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Zero
나루세나) 본문
세나는 피곤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았다. 멍하다. 잠이 덜 깬 건지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며 졸았다. 날씨 하나는 옴팡 좋다. 따땃한 햇볕, 그리고 잠자기 좋은 날씨. 창문을 열면 약간 시원한 바람이 들어올 것이다. 아 베란다에서 광합성이나 할까. 채 그 생각이 가지 못했다. 세나는 다시 잠들어 버렸다.
이젠 진짜로, 완전히- 몸을 움직일 수 있다. 가끔 느껴지는 손목의 환상통. 그것을 빼면 세나 이즈미는 재기에 성공한 셈이다. 끔찍했던 상실감에서 한걸음 멀어졌다. 세나는 고개를 약간 기괴하게 비튼 채 몸을 고꾸라뜨렸다.
봄이 오고, 꽃이 피었다. 햇볕에 달큼함을 담뿍 머금은 꽃들이 피어나며 봄이 왔음을 지천에 알린다. 세나 이즈미의 마음에도 한기 서렸던 냉혹한 바람을 걷어내고 조심조심 싹을 움트게 한다.
무방비할 정도로 잠을 자고 있던 세나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세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더 잠을 자겠다는 것처럼. 아직, 자신의 겨울잠은 끝나지 않은 것처럼.
"..."
달콤한 꿈을 꾸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고 해서 악몽을 꾸는 것은 더더욱이 아닐거야. 엷은 자색의 눈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휘어지며 세나의 얼굴을 조목조목 뜯어보고 있었다.
몸을 새우처럼 말고 자는 것이, 차라리 침대에서 더 자면 좋으련만. 햇볕을 받아 말린 빤빤하고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세나는 굉장히 좋아하니까.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 덮어주었다. 미동도 않는다.
변하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움직여 변화하고- 일어서는 순간까지 세나 이즈미는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던가. 절망하고, 그것을 받아들여 일어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소파 바로 앞의 테이블에는 서류들이 즐비했다. 입사했다고 하더니. 정말이었네. 오트쿠튀르 드레스를 디자인하며 통화하던 스오우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재생되는 것 같았다.
[세나 선배가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생각보다 큰 계열사여서 한동안은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약간 풀죽은 목소리를 들으며 연신 달래어야 했던, 아직 어린 아이. 아이라고 하면 자신의 나이가 몇이냐며 볼을 부풀릴 것이 뻔하지만- 아직 자신에게 스오우 츠카사는 어린 아이일 뿐이다.
그림자를 드리운 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커피 한 잔 할까. 일본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세나의 집으로 온 지라, 아마 자신의 집에는 먼지가 폴폴 쌓여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멈추었다. 지금은 가벼운 커피 한 잔이 최고일 것 같았다.
세나의 집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있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에스프레소 머신이 눈 앞에 있다. 분명 리츠짱이 사다놓았을 것이다. 아니면 츠카사짱이 사다놨거나. 둘 중 하나다.
"~♬"
콧노래를 조그맣게 흥얼거려도 세나는 깨지 않을 것이다. 세나 이즈미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굉장히 예민해서 잠잘때마저도 예민함이 넘칠 것 같지만, 정작 잠을 자면 일어나는 상황까지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나는 약간 저혈압도 있다보니 일어나도 한동안은 정신을 차리는 것이 힘들다.
가볍게 내린 에스프레소 한 잔. 그 위로 따뜻한 우유를 부었다. 어울리지 않지만, 시럽이 없으니 각설탕 두개. 퐁- 퐁- 넣어 티스푼으로 소리나지 않게 저었다. 갈색 크림의 색이 기분좋아지게 만들었다.
식탁의 의자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여유로운 봄날의 주말이란 이런걸까. 정신없이 잠을 자고 있는 세나는 과연 언제 일어날런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째깍이며 시계가 움직이는 것도, 자신의 움직임도, 빛의 움직임, 구름이 드리우는 그림자도.
굉장히 느린 것 같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쉼 없이 바빴던 것 같은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휴식이 찾아왔다. 한가하니, 한동안은 빵도 좀 굽고, 집안도 다시 꾸미고 해야지. 일을 하기 전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뭘 더 해야 할까. 원래는 이즈미짱과 같이 데이트도 하고 그러려 했는데 덜컥 직장을 다닌다고 하니 아깝다. 저녁에나 만나 가볍게 저녁을 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입사 초반이어서 야근이 잦다고 츠카사를 통해 들었는걸.
부스럭.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렸다. 커피를 한 잔 더 마실까 하던 움직임을 멈추고 소파로 시선을 응시하였다. 몸을 반쯤 일으킨 세나가 눈을 감은 채 오만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 나루군?"
캅캅한 목소리가 들렸다. 콜록콜록 목을 가다듬으려는 듯 연신 기침을 한다. 멍하니 잠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글라스에 차가운 물을 한잔 담아 거실로 걸어갔다. 다시 꾸벅꾸벅 조는 것이, 약간은 안쓰러웠다. 차가운 글라스를 세나의 뺨에 대자 어깨를 약간 움츠렸다. 차가워- 볼멘 소리가 들렸다. 그러면서도 자동적으로 입을 벌린다. 글라스를 입에 대로 조심조심 기울여 세나의 목을 축여주었다. 대충 정신이 든 건지 손을 들어 글라스를 잡고는 알아서 물을 마신다. 뭔가, 어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픽 웃었다.
"잘 잤어 이즈미짱?"
손을 뻗어 부스스하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누르듯이 쓰다듬었다. 평상시면 기어오른다고 짜증난다고 손치우라고 했을텐데 지금은 조용한 것이, 꽤 나이스 타이밍이다. 잠시 말이 없었다. 정신을 반쯤 차린 건지 세나는 미간을 찡그려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잘 잤고, 이제 손을 치워."
어린아이 취급은 질색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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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손풀려고 하니 안풀리는거 봐라....(짜증)