되었다.
‘네가 나의 마지막 권속이었으면 좋겠구나.’
넌 유독 힘에 부치니까. 아이고, 그럴 거면 살리지 마시던가. 오오가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휴대폰을 껐다.
오오카미 코가. 20XX년 기점 30세. 그 시간에서 완전히 갇혀버렸다.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누군가는 소망했을 불로불사.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원한 것은 아니라는 불로불사.
“- 하아.”
오오가미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수많은 사진. 도쿄지도. 하- 자신이 죽은 뒤에도 사건은 일어난다. 자신의 죽음도 미제다. 자신은 어떤 연쇄살인마가 원치 않게 죽인 희생자다.
경시청 형사부 어떤 팀의 아주 젊은 팀장이었고, 그의 밑으로 5명의 팀원들이 따랐다.
‘캡은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우리의 곁에 있으니까요.’
‘캡 애인이 남자인거 빼면 최고죠.’
‘아냐. 캡 애인이 너무 잘생겨서 캡에게 아까워.’
‘아하하하! 캡, 이번에 사건 끝나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먹는 거 좋……. 캡! 실마리 잡았다고 합니다!’
시시콜콜하게 떠들던 중 팀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반드시 저지할 것이다. 반드시 교도소로 보내버릴 것이다. 이를 부득부득 갈던 팀에게 찾아온 절호의 찬스. 그리고 그 찬스를 잡으려던 찰나-
자신은 죽어버렸다. 그 살인마가 자신을 죽인 것이 아니다. 그 살인마를 자신이 혼자 쫓다가 차에 치여 죽었다. 복합 다발성 골절-이 아마도 사인이었을 것이다.
죽음의 기억이 차라리 없었으면 좋을 텐데. 죽는 그 순간까지 느꼈던 모든 감각들이 아직까지도 생생한데.
딩동-
어? 여기 올 사람이 없는데. 오오가미는 인상을 구기면서 조용히 있었다. 알아서 가겠지. 두 번 더 벨을 울렸다. 그리고는,
“왕코.”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저 애칭에 오오가미는 한숨을 쉬었다. 와. 어떻게 여길 알고. 당연한가 싶어 헛웃음도 나왔지만, 우선 첫 번째 감정은 당황스러웠다.
“문 좀 열어보련.”
안 열면 강제로 들어오겠다는 듯하다. 오오가미는 숨을 크게 내쉬고는 몸을 일으켜 현관문으로 나갔다. 여길 진짜 어찌 안 건지. 귀신이 곡 할 노릇이다. 몰래몰래 계약하고(그것도 신분증 위조해서 어찌저찌 한 건데 이걸 알아내다니.) 숨어 다녔는데. 하-
“어떻게 안 거지.”
“어찌 알기는- 왕코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단다.”
“정신 나간 소리 작작해.”
문을 열어주며 볼멘소리를 한 오오가미는 집 안으로 들어서는 레이를 보다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알아낸 건지, 참.
흑색의 옷 때문인지 유독 오늘따라 얼굴이 더 창백하다. 레이는 엷게 미소를 지으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것도 없었다. 방 하나. 부엌 하나. 그 방에 걸려있는 수십 장의 종이쪼가리들.
“왕코. 아직도 찾는 거냐.”
“…….”
“차라리 내가 찾아주마.”
“필요 없어.”
찾아도 내가 찾아. 징벌은 내 몫이야. 남의 손에 하게 둘 만큼 난 멍청이가 아냐. 오오가미는 레이를 노려보다 한숨을 쉬며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찾아는 지더냐.”
“…….”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그놈을.”
“그렇다고 해서 네놈도 뾰족한 수 없는 거 다 알거든?”
빌어먹을 흡혈귀 놈. 설득을 하려면 뭐든 들고 와서 설득을 해. 시간은 해결해주지 않아. 오오가미는 인상을 와장창 구기며 바닥에 앉았다. 레이는 그런 오오가미를 보며 나직이 숨을 쉴 뿐이었다.
“원한이 깊어서도 소용이 없어.”
시간은 약이야. 지나면 해결해 줄 거야. 돌아가자, 왕코. 레이는 오오가미를 설득하려 하였다. 듣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평생을 잊지 못할 것을 안다. 자신이 시계를 멈추었고, 오오가미는 그 순간에 갇혀버렸다. 구해주고 싶은데- 자신이 가둬버려서 어찌할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저 분노와 원한이 사라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죽어버린 오오가미 코가는(大神 晃牙) 살아있는 오노 코가(小野 晃牙)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자신을 죽게 만든 원흉을 사적으로밖에 처단하지 못한다. 그것도 실낱같은 희망이라고 붙들고 있는 것일 뿐이다.
경시청 공식적 기록에 오오가미 코가는 사망처리가 되었다. 오오가미 코가는 실제 묘도 있다. 매년 자신의 묘에 가서 자신을 향해 추모를 하고 허허로이 웃으며 담배를 태운다. 그 발길에는 레이가 함께한다.
레이는 마물로 태어나 영원히 마물로 죽을 것이지만, 오오가미는 인간이었다가 레이의 품 안으로 들어온 케이스다. 뭐, 하카제나 오토가리도 오오가미와 마찬가지지만 약간 다른 점은, 그들은 아주 오래전에 레이의 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죽음은 일종의 기억의 편린과도 같지만, 오오가미는 실은 죽은 지 이제 7년이 되었으려나. 365 곱하기 7은 2555일.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가 없다. 하루하루 쉼 없이 그를 찾기 위해서 준비한다.
오오가미 코가는- 오노 코가가 아니라 오오가미 코가로 이 이야기를 끝내고 싶을 뿐이다. 그러면, 그러면- 레이에게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왕코.”
“시끄러.”
오오가미는 말없이 사진 한 장을 만지작거렸다. 여섯 명이 모여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 그 시간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으련만.
“차라리 어디로 떠나련.”
“싫어.”
“영국이나. 내가 있던 루마니아나-”
“다 끝나면.”
그때, 가. 지금은 아니야. 7년이나 되었는데 이 새끼가 몸을 움츠리고 나오지를 않아. 경시청 서버 전체를 털었는데 그 새끼 사건이 나 뒈진 뒤에 아무것도 없어. 말이 되는 소리냐고. 그 새끼가 7년간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오오가미는 이를 갈며 레이를 보았다. 레이는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평생 사쿠마씨랑 살 거라고 믿었어. 지금도 그래.”
“코가.”
“근데- 그 새끼가 모든 걸 망쳐놨어.”
“그래서 내가 살렸잖니.”
“아니. 이건 산 게 아니야.”
나와 그 새끼의 이야기가 끝나야- 그래야 산거야. 오오가미는 피곤한 표정으로 사진을 보았다. 망가져버린 기분이었다. 몸 안에 있는 태엽이 삐걱이면서 헛도는 것 같았다. 무시했다.
“너무 커다란 집착은 화를 부르고.”
“화는 나에게 돌아간다. 알아.”
차라리 화가 왔으면 좋겠어. 그러면 좋겠어. 오오가미는 쓰게 웃었다. 사치스러운 웃음이었다. 레이는 한 손으로 본인의 머리를 짚었다.
실은, 레이의 인맥과 능력으로는 찾으라면 언제든 찾아줄 수 있다. 오오가미가 원한다면 죽여서 데리고 올 수도 있다. 자신의 힘을 아주 조금만 쓰면- 오오가미는 편해질 것이다. 평안히 자신의 품에서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밖으로 싸돌아다니며 조금이라도 그 자의 정보를 얻으려고 뛰어다니지 않아도 된다. 증오와 분노에 못 이겨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며 울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곳에다가 판을 차리고 경시청의 데이터 파일들을 뽑고 무전내역을 훔쳐 듣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찾아주겠다고 해도 거절한다. 본인이 이야기를 끝내겠다고 단언했는데. 그래서 잊으라고 설득하는 것뿐이다. 마음대로 하라고 둬야 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어, 카오루군. 그래. 아냐. 왕코와 함께 있어. 그래.”
가벼운 말을 주고받다 전화를 끊은 레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한 오오가미는 퉁명스럽게 입을 열어 물었다.
“뭐야?”
“아아. 카오루군이 자리를 오래 비운다고 그래서.”
“오래?”
“응. 만나러 갈 사람이 있다고 하는구먼.”
오오가미는 미간을 찡그렸다. 만나러 갈 사람이라니. 하카제 카오루는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어렵지 않은 남자지만, 발이 넓다고 하기엔 약간의 어폐가 있다. 하카제의 고정적인 인맥으로는 경시청 경부보(예정) 모리사와 치아키, 그리고 마법사의 왕의 첫 번째 악장이라 불리는 세나 이즈미가 있다. 저 셋은 자신이 인간이 아닐 때부터 만나고 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
“왕코.”
“응?”
“무슨 생각을 그리 하누?”
“……. 그냥.”
오오가미는 시선을 내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려다 닫았다. 레이는 그나마 있는 의자에 앉아 종이들을 보았다.
“언젠가 이 순간이- 부질없어질 거야.”
“다 끝나면. 잊을 거야.”
“그래.”
오오가미는 흘끗 레이를 보다 휴대폰으로 손을 가져갔다. 아직 식사 시간은 아니지만.
“어이, 흡혈귀 놈.”
“왕코- 그런 상스러운 말은…….”
“배고프지 않아?”
“…….”
레이는 눈 끝을 슬쩍 찡그렸다. 한 일주일 굶긴 했다. 먼저 묻는 경우도 있군.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누. 입가가 썼다. 혀를 내밀어 입술을 슬쩍 훑었다. 오오가미는 휴대폰 위의 손가락을 바지런히 놀리고는 휴대폰을 뒷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읏-챠.
“왕코가 먼저 말하는 경우는 없지 않았누.”
“잔소리 하는 거 듣기 싫어서 그래. 누구든, 입에 무언가 물고 있으면 다른 걸 잊잖아.”
오오가미는 무릎을 꿇고 허리를 곧게 폈다. 의자에 앉아있는 레이가 아주 약간 허리를 숙이면- 오오가미 코가라고 하는 정찬을 잠시 동안 만끽할 수 있다.
레이는 목울대를 울리며 오오가미의 목을 바라보았다. 부디 즐거운 식사가 되라는 악마의 속삭임에, 레이는 거리낄 것 없이 이를 세워 오오가미의 목을 송곳니로 내리찍어버렸다. 오오가미는 레이의 팔을 잡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큭-!”
생살을 뚫고 목덜미에 이를 박은 채 흐르는 피를 핥는 게- 인간의 생각에선 정상이 아니라고 하지만. 오오가미는 픽 웃었다. 아픈 건 익숙하다. 한두 번 물려봤나. 꿀꺽꿀꺽 마시는 것이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왔다. 처음 물렸을 땐 아파서 비명을 지르고 그만 하라고 울었었는데- 몇 번 겪어보니 익숙해졌다. 하카제나 오토가리는 오오가미보다 까마득히 먼저 레이의 권속에 들어갔는데도 별로 안 좋아한다. 물론, 오오가미도 좋아하지는 않지만- 저 둘보다는 차라리 양반인 입장이다.
흡혈귀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생을 유지한다고 하지. 알 수 없는 출처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제대로 된 수정 버전을 오오가미가 알려주자면-
흡혈귀는 사람이 아니라 본인의 권속에 있는 자들의 피만 마실 수 있으며- 솔직히 피만 마신다고 표현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밥도 잘만 먹는다. 잘 자고. 너무 잘 자고. 그만 처자라. 햇볕에 오래 있으면 힘들어 하지만 솔직히 재가 된다거나 그렇지는 않는다. 마늘도 그럭저럭 먹을 줄 알고. 릿치(사쿠마 리츠)가 종종 마늘머핀을 레이에게 만들어주며 ‘먹어줄거지, 형?’ 이라고 했으니까. 심장에 말뚝을 박는 건 잘 모르겠다. 물어봤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었다.
“어이. 나 쓰러질 때까지 마시지 말고.”
“-”
대답이 없었다. 작정하고 마시지는 않겠지. 오래 굶었나. 오오가미는 고개를 약간 비틀어서 숙였다. 목이 더 훤히 드러나도록. 그러면서도 시선은 벽에 걸린 신문지들에 향해 있었다. 7년 이후에 종적을 감춘 범인이라. 죽었으면 죽었다고 광고라도 때려주지. 약간 어지러웠다.
“어이, 흡혈귀.”
“-”
“…….”
말을 말자. 알아서 쓰러지면 잘 케어해주겠지.
-
10만년만에 써서 손가락이 안움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